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의 종교 개혁과 95개 반박문


오늘은 종교개혁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글을 전합니다. 이전에 쓴 것입니다만, 조금 다듬어 나눕니다.

[루터의 종교 개혁과 95개 반박문]

 

? 10월 31일은 개신교인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뜻깊은 날이다. 세인들은 이 날을 세상의 재미와 향락을 추구하는 할로윈 축제일이나 10월의 마지막 날을 애창하는 하루 정도로 기억하지만 우리에게는 지금으로부터 오백년 전에 유럽에서 시작된 종교개혁 운동을 기념하는 날이다.

?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타락과 부패로 얼룩진 중세 교회의 상징과도 같았던 교황 무오설과 면죄부 판매에 반대하여 비텐베르그 성문 앞에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게재함으로써 역사상 가장 찬란한 종교개혁의 여명을 밝혔다. 성경적 진리에서 멀어진 교회를 ‘오직 성경’과 ‘오직 믿음’으로 돌이킨 위대한 복음의 세계사적 전환을 이룬 이 날을 기념하여, 개신교회는 10월 31일을 종교개혁 기념일로 정하고, 10월의 마지막 주일을 종교개혁주일로 지키고 있다. 올해는 그 의미가 더욱 특별하다. 500주년 종교개혁일을 맞이하는 해가 되기 때문이다.

? 오늘날 개신교회가 다양한 교파와 교단의 이름으로 존재하지만 세상의 모든 개신교회는 본질적으로 종교개혁의 우산 아래 머물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종교개혁은 개신교회의 역사적 근원이며, 신앙적 근거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교파와 교단을 떠나 참된 교회를 지향하는 교회와 성도들이 말씀으로 개혁되는 교회의 본질과 수단과 목적을 종교개혁의 정신에서 찾으려고 하였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 그럼에도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개신교라는 이름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면서도 역사적 종교개혁과는 무관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심지어 개신교라는 깃발을 내걸고도 루터를 위시하여 수많은 종교개혁자들이 일관되게 추구했던 신앙 정신에 역행하는 일들을 서슴없이 행하고 있다. 과연 이것이 사실인가? 애석하게도 우리는 16세기 종교개혁의 발화점이 되었던 루터의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오늘날 대중적인 개신교회와 종교개혁 사이에 얼마나 깊고도 넓은 심연이 존재하는지를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 일차적으로 루터의 비난의 대상은 당시 로마 가톨릭 교회였다. 오늘날 가톨릭교회에서도 이 부분을 인정한다. 그래서 그들은 조상들의 부끄러운 역사적 실례를 교훈삼아 적어도 외형적인 면에서는 부단한 자기 개혁을 시도하여 왔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우리 시대의 개신교는 너무나 많은 점에서 오백년 전의 로마 가톨릭 교회를 닮아있다. 루터의 95개 조항은 부패한 중세 교회를 향한 항거일 뿐만 아니라 중세 교회의 어두운 전철을 밟고 있는 현대 교회의 참담한 실상에 대한 고발이기도 하다.

? 먼저 95개 반박문은 진정한 회개에 대한 촉구로부터 시작된다. 여기서 회개란 종교적인 의식에 의한 회개나 심리적인 반성이 아니라 심령으로부터 죄를 미워하고 죄인 됨을 인정하는 참회를 가리킨다. 진정한 회개는 신앙의 출발점이다. 참된 회개는 인간의 본성과 속성에 대한 구체적인 성찰이며 하나님 앞에 무익한 자임을 신앙 고백적 행위이다.

? 하지만 이 시대에 유행하는 교회에 속한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라. 죄에 대해 민감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인간의 부패성과 타락한 죄성을 질타하는 설교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인간의 본성과 죄악의 문제와 관련하여 철저하게 고민하고 두려워하는 목회자와 성도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말하지만 그 분의 공의로운 진노와 심판에 대해서는 애써 숨기려 한다. 그럼으로써 순수한 복음을 대체하는 각종 종교적 상품(프로그램)들이 봇물을 이루는 대신에 죄악을 미워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에 대해서는 감각 없는 자처럼 행하고 있다.

? 면죄부란 참된 회개 없이도 간편하고 쉽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 고안된 종교적 상품이다. 그런데 오늘날 개신교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유사 면죄부를 발행하고 있다. 평소에 전혀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삶을 살지 않더라도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려주고 얼마큼의 헌금을 하고 작은 봉사를 하고 나면 그 댓가로 설교자가 빌어주는 구원의 은혜와 축복을 받아 누린다. 교회들은 구원을 매개로 은혜와 축복을 판매하고, 사람들은 습관적인 종교적 행위와 조금의 물질로 이것을 구매한다. 면죄부를 손에 넣은 사람은 구원과 축복을 보장받고, 면죄부를 파는 교회는 그 대가로 사람과 이익을 챙기게 되니 서로를 위해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 그러나 루터는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구원을 조건으로 면죄부를 팔고 사는 사람 모두 영원히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한다. 왜냐하면 면죄부는 참된 회개의 필요성을 감소시키며, 거짓 확신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안타깝게도 오늘날 교회 안에도 면죄부 판매와 같은 일들이 횡행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십자가 복음과 고난이 없는 복음, 적극적 사고방식에 물든 복음, 잘 먹고 잘사는 것을 추구하는 웰빙 복음, 세상의 복과 번성을 바라는 기복 복음, 심플하게 믿고 편히 천국가자는 쉬운 복음 등은 거짓말과 속임으로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강매하고 있다.

?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지식과 전적인 헌신, 그리스도인으로서 감내해야 할 고난과 순종의 열매 없이도 구원을 받을 만한 다양하고 선택적인 길이 있음을 알려주는 말들은 현대판 면죄부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증거한 참된 복음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조롱하는 전형적인 거짓 복음이다. 루터는 교회의 진정한 보화는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로 부여된 가장 거룩한 복음이라고 강변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가? 오직 하나님의 말씀, 곧 거룩한 복음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배로 여기고 있는가! 참된 복음을 가르치고 듣고 배우고 나누는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는가! 혹시 중세 교회처럼 복음이 아닌 것들에, 면죄부와 같이 쓰레기통에 들어가야 할 그 무엇을 강조하는데 설교 시간을 소모하고 있지는 않는가!

? 또한 루터는 95개 반박문을 통해 성직과 제도의 타락상에 대해 조목조목 지적한다. 성직 타락은 필연적으로 강단의 변질과 성직 매매로 이어지고 부패한 관습은 교만과 위선에 가득찬 거짓 신자를 양산한다. 루터는 교회의 소명과 자태에 대해서도 강조한다. 영혼 구원보다 물질에 마음에 두는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 아니며, 그런 성직자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고 일갈한다. 당시 로마 교회는 면죄부 판매 수익으로 성직자들의 배를 불리고 더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을 건축하려고 하였다. 그때 루터는 잘못된 가르침으로 거둬들인 물질을 교인들에게 돌려 주어야 하며, 무엇보다 교회는 구제와 자선에 더욱 힘쓰라고 권한다. 또한 하나님을 진실로 섬기는 성도라면 외형적 건물을 짓는 것보다 죄악과 부패로 무너져 가는 마음의 성전을 수축하는데 집중하라고 지적한다.

? 16세기 종교개혁 운동의 발화점이 된 루터의 95개 반박문은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게 교회 개혁의 필연성과 정당성을 깨우쳐 준다. 종교개혁 기념 주간을 맞이하여 진리로서 ‘개혁된 교회(reformed)는 날마다 개혁되어져 간다(reforming)’는 종교개혁의 대원칙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아로새기고 그리스도의 복음에 충실하고 온전한 교회와 신앙을 세워나가도록 각고면려하는 기회로 삼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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