2016 SDG 청년컨퍼런스

 

제4회 SDG 청년 컨퍼런스 후기 및 요약

김병혁 목사

은혜 가운데 제4회 SDG 청년 컨퍼런스를 마쳤습니다. 이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늘 듣는 자로서가 아니라 전하는 자로서 서게 되지만, 금번에는 다른 때보다도 참석한 청년들의 감상(후기)을 전해 들으면서 큰 기쁨과 감사가 넘쳤습니다. 첫날(2월 29일)은 한재술 성도님(그책사 대표)께서 ‘그리스도인의 연애(구혼)’에 대해서 강연해 주었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전달한 내용이었음에도 개혁교회 성도라면 누구나 숙고하고 경청해 볼만한 귀한 강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혼인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혼인에 이르는 구혼의 과정과 절차역시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기회였습니다. 첫날 강의를 마치고 제가 잠시 언급해 드렸습니다만, 저는 일찍이 외국의 개혁교회를 경험하면서 우리 교회 현실에 적합한 그리스도인 구혼에 대해서 많은 고심하던 차에 한재술 성도님이 지은 책(「이 사람이 그 사람입니까」, 그책사)을 보면서 많은 공감을 하였습니다. 한 개인 성도의 경험이라고 하기에는 내용적으로 개혁교회의 신앙과 삶이 농축된 내용이라 생각되었기에 금번 청년 컨퍼런스에 강사로 초청하기로 결심하였던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좀 더 뜻 깊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성도의 혼인은 교회와 함께 하는 혼인이 되어야 한다는 확신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교회 안에서 혼인하게 될 청년 성도들과 교회 자녀들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 교회가 추구하는 신앙 정신에 입각하여 지속적으로 올바른 구혼과 성경적인 혼인에 대한 교훈을 가르치며, 항상 관심을 갖고 격려하며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교회를 중심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가정들이 세워지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일 뿐 아니라, 교회를 향한 축복입니다.

둘째 날(3월 1일), 저는 ‘그리스도인의 가정’이라는 주제로 강의하였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 속에 숨겨진 가정의 원리를 신약에 기록된 성경 본문을 중심으로 사도 바울의 의식(생각)의 흐름을 좇아가면서 그 속에서 사도를 통해 증거되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가정에 관한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무엇인지를 면밀히 살펴보고자 하였습니다. 가정에 속한 성도라면 누구나 주의 깊게 상고해 볼 가르침이기에 참석하지 못한 성도님들을 생각하면서 강의 요지를 요약하여 전달해 드립니다. 이 글을 읽은 후에 (기회있을 때) 강의를 청취하시면 훨씬 유익이 크리라 생각합니다.

에베소서 5:22-33은 성경 중에서도 남편과 아내, 그리고 가정에 대해 가장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교훈을 전하는 성경 본문입니다. 이 본문에서 사도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설명하지 않고 천상에 있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모방(모사 模寫)한 것으로 묘사합니다. 이것은 어떤 고대 자료나 사본에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설명방식입니다. 세상에는 가정이나 남편과 아내에 대해서 가르치는 수없이 많은 교훈이 있지만 사도 바울과 같은 설명은 그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전무후무한 가르침입니다. 세상의 관점에서 이러한 설명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며, 가정(남편과 아내의 관계)을 그저 일상적인 형식과 보편적인 전통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의표를 찌르는 충격적인 내용입니다. 세상에 흔하디흔한 가정(남편과 아내)을 그토록 거룩하고 존귀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서 설명하려 하다니 믿지 않는 자들은 어리둥절할뿐입니다.

사도는 한걸음 더 나아가 남편과 아내가 한 몸을 이루는 일을 바라보면서 “이 비밀이 크도다”(엡 5:32)하고 외칩니다. 여기서 사도가 말하는 비밀이란 이전에는 감추어져 있었으나 계시로서 드디어 확연하게 드러난 하나님의 뜻을 가리킵니다. 즉 하나님의 뜻이란 태초에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남자와 여자를 한 몸 되게 하는 가정을 세우실 때부터 언젠가 그것을 통해 궁극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무엇이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바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세상 창조와 함께 남편과 아내의 연합을 통해 가정을 세우신 것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령한 관계를 드러내기 위한 거룩한 목적 가운데 행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정(남편과 아내의 관계)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에 기록된 창세 때의 상황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창세기 2장의 본문(18-24절)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그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어떻게 가정을 이루는지를 최초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주목할 대목은, 하와(아내)가 아담(남편)의 몸으로부터 지음을 받았다는 것과 아담이 그것을 정확하게 이해할 뿐 아니라 하와가 자신의 몸의 일부(한편)라는 사실을 기쁘게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 2:23)는 아담의 고백 속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면서 창세기 본문은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찌니”(24절)라는 말로 끝맺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울은 에베소서 본문에서 이 말을 인용하여 하나님께서 태초에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통해 드러내고자 한 내용이 결국은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한 비밀이었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이제는(바울이 성령의 영감을 통해 계시를 받은 이후로부터) 이 계시의 의미가 밝히 드러났으므로 이것을 아는 자들에게 이 가르침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본질적인 물음을 던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왜 바울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말할 때에 창세기 본문을 인용하여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서 설명하려 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서 나타내어야 할 최종적인 규범과 목적이 오직 그리스도와 교회에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어떤 경우에도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성 속에서 의미를 갖습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와 교회는 남편과 아내가 서로에 대하여 행해야 하는 모든 일(책임과 사명)의 온전한 기준이 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와 교회를 벗어난 남편과 아내는 결코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가정을 세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와 교회를 벗어나는 순간 온전한 가정의 기준점을 상실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부부는 몸으로서만 한 몸 뿐 아니라 영적으로도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가장 작은 교회입니다. 부부는 가장 작은 단위의 교회로서 머리되신 그리스도에게 연합되어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그리스도와 교회뿐 아니라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신비한 연합’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은 영원하듯이 남편과 아내의 하나됨 역시 그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나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된 남편과 아내는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와 교회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도와 교회는 남편과 아내가 추구해야 하는 원형이며, 최종적인 지향점입니다. 따라서 참된 성도라면 불신자와의 혼인을 피해야 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제24장, ‘혼인과 이혼’편)에서 “오직 주 안에서 혼인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이다”라고 규정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그럼에도 만일 불신자나 혹은 그리스도인과 혼인해서는 안 되는 대상과 결혼한다면 영적으로 불행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남편과 아내로서 드러내야 하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원형적 모습이 파괴되어지고 나아가 그런 부부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거룩한 연합을 손상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이유나 명분으로도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거룩한 연합과 신실한 친밀성을 깨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 남편과 아내는 또한 그들로 인해 세워지는 그리스도인 가정은 종국적으로 그리스도와 교회를 증시하는 거룩한 수단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남편과 아내는 자신의 가정을 통해 그리스도와 교회가 세상에 드러나도록 하는 일에 가장 우선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은 태초에 남편과 아내를 통해 가정을 세우신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이며 섭리입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5장 본문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논점은, 그리스도인 남편과 아내라면 가장 우선적으로 취해야 하는 태도에 관한 것입니다. 그것은 서로 간에 사랑과 복종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첫째, 사도는 아내들에게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명령합니다. 현대인들은 복종이라는 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여성 운동하는 이들은 이와 같은 사도의 가르침을 혐오하기까지 합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복종을 아내가 남편에게 취해야 하는 최상의 덕목으로서 강조합니다. 헬라어로 복종이란 ‘휘포타쓰’라는 단어입니다. 이 말은 ‘~아래에’를 뜻하는 전치사 ‘휘포’와 ‘배치하다, 균현을 잡다’는 뜻을 가진 동사 ‘타쏘’의 합성어입니다. 즉 바울이 가르치는 복종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 아래로 자신을 복종시킨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복종의 원형을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는 태도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교회의 복종은 강요와 강압에 의한 굴욕적인 복종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거룩한 연합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기뻐하는 자원하는 심정으로 행하는 구별된 복종입니다. 하지만 남편은 그리스도와 동일시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사도의 명령을 따라 남편에게 복종할 때에, 지혜와 분별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정하신 질서와 뜻에 위반되는 복종이라면 지혜롭게 거절해야 합니다. 하지만 만일 하나님의 질서와 뜻에 부합되며 무엇보다 남편과 영적인 하나 됨에 유익하다면 아내는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이 기쁨과 자원함으로 복종해야 합니다.

둘째, 사도는 남편에게 아내를 사랑하라고 권면합니다. 이때 바울은 헬라어 ‘아가파테’라는 명령형 동사를 사용합니다. 이 말에서 ‘아가페’라는 명사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당시 이 말은 사람에게 아무렇게나 적용할 수 없는 용어였습니다. 이 말은 ‘오직 신에 대한 전적인 사랑’을 함의합니다. 당시 대부분의 남자들은 여자를 육적인 사랑(에로스)의 대상으로 생각하였을 뿐, 신에 대하여 혹은 신이 하듯 하는 사랑을 여자에게 베푼다는 것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남존여비적 정서가 지배하는 시대 속에서 남편들에게 자신의 아내를 위해 아가페적 사랑을 실천하라는 호소는 시대 정신을 거역하는 혁명적인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이를 담대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남편과 아내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나타내는 모형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을 교회를 위해 죽기까지 생명을 아낌없이 내어 주신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발견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렇게까지 교회를 사랑하신 이유는 교회는 그리스도와 한몸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는 것은 결국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마침내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 남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제 몸을 바쳐 하신 것처럼 자신의 아내를 사랑할 때, 그것을 통해 그리스도의 아가페적 사랑을 깨닫게 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신을 가장 존귀하게 대하는 성도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을 사는 남편과 아내 중에 사도의 권면(명령)을 순전하게 기쁨으로 받아들일 이는 없습니다. 자신을 돌아볼 때, 그리스도와 교회처럼 사랑하고 복종할 수 없는 나약하고 죄악된 존재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누구도 지킬 수 없으므로 이 권면 앞에서 좌절하고 낙심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이 명령은 남편과 아내된 자들에게 지킬 수 없는 규정이 되어 결국 정죄당하고 마는 것일까요?

바울은 이와 같은 낙심과 좌절로부터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을 제시합니다.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 5:18)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이 남편과 아내에 대해서 권면하는 내용 앞서 이미 답변으로서 주어져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바울은 남편과 아내가 그리스도와 교회가 서로에 대하여 하듯 완벽하게 사랑하고 복종할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처럼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의 충만 가운데 머물러 있을 때에만이 남편과 아내로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원형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을 위해서는 반드시 부부가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지속적인 성령의 충만함 상태에 머물 수 있을까요?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이 에베소서 본문의 병행구인 골로새서 3: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라고 설명합니다. 즉 성령 충만이란 그리스도의 말씀 곧 진리가 성도의 심령 가운데 풍성히 거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 속에서 가정을 세우고 남편과 아내로서 제 역할(책임과 사명)을 행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인 진리를 어떻게 인식하며 대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듣고 배우고 확신할 때에만이 그리스도인의 가정과 그리스도인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그리스도와 교회 속에서 제 자리를 잡으며 거룩한 연합 안에서 영적으로 장성해 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 남편과 아내는 언제나 말씀을 바르게 듣고 배우고 확신하는 자리로 함께 나아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과 말씀 안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가정을 세워가는 거룩한 사역에 매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할 때, 그리스도인의 가정과 부부는 원형이신 그리스도와 교회의 참 실상을 세상 가운데 고백하며 나타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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