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G 자유게시판 제목예배인 듯 예배가 아닌 예배에 대하여2019-08-29 18:24:40작성자김병혁 [예배인 듯 예배가 아닌 예배에 대하여]지난 주에 허*훈 성도님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셨지요. 사업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많은 고심과 기도가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주일을 지킬 수 있는 일이라 최종 결심하게 되었다는 성도님의 고백에 목회자로서 안도감과 고마움을 갖습니다. 그런데 허성도님 부부와 대화를 나누는 중에 주변에 교회 다니는 분들로부터 자주 듣게 되는 질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 당신이 다니는 교회에서는 개업예배를 드리지 않는가?”하는 물음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될만한 사안이라도 다른 이들에게는 고민이 되고 더 나아가 의문을 가지게 되는 일일 수 있습니다. 또한 묻는 이에게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라고 답해 주고 싶어도 질문하는 의도나 태도에 따라서 좀 당황스럽거나 난감하게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다행히 허성도님 부부는 지혜롭게 잘 대처하셨습니다만, 차제에 다같이 생각해 보고 또 정리해 볼 수 있는 기회인 것 같아서 관련하여 몇 자 전해 드립니다.한국교회에는 세계 어느 나라 교회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특이한 현상이 있습니다. 다양한 이름의 예배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출생, 백일, 돌, 생일, 입학, 졸업, 회갑, 입주, 이사, 개업 등등에 예배라는 말을 붙여 사용합니다. 심지어 집이나 자동차를 사게 되었을 때도 심방을 부탁하고 그것을 기념하고 축복하는 예배를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물며 그보다 더 중요한 경우라면 어떤 명목과 이름을 붙여서라도 예배하는 것이 매우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좀 다른 경우일 수 있습니다만,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가에 따라 이름을 달리하는 예배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헌신예배, 구역예배, 열린예배, 찬양예배, 치유예배, 은사예배, 축복예배, 사이버예배... 한국교회는 예배의 다양성과 종류로만 따지면 세계 일등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그렇게 영예롭지도 아니할 뿐 아니라, 자랑할만한 일이 아닙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옳은 일이 아닙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오히려 주의하고 각성해야 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도리어 성경에서 가르치는 참된 예배의 의미와 교훈을 변질하거나 훼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작금의 교회 환경에서는 예배라는 말이 다용도로 사용되고 있지만, 함부로 사용되거나 쉽게 용도변경할 수 없는 고귀한 말입니다. 예배(Worship)란 ‘가치(Worth)있는 지위’(신분, Ship)에게 적절한 영광과 존경을 표하는 것을 의미로서 오직 하나님께 합당한 찬송과 존귀와 영광을 돌려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참된 예배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찬양하며 높이는 일 외에는 어떠한 목적과 이유도 첨가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의 연설 한 대목을 빌리자면, 참된 예배란 ‘오직 하나님의, 오직 하나님에 의한, 오직 하나님을 위한’ 예배여야 합니다. 그런 까닭에 종교개혁자들은 비성경적인 행습과 미신적인 의도가 다분한 로마 카톨릭 교회의 예배(미사)를 타파하고 오직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한 예배를 복원하고 실천하는 일에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들은 깊고 바른 성경 연구를 통하여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예배 내용과 방식 전체가 성경 안에 기록되어 있으며, 따라서 우리는 성경에서 가르치는 대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우리교회가 교리의 표준으로 삼고 있는 몇 가지 신앙고백서(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대소요리문답, 벨직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 등)만 잘 살펴보더라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한 가지만 예를 들어 보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성경적인 예배(제21장 1항)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제21장(예배와 안식일) 1항“참되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합당한 방법은 그 자신이 친히 정해 주셨으므로 그 자신의 계시된 뜻 안에서 한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상상이나 고안, 또는 사탄의 지시에 따라 어떤 가견적인 구상을 사용하거나 성경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 다른 방법을 따라서는 하나님을 에배할 수 없다.”“But the acceptable way of worshipping the true God is instituted by himself, and so limited to his own revealed will, that he may not be worshipped according to the imaginations and devices of men, or the suggestions of Satan, under any visible representations or any other way not prescribed in the Holy Scripture.”제21장(예배와 안식일) 2항“종교적 예배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께 드려야 하며 또한 오직 그에만 드려야 한다.”“ Religious worship is to be given to God, the Father, Son, and Holy Ghost; and to him alone.”오랜 세월 개혁교회는 예배가 가지는 이러한 엄중한 의미와 성격을 인식하여 ‘예배의 규정적 원리’(the Regulative Principle of Worship)라고 불리는 예배 방식에 따라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지금도 말씀에 의해 개혁된 교회들은 예배에 있어서 이것을 기본 원리로 삼아 예배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여러 목적에 따라 다양한 이름과 형태로 행해지는 예배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추세라 하더라도 무조건적으로 수용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예배들이 과연 성경의 가르침에 일치하는 것인지, 개혁교회로서 받아들일 만한가를 면밀히 따져 보아야 합니다. 저의 견해를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에서 용인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간추려 말씀드리자면,첫째, 예배는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며 영화롭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어떤 이유나 외적 조건도 예배의 본질과 목적을 대신할 수 없으며 앞서도도 안 됩니다. 그럼에도 ‘이러 이러하기 때문에’라는 단서를 붙여 예배한다면 그것이 예배의 조건이 될 수 있고, 예배 참석자들은 그 조건이 더욱 충족되기를 바라고 추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닙니다.둘째, 성경에 계시된 뜻과 규정되어 있는 방법에 따라서 예배해야 합니다. 그러나 한국교회에 유행하는 다양한 예배와 형태는 규정적 원리에 따라 드리는 예배가 아닙니다. 외려 성경적 예배의 의미를 간과하고 참된 예배에 대해 오해와 변질을 야기시킬 수 있으므로 이런 종류의 예배는 지양해야 합니다.셋째, 위에 예를 든 한국교회의 다양한 예배는 오직 성경 사상으로서 예배개혁을 이뤄낸 종교개혁자들의 가르침과 현저하게 다를 뿐 아니라, 세계 성숙한 교회들 가운데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예외적인 일입니다. 한국교회내에서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말하기 전에 진리 안에 형성된 보편적 교회로부터 이탈해 있는 자의적인 예배 형태가 아닌가 먼저 반성해야 합니다.넷째, 예배라는 말을 빌미로 현세적 물질주의와 기복신앙을 정당화할 우려가 있습니다. 가령 개업예배를 드리고자 원할 때 목회자에게 무엇을 기대하면서 예배와 말씀을 부탁할까요? 사업의 번창과 성공을 위해서일 것입니다. 상기 언급한대로 이런 것이 예배의 본질과 목적이 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됩니다. 혹자는 좋은 일이 있을 때 목사님을 초청하여 예배드리는 것이 무슨 문제가 있는가 항변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굳이 예배가 아니라도 마음을 같이하고 축하할 방법은 얼마든지 많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질 영광을 사람을 위한 영광으로 대체하려 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그럼 성도들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예를 들어, 이사를 하고, 개업을 하고, 자녀를 낳고, 자동차를 사고, 좋은 회사에 취직하고, 사업에 성공하여 성도들과 함께 기쁨과 감사를 나누고자 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성도들을 초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일을 고백하고 기쁨을 나누면 좋겠지요. 그때 간단한 다과나 차를 준비하여 대접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요. 또 미처 알리지 못한 일이라도 함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가정이나 사업장을 직접 방문하여 신앙 안에서 격려와 축하를 전하는 것도 좋은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할 때에도 혹 연약한 성도들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여 겸손하고 지혜롭게 그리고 분에 넘치지 않게 행해야 합니다.그리고 그럴 경우에 성도로서 잊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신앙적 기준이 있습니다. 첫째, 무엇을 하든지 우선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한다(고전 10:31)는 것과 둘째, 하나님의 은혜에 항상 감사해야 한다(고전 1:4)과 셋째,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함께 지어져 가는 지체라는(엡 2:22)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도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 이런 마음으로 축하하고 격려하고 축복하는 것은 그 자체로 참으로 귀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좋은 일을 당한 성도는 기쁨과 감사를 하나님께 헌상으로 표하고, 나아가 교회와 성도를 위해, 가정과 이웃을 위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일에 동참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예배는 오직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목적과 방식에 합당하게 힘써 드리되 예배인 듯 예배가 아닌 예배를 고집하거나 부담을 가질 이유는 전혀 없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전해 드리면서 말씀을 마칩니다. 목록답변글쓰기 댓글 [0] 댓글작성자(*)비밀번호(*)자동등록방지(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내용(*) 댓글 등록 더보기-예배인 듯 예배가 아닌 예배에 대하여김병혁 2019-08-29다음믿음의 부모에게 맡겨진 세 가지 역할김병혁 2019-08-08 Share it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