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민 목사 인터뷰

 

ㅣ 주나그네 목사
장 ㅣ 장수민 목사

: 2009년 칼빈 탄생 500주년을 기점으로 국외는 물론 국내 교회에서도 칼빈과 칼빈주의에 대한 관심이 부쩍 많아진 느낌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정통 개혁주의 관점에서 칼빈과 칼빈주의를 바르게 이해하고, 그 정신에 따라서 교회개혁을 이어가는 목회자나 교회를 찾아보기가 더욱 힘들어져 가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오늘 SDG 개혁신앙연구회에서는 국내에 칼빈 전문가로 정평이 나 있는 장수민 목사님을 모시고 귀한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질까 합니다. 우선 장수민 목사님에 대하여 궁금해 하실 분들을 위해 약간 소개 말씀을 전하면요. 목사님께서 펴낸 칼빈의 ‘기독교강요 분석서’라는 책이 있는데요. 이 책을 추천하는 몇 분 교수님의 평을 그대로 전해 드리겠습니다.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의 조병수 교수님은 이 책을 ‘칼빈 연구사에 일어난 또 하나의 쾌거다.’라고 하시고, 같은 학교에 계신 이승구 교수님은 ‘이 책으로 칼빈의 기독교강요 연구사에 있어서 새로운 분기점이 시작되었다.’고 하시고, 평택대신학전문대학원의 안명준 교수님은 ‘기독교강요에 대한 세계 최초 완전 분석서이며 해설서이다.’라고 평가해 주셨습니다. 개인적인 친분만으로는 이런 평가가 나오기 어렵지 않은가 싶습니다. 장목사님으로부터 배움을 얻은 많은 분들도 장목사님을 칼빈 전문가로 인정하는데 주저함이 없는데요. 현재는 칼빈 아카데미라는 기관을 통해서 한국교회에 정통 칼빈주의 사상을 전파하는데 헌신하시며 또 주언교회를 섬기고 계십니다. 오늘 여러모로 기대가 되는 인터뷰입니다. 우선 목사님께 이제 가벼운 질문 한 가지를 드리는 것으로 인터뷰를 시작해 보도록 하지요. 제가 간단한 소개를 드렸는데 마음에 드세요?

장 : 아이고, 너무 과찬하신 것 같습니다.(웃음)

: 말씀드린 세 분 교수님의 책에 대한 평가는 만족하십니까?

장 : 원래는 아주 상당히 긴 내용으로 과찬을 해주셨어요. 제가 그런데 그것을 다 이렇게 공개하기가 좀 계면쩍어서 그렇게 그냥 한 줄 한 줄만 기록해 두었습니다. 다들 좋게 평을 해주셔서 저도 스스로 놀랄 정도였죠.

: 개인적인 친분 때문에만 그렇게 쓰신 건 아니겠지요?(웃음)

장 : 그분들하고 친분이 없어요.(웃음)

: 이제부터 본격적인 말씀을 나눠 보고 싶습니다. 여러 분이 장목사님을 칼빈 전문가로 지목하는데 주저하지 않으시던데요. 목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장 : 아유, 좀 부담스럽고요. 칼빈에 대한 이해를 하다보니깐 너무 귀한 선생님이라서 계속 빨아들이는 흡입력이 있어서 거의 빨려가는 것이지, 전문가다 아니다 하는 얘기는 조금 그렇습니다.(웃음)

: 본인이 말씀하시기에는 좀 그러시겠죠.(웃음)

장: 네(웃음)

: 목사님의 저서나 강의를 통해서 그렇게 여기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칼빈 연구를 하시게 된 구체적인 계기가 있었나요? 칼빈에 대해서 언제부터 그렇게 관심을 가지셨는지요?

장 : 원래는 좀 더 일찍 이런 작품들도 나올 뻔 했어요. 1984년도에 100주념기념관에서 목사님들을 대상으로 성경을 가르치게 되었어요. 그때 제 나이가 26살이었고 전도사 때였습니다.

: 26살의 전도사가 목사님들 대상으로 성경을 가르치셨단 말씀이세요?

장 : 어떻게 제가 성경을 좀 안다고들 생각을 하셨는지 신학생 때에 여기저기 목사님들 그룹에 많이 불려 다녔어요. 그러다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나니 주변 동기들이나 목사님들이 좀 더 공개적인 방식으로 교계에 유익을 줄 수 없느냐고 하셔서 공개 세미나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84년 8월, 그것이 100주념 기념관에서 가진 첫 번째 데뷔였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에 여러 곳에서 성경공부 모임을 이끌게 되었는데, 한번은 어느 후배가 저를 찾아와서 제가 다니던 신학교에서 성경공부를 인도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였어요. 그래서 대한신학교 동아리 모임에서 10월 달에 성경공부를 진행하게 되었죠. 나중에는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는 통에 다른 동아리들이 전부 문을 닫아야 할 지경에 처하기도 하였어요. 나중에 듣고 보니깐 그 당시 제가 그 신학교의 전설이었다고 하더군요.(웃음)

아무튼 저도 놀랍기만 한 일이었는데,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당시 신학생들이 신학교에서의 배움에 만족을 못했던 것 같아요. 수박 겉핥기였다고 할까….. 저를 통해서 조금씩 만족이 되었던지 학내 대부분의 동아리가 제가 이끄는 성경공부 모임에 흡수되었고, 그 해 겨울 방학에는 급기야 학교 강단을 빌려서 철야를 하면서까지 성경 공부를 진행할 상황이 되었어요. 그런데 참 말하기 곤란한 얘기인데, 어느 교수님의 문제 제기로 결국 마찰이 생겨서 학교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 후에 용산구청에서 제공하는 장소에 모여서 성경공부 모임을 지속하기는 하였는데, 그때부터 제가 속한 교단과 노회와 갈등이 불거지기 시작하였지요. 윗분(?)들이 볼 때, 제가 못마땅하게 생각되었던 거죠. 그렇지만 그 나이 때면 누구나 불의를 참지 못하는 그런 기상이 있을 때 아닙니까? 그러다보니 성경공부 모임을 통하여 교회 개혁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었죠.

: 교단이나 노회에서 볼 때는 목사님을 불편하게 생각할 부분들이 있었겠군요.

장 : 그렇죠. 그런데도 저희 교단뿐 아니라 타 교단의 목사님들도 성경 공부하러 오셨어요. 그런데 당시 저는 전도사인데, 목사님들을 가르치는 입장이 되다 보니, 목사라고 부르기는 안 되고 그렇다고 전도사라고 부르기는 미안하고 해서 저를 사경사라는 명칭으로 불러줬어요. 그리고 성경공부 모임을 ‘66사경회’라고 불렀습니다.

: 66사경회요? 어떤 의미이죠?

장 : 성경 66권을 배우겠다는 의도로 66사경회라고 불렀는데, 저를 좋지 않게 여기던 일부가 의도적으로 666집단이라는 부르는 거에요. 더 어처구니없는 일은 66사경회에서 공부하는 사람은 노회가 안수를 안 준다는 거예요.

: 교단 내에서 그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는 말씀이군요.

장 : 네. 노회에서 그렇게 나오니깐 한 150명까지 모여든 후배들 중에 의지가 있는 사람들은 남았지만, 대다수는 어쩔 수 없이 모임을 나가게 될 수밖에 없었어요. 그때 비로소 제도권의 힘이라는 걸 맛보게 되면서 참 슬픔을 겪었어요. 그 때 칼빈에 대해 많이 알아가던 차였는데, 성경을 가르칠 때 개인의 주관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해석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면서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겁도 없이 번역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한 두세장 밖에 손을 못댔지요. 왜냐하면 성경공부에 몰두하게 되면서 칼빈에 관한 개인 연구는 미뤄질 수밖에 없었던 거죠.

: 개인적으로 아픔과 아쉬움이 크게 느껴질 만한 시간들이었군요.

장 : 예. 이후로도 이러저러한 모임에서 성경공부 모임을 인도하다가 양재동에 있는 트리니티 횃불선교회와 연결되어 본격적인 성경공부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횃불회관이 지어지기 전이었는데, 최순형 장로님의 한남동 집에서 목사 횃불회라는 이름으로 많은 목사님들이 성경공부를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89년도에 그곳에 가서 특강을 하고 왔더니 그 해 여름에 목회자 3박4일 합숙훈련이 있는 거기에 와서 또 해달라는 거에요. 당시 저는 대신교단에서는 안수 받을 길이 없는 상태였고, 그저 성경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만 있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때였지요. 아마 89년도, 90년도 두 번을 그 합숙훈련에서 특강을 했을 거에요. 당시에 목사님들이 성경 자체에 굉장히 목말라 있다 하는 걸 제가 느꼈죠. 그러다가 횃불선교회에서 정기 강좌를 맡아달라는 부탁이 들어왔어요. 그런데 목사의 신분이 아니다 보니 활동에 제약이 많았고, 강의계획도 무산 되었죠. 이 때 여러 목사님들이 저에게 안수를 받을 것을 권면하셨어요. 하지만 제가 속했던 교단과는 껄끄러운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어느 작은 교단에서 안수를 받았어요. 제 편에서는 사역을 위해 목사라는 칭호를 사용할 수 있는 객관성을 확보하는 정도로 생각했던 거죠.

: 그렇군요. 그런데 저로서는 26,7세의 나이에 안수도 받지 않은 채로 목사님들과 신학생들을 대상으로 성경을 가르친다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데요. 그럼에도 그런 사역을 왕성하게 하셨다는 것은 젊은 나이임에도 성경지식이 탁월하셨다는 이야기인데, 어떻게 성경지식을 쌓게 되셨는지요? 그리고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번역하기 시작하셨다는데, 칼빈주의와의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말씀해 주세요.

장 : 제가 군대에 있을 때,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시구나 하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감사한 일은 이런 경험을 하게 되면 은사주의자들이나 체험주의자들은 그 경험에 몰두하게 되는데 저는 하나님의 섭리로 성경에 관심을 갖도록 인도해 주셨어요. 그 일을 계기로 어렴풋이 목사의 소명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고, 실력 있는 목사가 되기 위해서는 성경을 잘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지요. 그래서 군대에 있을 때부터 성경을 열심히 읽고 암기도 많이 했어요. 군대를 제대한 후에는 어느 분이 힘을 써 주셔서 잠깐 회사 생활을 하기도 했었지만 이내 그만 두었죠. 그렇게 직장을 그만두고 신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신학교에서 알게 된 어떤 분에게 그만 사기를 당하게 돼서 빚잔치를 하고 어쩔 수 없이 집을 서울 망우동에서 양평에 있는 양수리라는 곳으로 옮기게 되었어요. 그때 집에서 신학교까지 버스로 왕복 4시간이 넘는 먼 길을 통학하면서 성경을 뜯어서 통째로 읽고 외우면서 다녔어요. 그러다보니 점차 성경에 대한 객관적 이해를 가지게 되었던 거죠.

: 그때는 성경에만 관심을 가지신 건가요?

장 : 그렇진 않구요. 신학교에서 교수님들 강의를 들으며 ‘결국 신학공부는 내가 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어요. 조금 눈썰미가 있어서 올바른 계통의 책을 읽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고 좋은 책들을 섭렵해가기 시작했죠. 그렇지만 저는 역시 성경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많이 잊어버렸지만 그때는 성경을 참 많이 외웠었죠. 학교 수업 시간에 교수님들이 강의를 하시다가 성경 어느 부분을 기억을 못하시고 더듬으면 제가 “어디 어디요.”라고 말씀드리기도 하고, 내용이 좀 빗나가면 ‘사실은 이런 내용이지 않습니까?’라고 얘기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주변 사람들로부터 성경을 좀 아는 학생으로 인식되었던 거죠.

: 그런 정도로 다른 분들이 성경을 배우겠다고 관심을 가졌을까요?

장 : (웃음) 성경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좀 남달랐겠지요.

: 성경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과정을 말씀해 주셨는데요. 그런데 그런 중에 기독교강요를 번역하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가지게 되셨나요?

장 : 신학교에 가면 칼빈에 대해 소개받잖아요. 그런데 제게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예정론이었어요. 사람이 창세전에 예정된다는 말을 가지고 정말 씨름 많이 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칼빈의 책들과 주석을 많이 보고, 기독교 강요도 보고 이렇게 시작을 했죠. 그러면서 점차 예정론에 대한 믿음이 생기게 되었고,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번역해 보고 싶은 생각도 갖게 된 거죠. 뭣도 모르고 뛰어들었던 거죠.(웃음)

: 새롭게 갖게 된 칼빈에 대한 관심과 그동안 공부해왔던 성경공부 사이에 일종의 어떤 접합점을 찾으시게 된 거군요?

장 : 그런 셈이죠. 결론적으로 성경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이 성경해석을 근거한 교회의 건설, 이 사이를 연결해 주는 하나의 해석은 고백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한 고백신학을 한 책이 기독교 강요라고 확신하게 된 거죠.

: 놀랍고 부끄러운 일이네요. 지금 목사님께서 말씀 하시는 그 시절의 저는 한없이 철없던 것 같아서요.(웃음) 그 이후로 칼빈을 꾸준히 연구하신 거군요. 거슬러 올라가면 상당히 오랜 시간 같은데요.

장 : 횟수는 그러한데요. 사실 공백기가 좀 있었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목사 횃불회의 전임 강사가 되면서 전국 지부를 순회하며 성경공부를 인도하던 때가 있었어요. 그 기간 동안에는 개인적인 연구 시간을 내지 못할 만큼 무척 분주하였습니다. 일주일내내 전국 일주를 하며 성경공부 모임을 인도하러 다녔었죠.

: 그러셨군요.

이제 본격적으로 칼빈과 칼빈주의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나눠볼까 합니다. 현재의 한국 교회의 칼빈과 칼빈주의에 관한 인식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십니까?

장 : 아…(한숨) 애석하게도 칼빈 이해에 있어서 왜곡이 난무합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죠. 칼빈을 조직신학의 원조라고 말씀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에는 어폐가 있어요. 조직신학이라고 학문은 칼빈 이후 후기 정통개혁교회 안에 들어온 스콜라주의의 산물입니다. 그 당시에는 조직신학이란 학문이 태동하지 않았죠. 또 어떤 이는 칼빈의 기독교 강요가 사도신경의 구조를 모방했다고 주장하는데, 그것보다는 칼빈이 사도신경을 고백했다는 편이 맞습니다. 성경이 완성되기 전에도 교회는 세워져 나갔었어요. 그렇다면 그 교회를 세웠던 원동력이 무엇인가가 중요한데, 그것이 신앙고백이고, 이 신앙고백의 내용이 사도신경이라는 거죠. 누군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라고 고백하게 될 때에 그것만으로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온전한 고백이 될 수 없는 거죠. 믿는다고 고백하는 예수님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를 봤을 때 사도신경적 구조를 가진 해석이 나와야 된다는 것이죠. 성경이 교회를 낳고 교회가 성경을 보호하는 관계가 해석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데, 이 해석이 조직신학이 아닌 고백신학이 되어야 한다는 거죠. 저는 이 고백신학의 원천 덩어리가 기독교 강요라고 생각해요. 이 기독교 강요에서 1559년도 세계최초의 프랑스 개혁교단을 비롯해서 여러 종류의 신앙고백들이 나왔거든요.

: 오늘날 신학의 한 분과인 조직신학에 어떤 한계가 있다는 말씀인가요?

장 : 그렇습니다. 조직신학은 자신의 성향에 따라서 취사선택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방법론에서 이성주의를 전제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지요. 물론 정통 신학 안에서도 엄연히 조직신학의 자리가 분명히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 정통 고백교회 안에서 신앙고백의 틀을 가지고 있지 못하면 이성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돼버리는 거예요.

: 말씀을 들어보니, 조직신학 자체에 대한 거부는 아니신 것 같은데요. 다만 오늘날 조직신학의 방법론에 있어서 이성적인 관점에서의 취사선택의 위험성을 지적하시는 것이라고 이해해도 될까요?

장 : 예. 조직신학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조직신학적 방법론 자체가 이성주의적 스콜라주의를 지향해 간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 정리하면, 조직신학의 체계와 방법론이 스콜라주의적 관점보다는 신앙고백적 관점에서 성경을 보고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말씀이지요?

장 : 예. 항상 그 부분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어떤 성경적인 해석에 대해서 논의를 하더라도 결국 그것은 내가 그렇게 해석하고 깨달은 바대로의 삶에 내 자신이 성육되어 가느냐 하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항상 치열하게 나타나야지, 그렇지 않으면 어느덧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변신학으로 빠지게 됩니다.

: 그러니까 신앙고백적 신앙이란 것은 결국 이론뿐만 아니라 실천에 있어서도 삶으로서 증거되는 신앙고백적 형태로 나타나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장 : 네.

: 이런 점에서 한국교회가 (전반적으로) 칼빈과 칼빈주의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장 : 제가 보기엔 잘못 이해한 정도가 아니라 오해와 왜곡이 심한 것 같습니다.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조직신학과 기독교 강요가 각각 취하는 구조가 있어요. 그런데 조직신학에서는 서론에서 계시를 다루면서 성경을 얘기합니다. 일반계시, 특별계시를 말하면서 특별계시로서의 성경, 하나님 말씀으로서의 성경을 이야기하면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권위를 이성적으로 부여하는 작업을 해요. 이를 위해 사본학이나 여타의 학문들을 동원하여 성경의 무오류성과 영감론을 증명해 가는 방식을 취합니다. 반면에 기독교 강요는 성경의 무오류성을 이러한 방식으로 입증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아요. 하나님 말씀은 성신께서 믿게 해주시는 것을 전제로 출발한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조직신학적인 방법은 이성적인 설득력으로써 성경에 권위를 부여하려는 것이고, 칼빈은 성신이 말씀을 조명하셔서 성경에 대한 확신을 줌으로써 하나님 말씀이 된다는 것이지요.

: 말씀대로라면, 오늘 우리가 접하는 칼빈과 칼빈이후의 신학에 간격이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요.

장 : 그렇습니다. 어떤 그 거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질적인 간격이 있어요.

: 그렇다면 그 간격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장 : 예정론 같은 경우도 그래요. 에정론과 관련하여 전택설이냐 후택설이냐는 싸움이 치열합니다. 놀라운 것은 전택설주의자나 후택설주의자나 모두 다 칼빈에게서 전거를 찾아요. 그런데 기독교강요를 보면 실제로 양자의 해석을 취할 수도 있는 내용이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석학인 칼빈이 자신의 말속에 향후 상반되는 이론을 가지고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모순이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을까요? 그렇게 생각할 수 없다는 거죠. 이것을 인정한다면 여기에서 어떤 질문이 나와야 하는가 하면, 칼빈이 예정론을 말할 때에 본래 의도가 무엇이었는가 하는 게 나온다는 것이죠. 칼빈이 예정론을 말할 때 ‘선택의 거울은 그리스도다.‘ 하는 말을 하지 않습니까? 무슨 뜻인가 하면, 지금 내가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면 내가 예정된 자이고, 예정된 자라면 예정의 시점에 대해서보다는 예정의 불변성과 확고성과 같은 주제에 대해서 더 관심 있게 이야기해야 하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예정론을 말하면 과거로 계속 거슬러 올라가서 어떤 역사적인 시점을 찾아내려고 하는 습관이 있어요. 이성주의를 따라서 회귀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어요. 현재 이러한 태도로 분류될 수 있는 성향들이 조직신학적 체계 속에서 마구 튀어나온다는 거죠.

: 그러니까 어떤 면에서는 원래 칼빈과 칼빈 이후의, 포스트칼빈 그 이후 시대의 칼빈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어떤 칼빈적인 방법이 아닌, 그러니까 어떤 이성주의나 아니면 스콜라주의적인 방법론이 그 속에 많이 개입이 되었다 이렇게 판단을 하시는 거군요. 그것이 오늘날 우리 신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고요.

장 : 예. 아주 많이 미치고 있죠.

: 그러니까 결국은 같은 주제를 말하더라도 그 주제가 갖고 있는 본질적인 어떤 목적을 말함에 있어서는 달리 볼 수 있다는 건가요?

장 : 예. 다릅니다.

: 이런 이유 때문에 기독교 강요 분석서를 쓰신 거군요.

장 : 기독교 강요 분석서는 2000년에 쓰게 되었어요. 여기에는 조금 상황 설명이 필요한데요. 1993년 말에 교계에 대한 환멸을 느끼고 제가 가진 목사직을 내려 놓았습니다. 자발적으로 은퇴를 한 거지요. 목사라는 타이틀이 아니라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또한 교회의 한 지체로서 살아가는 것으로 만족하겠다 하는 생각을 가지고, 내가 속해야 할 교회를 찾았어요. 그래서 생각한 교회가 김홍전 목사님의 성약교회와 김성수 목사님의 우만 교회였어요. 하지만 최종적으로 선택한 교회는 브레든 처지(형제 교회)였어요. 신학적인 지식이 좀 부족하더라도 거짓과 위선 없이 단순하게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가는 교회를 선택하게 된 것이지요.

: 좀 아이러니한데요?

장 : 그렇죠? 당시 저는 굉장히 지쳐 있었어요. 많은 배신과 모함 속에 큰 상처를 받고 있었고, 목사로서의 공적 활동이 끝났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지요. 굉장히 주관적인 생각입니다만, 그 당시에는 나를 지키고 보호하고 살아갈 수 있는 좀 더 순수한 믿음의 공동체를 찾고 싶었어요. 신앙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만 확실하다면 오히려 겉으로라도 순수해 보이는 교회가 더 낫다고 생각하였던 거지요.

: 이해는 됩니다만, 그래도 장로교회와 형제교회와는 차이가 좀 많지 않습니까?

장 : 저도 피해자였지요. 만일에 제가 온전한 교회 안에서 온전한 신앙생활을 했다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겠지요. 제가 있었던 교회는 나름대로 개혁된 성격을 가지고 있었어요. 형제교회에는 원래 없는 목사직을 도입한 교회였지요. 하지만 결국 그 교회도 정리하게 되었어요. 박해를 받고 숨어 지내려 했지만 결국 하나님 앞에 해 오던 모든 일에 관심을 다 끊어버릴 순 없겠더라구요. 결정적인 사건이 1992년도에 열렸던 제7회 목회자 세미나였어요. 수원에 있는 합동신학대학원의 강당과 기숙사를 전부 빌려서 목회자 세미나를 열었지요. 횃불회 전임강사로 강의를 하면서 간간히 해 오던 세미나였는데 마지막으로 한 때가 그 1992년도였어요. 5박 6일 동안 90분 강의를 40개 연속으로 할 정도로 열강을 했거든요. 제가 목청은 타고 났어요. 내용이 없어 엉망이지.(웃음)

: 그 세미나에서 전한 내용은 무엇이었나요?

장 : 성경 구속사와 주제별 성경 강의였어요. 그때 거기 모였던 150명의 목회자들이 강의 요청을 계속 하였는데, 지방에 계신 분들이 많아서 대신에 월간 개혁 교회라고 하는 잡지를 쓰기 시작했어요. 34호까지 나왔는데 이 잡지를 통해서 성경 강해와 구속사 강해 자료를 전달하였지요. 그러다가 1997년에 인천에 있는 어느 교회에서 3년 반 목회를 하게 되었어요. 목회자 유고 상태라 그 교회의 청빙을 받게 되었는데, 저를 계속 붙들어 두려는 과정에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도망하다시피 외국으로 나가게 되었지요. 2000년 3월에 호주로 가게 되었어요. 그곳에 번역을 잘 하는 친구 목사가 있어요. 원광연이라고.

: 책을 통해 익숙한 분인데요? 기독교강요도 번역하신 분이시죠?

장 : 예. 그런데 호주에는 얼마 있지 못하고 뉴질랜드로 갔어요. 뉴질랜드에서 시간적인 여유도 찾고, 다시 영어 공부도 좀 하고 지내는 동안 이전에 기독교강요를 번역하다가 중단했던 일이 생각난 거죠. 하지만 기독교 강요를 번역한다는 건 저한테 벅찬 일이고, 시간적으로도 많이 걸리고….. 그러던 차에 배틀즈(Ford Lewis Battles)가 쓴 기독교강요 분석서를 접하게 되었어요. 그것을 보자마자 번역을 해서 내놓으면 후학들에게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 기독교강요대신 그것을 번역하기 시작하였어요. 그런데 하다보니까 이것만 가지고는 사람들이 기독교 강요를 이해를 못하겠더라구요. 그래서 차라리 내가 기독교 강요를 분석서를 써 보자는 생각을 갖게 되고, 헨리 비버리지(Henry Beveridge)판을 가지고 분석서를 집필하게 된 것이죠. 그런데 책을 집필하던 중에 갑작스런 아버님의 소천 소식을 전해 듣고 부랴부랴 한국에 오게 됐어요. 그 후로 국내에 머물면서 2년간을 몰두해서 집필을 마쳤어요. 그리고 쓰러지게 되었죠.

: 그러면 기독교 강요 분석서가 출판된 게 언제쯤이죠?

장 : 2005년도요. 그리고 칼빈의 신학과 목회라는 책 집필 작업에 들어갔지요. 한 6년 걸렸어요. 원래는 2009년에 내려 했는데, 2010년도에 출판되었어요. 2009년도가 되니까 칼빈 500주년 기념이라 해서 세계적으로 여러 가지 신선한 자료들이 많이 나오더라고요. 그전까지 나온 칼빈에 관한 전기는 너무 천편일률적인 내용들이었어요. 그래서 전기에 신학적 해설을 곁들인 작품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영어권에서도 연대기적인 칼빈의 작품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쪽으로 방향을 잡아서 저술을 하게 됐습니다.

: 그렇군요. 말씀하신 것 같이 장 목사님 하면 기독교 강요를 떼어서 생각하기 어려운 데요. 기독교 강요가 갖는 역사적 의의라면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요?

장 : 한마디로 말해서 기독교 강요는 개혁교회의 신학적 원전입니다. 기독교 강요야말로 개혁신학의 원천이라는 것이죠.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개혁교회란 칼빈에 의해서 전체적으로 신학적인 정립이 완성이 되었고요, 그의 가르침과 배움에 의해 신앙고백들이 형성되고, 개혁교회들이 건설되어 나갔다고 보아야 합니다. 개혁교회에 전해지는 그러한 여파랄까 여진이 지금까지 전해 오고 있는 거죠. 그런 면에서 볼 때, 작금의 한국교회는 참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의 현실 속에서 진정한 개혁 내지는 성경적 교회로 돌아가는 길이 있다면 이미 하나님께서 몇 세기 전에 역사 속에서 보여 주신 내용을 구현하면 되는데, 이것이 철저하게 무시되고 있어요. 앞으로 주님께서 얼마나 더 허락하실지 모르겠지만 남은 생애를 교회 안에 기독교강요를 가르치는 교사들을 세우는 일에 헌신하고 싶어요. 기독교강요를 배운다는 것은 기독교강요만 배운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것과 관계되어 있는 종교개혁사라든가 이런 것들을 함께, 즉 다시 말해 개혁신학 덩어리를 배우는 것이죠. 기독교강요에 대한 이러한 이해와 배움을 줄 수 있는 실력을 지닌 기독지성인들을 만들기 위해 교회 속으로 들어가서 스터디운동을 전개해 간다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 그러고 보니 ‘존 칼빈의 신학과 목회’ 책 표지에 ‘한국 교회 안에 기독교강요 학습 운동을 일으키는 것이 저자의 소망이다.’라는 글귀가 있던데 이런 뜻이었군요.

장 : 그렇습니다.

: 이런 소망 때문에 칼빈 아카데미를 설립하신건가요?

장 : 그건 아니고요. 외국에서 급거 귀국을 한 그 다음해인 2004년 초에 구로동에 있는 조그만 IT회사의 신우회에서 성경공부를 인도하게 되었어요. 처음 가게 된 자리에서 한두 시간 원론적인 얘기를 했죠. 제가 강의를 하고 나서 일부는 자신들과 맞지 않는다고 했지만, 일부는 계속 듣기를 원했어요. 그래서 이 분들하고 2004년부터 5년간을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6년차 되던 해에 그분들과 주언 교회로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교회를 염두하고 시작한 모임이 아니었어요. 처음부터 교회를 이루고 부흥해야 한다는 목표를 가졌다면 좀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갔겠지만, 오히려 제 모습을 상실해 가는 교회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만큼이라도 구원을 받아야 되지 않겠는가?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누려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모이게 된 것이지요. 교회를 처음 시작할 때에는 모임 장소가 정해지지 않아서 이곳저곳 전전하다가 겨우 정착을 해서 모이고 있습니다.

: 성도들을 대상으로 지금까지 연구하셨던 내용들을 가르치고 계시나요?

장 : 교회가 세워지기 이전 5년 동안 웬만한 공부는 물론이고, 기독교강요도 다 공부했어요. 그리고 주언교회를 이루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이 기독교 강요 모범설교였어요. 기독교강요 4권 전체 80장을 한 이년 반에 걸쳐서 설교를 다 했습니다. 저는 설교 원고를 성도들에게 항상 나누어 줘요. 매번 A4 용지로 10페이지 되는 분량을요. 그렇게 하는 이유는, 첫째는 제가 선포하는 말씀에 대한 객관적 점검을 받겠다는 것이고요. 또 하나는 이제 예배 시간에 설교에 집중하기 위해서지요. 예배는 몸으로서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 시간에 뭐 공상을 한다든지, 불충한 태도를 취하게 되면 공동체 예배에 누를 끼치는 거거든요. 그래서 설교문을 나누어 주어서 같이 읽고 보면 그 시간에 다른 생각을 하지 않게 되는 거죠. 세 번째로 설교자는 항상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고 진지해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선한 규례를 자신에게 만듦으로써 임기응변적으로 설교하지 않겠다는 저의 의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 목사님은 그렇게 하시지만 모든 목회자가 그렇게 하기엔 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웃음)

장 : 그렇죠. 그거는 제가 그렇다는 얘기죠.(웃음)

: 그런데 성도님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그런데 지난번에 목사님을 칼빈 아카데미 모임에서 뵈었던 것 같은데요.

장 : 거기가 칼빈 스쿨입니다.

: 그럼 칼빈 아카데미하고 칼빈 스쿨하고는 다른가요?

장 : 2004년도에 IT 계통에 있는 신우회와 만나면서 여기에 계신 분들이 제가 의도하는 바를 아셔서 홈페이지를 만들어 주셨어요. 지금으로서도 굉장한 기술력이 들어 있는 홈페이지입니다. 그런데 다른 연구에 바쁘다 보니까 제가 운영을 잘 못했어요. 그러다가 칼빈 아카데미라고 하는 이름을 사용하기 좀 복잡한 한 일이 생기면서 칼빈 스쿨이라는 이름으로 홈페이지를 다시 만들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고 나니까 문제가 해결이 되어서 지금은 칼빈 아카데미와 칼빈 스쿨을 같이 사용하는 형편이 돼버렸어요.

: 다른 이름이지만 같은 기관이라는 말씀이군요. 그런데 지난번에 보니까 많은 분들이 칼빈 아카데미 세미나에 참석하여 교육을 받고 있던데요. 어떻게 그런 모임을 갖게 되셨는지 과정을 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장 : 앞에서 말씀드린 신우회 성경공부를 인도하면서 칼빈의 신학과 목회 집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을 때였어요. 안산에 한 2, 3만 명 모이는 대형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의 교육부를 맡고 있는 집사님들로부터 교사 세미나 인도 요청을 받게 되었어요. 그런데 진리라는 것이 귀동냥 하듯이 한두 번 듣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그런 것을 인도하는 사람이라면 널려 있으니 정중하게 거절을 했지요. 그랬더니 그럼 장기적인 가르침을 베풀어 줄 수 없겠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마침 제가 기독교 강요를 가르치는 지도자 양성을 위한 교안을 만들고 있는데, 여러분들이 한번 배워보겠냐고 물었지요.

: 역제안을 하셨군요?(웃음)

장 : 그렇게 해서 그 교회 여섯 분의 집사님들을 대상으로 1년 동안 공부를 하게 되었어요. 어느 집사님 개인 회사 사무실에서 40여회 강의를 했을 겁니다.

: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처음에는 개인적인 이유와 함께 굉장히 소박한 모임이었군요.

장 : 예. 대형 교회에 속해 있는 분들이었지만 개혁신앙을 알고자 하였기에 적은 숫자지만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분들이 수료를 하고 연이어 2기 모임을 가졌는데, 한 3분의 2쯤 진도를 나갔을 때 강의실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생겨서 중단되고 말았어요. 하지만 성경 자체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다고 생각되어서 성경 자체의 구조적 주해를 집필하기 시작하였어요. 그러면서 한 가지 일을 더 하게 되었는데, 칼빈의 신학을 종합적으로 올바르게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는 성경 학습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그것이 아볼로 바이블이에요.

: 그것도 한번 여쭤보고 싶은 내용이었습니다. 성경 학습 프로그램이라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장 : 이것도 좀 거슬러 올라가야 되는데요. 1984년도에 100주년 기념관에서 1회 목회자 교육 세미나를 할 때부터 Overhead Projector(OHP)를 사용하였어요. 당시만 해도 첨단 도구였지요.(웃음) 그때부터 교회 교육에 멀티 연출을 시도했던 거죠. 성경을 3M 컬러 필름을 가지고 한 200장정도 도표를 만들었어요. 그것을 OHP를 활용하여 소개하였지요. 제 생각엔 하나님이 주신 가장 과학적인 문명은 온전한 의미에서 믿는 사람들이 더 잘 써야 한다는 사고를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성경을 객관적으로 바르게 이해시켜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외국에 있을 때 플래시(Flash) 프로그램을 배웠어요. SWISH라는 프로그램인데 그것을 가지고 프레젠테이션 할 수 있도록 만든 게 아볼로 바이블입니다. 그렇다고 이 프로그램이 요즘의 프로그램들처럼 휘황찬란한 영상으로 이루어진 것은 전혀 아니고요. 어떤 가르침을 베풀기 위해서 힌트를 주는 거죠. 말 그대로 프레젠테이션이에요. 나름대로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만들었어요. 그리고 제작년에 100주년 기념관에서 목회자분들을 대상으로 시연을 했습니다. 한 120분 정도가 모이셨어요. 그분들과 매주 한 번씩 12월 졸업 때까지 공부를 하고 나니까 한 40명내지 50명 정도가 남았어요. 그분들이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기독교 강요를 제대로 배워야겠습니다.” 라고 해서 이분들을 중심으로 칼빈 아카데미 3기가 출발을 한 겁니다.

: 그렇게 이야기가 엮어지는군요.(웃음) 아볼로 바이블 프로그램은 목회자를 위한 것이어서 일반 성도가 다루기에는 좀 어려운가요?

장 : 그렇습니다. 목회자를 위한 프로그램으로 보시면 됩니다. 지금도 업데이트를 하고 있는데,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좋은 전통 사상 체계로 끌어들이려는 의도 때문이죠. 사실 아볼로 바이블에는 그간 저의 연구 자료가 거의 다 들어가 있어요. 앞으로도 꾸준히 업데이트 될 겁니다.

: 목사님의 연구 성과가 집약된 결과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군요.

조금 다른 질문을 해 보겠습니다. 기독교강요라면 어렵게 생각하는 일반 성도분들이 많으신데요. 그분들이 좀 더 효과적으로 기독교 강요를 공부할 수 있는 팁을 좀 말씀해 주시겠어요?

장 : 기독교 강요는 유명세만큼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책이에요. 이 책을 잘 이해하려면 배경 지식이 많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가장 좋은 방법은 전문가로부터 스터디를 받는 것일테고요. 그런 입장이 안 되는 분들은 기독교 강요 해설서와 같은 것들을 많이 읽으셔야 되는데, 다만 선뜻 추천할 만한 것들이 부족해요. 그래도 고육지책으로 한다면 해설서들을 많이 읽으시고, 기독교 강요를 정독 하셔야 겠죠. 그래서 저는 기독교 강요를 읽는데 도움이 되시라고 기독교 강요 정독표도 만들어 놨어요. 1년 동안 나눠 읽을 수 있다든가, 6개월 동안 나눠 읽을 수 있다든가. 그런 것까지 섬세하게 다 해 놨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몸에 체득된 학문적 성향을 가지고 대해서는 안 된다는 거에요. 내 신앙의 고백과 실질적인 삶의 표현이라는 측면에서 치열하게 싸우면서 그 내용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분들은 오히려 어깨에 엄청난 학문의 짐을 지고 한 걸음도 못 갑니다.

: 좋은 지적이십니다. 개혁신학이나 개혁신앙을 한다고 해도 자기중심적이거나 자기만족적인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된다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칼빈주의를 말해도 칼빈을 잘 모르는 그런 상황도 간혹 연출되어지는 것 같습니다.

기독교 강요 학습과 관련해서 한 가지 더 여쭙고 싶은 것은, 말씀하셨듯이 전문가에게 기독교 강요를 배우는 것이 가장 좋은 방안이라고 할 때, 기독교 강요를 잘 가르칠 수 있는 전문가로서의 목사가 필요한데요. 그렇다면 신학교에서 이런 실력 있는 목회자를 배출해야 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텐데, 목사님께서는 우리나라에서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신학교들이 신학 교육을 잘 하고 있다고 보시나요?

장 : 신학의 타락은 교회의 타락을 가져옵니다. 일례로 한국 교회 내에 유대교적 요소가 다분합니다. 유대교는 구약 종교의 변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종파는 두 개의 기둥에 의해서 유지가 됐습니다. 성전(聖殿)과 그 성전과 관련되어 있는 십일조 제도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23장에 보시면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라고 말씀을 하시잖아요. 이런 유대교적 요소가 카톨릭 교회 안에도 많이 들어왔고, 칼빈과 같은 개혁자들에 의해 비판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교회에도 이러한 유대교 유대교적 요소가 들어와 있는 거에요. 다른 신앙은 다 엉망이어도 성전 건축에 열심을 내고 십일조만 잘하면 일등 신자로 생각한단 말이죠. 만약 한국 교회에서 십일조와 성전제도를 없앤다고 한다면 살아남을 교회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원래 헌금의 의미는 교회 공동체가 이루어지기 위해서 각 분자들이 서야 될 구속사적인 해석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자유로운 성신의 감동에 의한 기여로서 하나의 총합을 이루어서 교회가 생명활동을 해 나갈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 십분의 일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늘 현장에서 느끼는 것이지만 목회자들도 (구약적 의미에서) 십일조가 폐지되었다는 말을 굉장히 두려워해요. 아무리 그 대안을 말해도 말이지요.

: 현실적으로 자신들의 목회를 버티게 하는 요소로 생각해서일까요?

장 : 그렇죠. 또 요즘에는 한국 교회 내에 세습 문제가 봇물 터지듯 하지 않습니까? 드러나는 큰 교회만 시빗거리가 되지만 작은 교회들에서 눈에 보이지 않게 이루어지는 세습도 굉장히 많습니다. 왜 이처럼 세습이 강조되냐하면 목사들이 자기가 그만한 재산을 형성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자식에게 물려줌으로써 자신의 노후를 보장받고, 자식에게는 삶의 수단을 보장해 주고 싶은 거지요. 제가 복음을 통해 깨달은 것이 무엇인가 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복음의 핵심은 떡으로 사느냐 말씀으로 사느냐 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떡으로 살기 위해서 말씀을 이용하는 자들이 많다는 것이지요. 기복신앙이 다 그런 거예요. 우리 교회 안에 파생해 있는 이런 기복주의는 기독교의 변질 형태가 아니라 완전 이종 형태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박윤선 목사님만 해도 기복주의와 교권주의에 대항하여 많은 가르침을 주셨어요. 박윤선 목사님은 구약적인 십일조가 신약 시대에 계속된다고 가르친 적도 없고, 교회당을 성전이라고 가르치지도 않았어요. 특히 교회생활의 제반 원리는 헌법을 통해 제시되는 건데, 이 일의 중요성 때문에 나중에 헌법주석을 쓰지 않으셨습니까?

: 어떻게 보면 스승이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 끝을 보고 판단하는 그런 형국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고, 또 한편으로는 선생이 제시해 준 목적에 도달하는 일보다 현실적인 생활을 위해 안주하는 모습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한국 신학 교육의 문제를 지적하시는 중이신데요, 그렇다면 목사님이 생각하는 대안은 무엇입니까?

장 : 대안은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권능의 왕국도 통치하시고 보호하시기 때문에 국가가 제정한 제반 법규나 문교부 정책이나 이런 부분들과 꼭 부딪칠 필요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가가 제정해 놓은 교육이념과 목표를 따라갈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김영삼 정권 때 단설 대학원이라는 제도를 만들어서 Th.M(신학석사)를 하지 않고도 M.div(목회학석사)만 밟더라도 목사 자격을 주도록 하였는데요. 이런 학교들은 철저하게 총회의 직속으로 들어가야 됩니다. 학교 자체를 키우려는 어떤 시도도 해서는 안 돼요. 우선적으로 목사다운 목사를 만드는데 집중해야 합니다. 이게 대안이라면 대안인데, 현실적으로는 풀 수 없는 영원한 숙제라면 숙제입니다.

: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일례로 외국의 좋은 신학교나 교단을 보면 목회자를 양성하는 일을 가장 중요한 사역으로 생각하는데요.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일단 신학교를 외적으로 성장시키는 데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면 전체적으로 신학의 질이 낮춰질 수밖에 없을 텐데요.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분들도 많은 고민이 필요하겠지요?

장 : 한 가지 핵심적인 걸 짚어 본다면 신학교 교수의 사역은 목사후보생들이 올바르고 정통적인 성경 해석과 그것에 근거한 고백적 교회를 실천적으로 이루도록 돕는 것이거든요. 그렇다면 신학교수도 실질적으로 목회 현장에서 교회를 이루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씨름하는 목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큰 교회의 명예목사니, 교육목사니 하는 이름만 걸어 놓고 본인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가는 일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은 교수로서 자격이 없습니다.

: 좋은 신학이란 곧 교회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지적으로 이해하겠습니다.

아까 목사님은 스스로 재야 권에 계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좀 더 적극적으로 제도권 신학 과정 안으로 들어오셔서 학위를 받을 생각은 안 해 보셨는지요?

장 : 저도 그런 생각이 있었지요. 김홍전 목사님이라고 계신데, 제가 알기론 53세인가 56세 때에 목회를 비로소 시작하셨어요. 원래 양반집안 출신으로 선교사들에게 직접 성경을 배우셨고, 경건성과 학문성이 대단하신 분이지요. 이 분이 늦게 따로 교회를 이룬 이유가 있는데, 한 지역교회가 온전히 그리스도의 품격을 구현하는 일만이 하나님 나라의 총체를 이루는 최고의 가치와 영광이라고 생각하신 거지요. 그분은 거기에 모든 걸 걸고, 설교에 집념하시고, 그 설교를 성신이 쓰셔서 제자들을 만들어 내시고, 지금은 노회도 구성하고 자체 신학교도 운영하는 모습으로 성장해 가고 있는데요. 저는 그 과정을 보면서 성령이 말씀을 들어 쓰신 역사의 흐름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56년도에 강설한 설교 내용 중에 한 가지 재미있는 표현이 있는데, 지금 한국 교회가 완전히 썩어 배도했기 때문에 여기에 있어 가지고는 우리부터도 위태롭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다면 그 이후로 1980년대에 제가 신학을 공부할 때는 얼마나 더 타락했겠느냐는 것이죠. 실지로 저는 신학교를 다니며 안 봐야 될 모습들을 보면서 당시로서 저에게 가장 시급했던 일은 제가 알고 있는 것이라도 들고 후배들과 씨름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 그러셨군요. 그럼 국외에서라도 학위 과정을 해 보실 의향은 없으셨는지요?

장 : 없었어요. 당시로서는 어느 정도 정통 신학의 흐름만 알면 혼자 자습이 가능한 시대였어요. 지금은 많은 분들이 외국에 나가서 공부하고 오지만, 어떤 우리가 기대하는 그런 학문의 도와 경지에 이르러서 오시는 분들은 거의 없어요. 그냥 학문만 하고 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 그럼에도 목사님의 신학 여정 가운데 실질적으로 영향을 끼친 분들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어떤 분들이 계시나요?

장 : 가령 김홍전 목사님이 있고요. 직접 배운 것은 아니지만 글을 통해서요. 그 전에는 로이드 존스의 설교를 굉장히 많이 분석했어요. 그리고 게할더스 보스나 바빙크와 같은 분들을 통해서 후기 정통개혁신학 안에서 성경 자체에 대한 바른 관점을 알게 되었고요. 하지만 무엇보다 칼빈 선생이야말로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분이시죠.

: 아울러 성경과 기독교강요를 제외하고 꼭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장 : 일단 게할더스 보스의 책들은 다 추천하고 싶고요. 바빙크의 교의신학도 좋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사실 기독교 강요에 대한 재해설에 불과한 책이지요. 그리고 복음의 혼란과 연결시켜 본다면 로이드 존스의 시대의 표적을 추천하고 싶고, 더불어 로마서, 베드로후서 강해등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 다른 질문입니다. 최근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신앙적인 교류가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장 : 다 부정적인 건 아니지만 대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궁극적인 대안은 결국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한 지역에 서서 거기에서 모든 씨름과 고통, 갈등, 기쁨, 영광이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 교회를 막 섬기기 시작한 입장에서 도전이 되는 말씀입니다.

장 : 교회원들이 일반 낚시 동호회나 산악회의 회원 수준으로 엮어지면 안 됩니다. 교회원은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공적인 은혜의 수단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났다는 것을 서로 고백하고 인정하는 사이여야 합니다. 마태복음 12장 50절에 보면 예수님이 말씀을 가르치실 때에 모친과 제자들이 찾으러 오니까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그러셨거든요. 그리고 돌아가실 때에도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사랑하는 제자에게 ‘네 어머니’라고 하셨어요. 이것은 한 인간으로서 어머니에 대한 효도를 하지 못하고 죽기 때문에 제자에게 부탁한 말씀이 아니에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근거하여 사도 요한이 거듭난 본성으로 새로운 가족관계가 형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어머니를 제자에게 ‘네 어머니’라고 말씀하신 것이지요. 어떤 점에서 거듭난 형제, 자매와의 관계는 믿지 않는 육신의 가족 관계보다 훨씬 더 친밀하고 중요합니다.

: 현재 우리 교회 안에서 굉장히 피상적으로 맺어진 성도들 간의 관계를 지적하시는 말씀 같이 들립니다.

장 : 그 점에 있어서 현재 목회자들이 회개하고 무릎 끓어야 됩니다. 교회라는 단어에 ‘교제’ 교(交)자가 아니라 ‘가르칠 교’(敎)자를 쓰는 이유를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는 진리를 가르치고 배우는 공동체라는 의미거든요. 그래서 교회를 진리의 터와 기둥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목사는 성도 간에 진리로서 상합하고 연락한 가운데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 일에 기여해야 합니다. 그리고 공적인 말씀 선포와 목양을 통해서 성도 개인이 얼마큼 거듭난 본성과 새 사람으로서의 생명력을 지속적으로 표출하는가를 바라보면서 섬겨야 해요. 사람 끌어 모이는 일에만 관심 있고 형식적인 설교로 교회를 이루는 이들은 정말 주님의 큰 책망을 받을 거예요. 기능적으로만 목회를 하는 사람 중에는 나름 큰 교회를 이루고 떵떵거리며 살겠지만 본인은 구원받지 못하는 이도 있을 수 있습니다.

: 목사라면 심각하게 듣고 새겨야 할 말씀이 아닌가 싶습니다.

교회와 관련된 은혜의 방편에 대해서 언급하셨는데요. 한 회원님이 질문을 부탁한 내용입니다. 칼빈주의를 표방하는데도 유아세례를 찬성하지 않는 교회들이 있다고 하는데요. 언약론과 관련하여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장 : 유아세례는 칼빈 선생도 명쾌하게 밝힌 부분입니다. 성인 세례는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의지적인 판단을 가지고 보는 것이지만, 우리 개혁교회의 언약관은 말 그대로 가족 공동체로서의 언약 개념이거든요. 재세례파나 침례교파는 어린 아이들은 신앙을 고백할 만한 나이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세례를 줄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언약 가정의 자녀로 주셨다는 관점에서 세례를 베풀고 부모가 그 아이를 신앙 안에서 잘 양육할 것을 자극하고 격려하는 차원에서 세례를 베풉니다. 세례 자체는 구원의 수단이 아니에요. 그래서 개혁교회에서는 재세례를 주지 않는 것이지요. 이런 부분은 개혁교회에서 매우 분명하게 정리되어 있어요. 그런데 재침례파나 침례교회처럼 유아세례는 못 준 다라든가 침례가 아니면 안 된다는 규정을 정한 것은 그 표상에다가 또 하나의 마술적인 힘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 개혁교회를 말씀하시니 관련해서 한 가지 더 여쭙자면, 우리 개혁교회가 갖는 특징 중의 하나가 신앙고백서를 강조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교회 안에서 신앙고백서를 잘 가르치고, 성도들이 그것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어떤 구체적인 관심이 필요할까요?

장 : 저는 이 질문에 분명한 답변을 갖고 있는데요. 문제는 목사님들이 신앙고백을 가르치면서 신앙고백적 효과를 못 얻는다는 겁니다. 가령 소요리문답 1문에서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을 때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라고 답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것을 얼마나 잘 외우고 유창하게 말하는가 하는 것이 아니에요. 1년 전에 이 고백을 했다 면은 1년 후인 지금에 와서 볼 때 자신의 삶 속에서 실제적인 고백으로 승화되어 있는가를 봐야 된다는 것이죠. 그런데 목사님들이 이것을 확인하지 않아요. 그것이 문제인지조차 모르는 거에요. 유럽 개혁교회에서는 목사를 청빙할 때에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하나가 주일 오전에는 성경을 풀어 설교하고, 오후에는 교리문답을 가르쳐 달라는 것입니다. 제가 뉴질랜드 개혁교회에서 만난 어떤 노(老)할머니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을 16년째 되풀이해서 듣고 있다고 하더군요. 신앙고백은 단순한 교회 교육이 아니라 점검입니다. 이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으면 아무리 다시 신앙고백의 부활을 부르짖고, 이것저것을 도입해도 본래의 신앙고백을 통한 목적 달성은 불가능해요.

: 신앙고백 교육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목사(가르치는 자)가 그 의미와 중요성을 아는 것이다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받아들이는 정통 개혁교회의 신앙고백과 칼빈의 정신과의 관련성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요?

장 : 칼빈의 영향을 받은 최초의 개혁교회 교단이 형성된 것이 1559년도입니다. 이때 프랑스 신앙고백서가 작성되었는데, 이것은 칼빈의 작품입니다. 이 신앙고백서에는 칼빈의 신학적 사고가 응축되어 있는데요. 1561년에 귀도 드 브레에 의해 작성된 벨기에 신앙고백에는 이 프랑스 신앙고백 내용의 삼분의 일이 그대로 반영되었고요. 1563년도의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도 칼빈주의적인 색깔이 굉장히 농후하게 형성되어 있었죠. 또 1560년대에 존 낙스가 스코틀랜드 정부의 위임을 받아서 다른 John들과 함께 만들어 낸 신앙고백과 교회치리서도 역시 칼빈과 나누었던 풍성한 교제와 서신교환을 바탕으로 이루어졌어요. 그리고 1600년대 들어와서 알미니우스파에 대항하여 만들어진 도르트신조와 칼빈주의 5대 교리도 다 칼빈주의로부터 나온 것들이에요. 17세기 중반에 오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물론이거니와 39개 신조도 칼빈주의 사상이 물들어 있었어요. 다시 말하면, 개혁주의 신앙고백들은 모두 기독교 강요에 나타난 칼빈의 사상이 투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죠.

: 칼빈 사상의 요체라고 할 수 있는 기독교 강요가 개혁주의 신앙고백들이 작성되는데 실제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말씀 같은데요. 그렇다면 칼빈 이후의 신앙고백들은 기독교 강요가 내용적으로 발전한 양상이라고 이해해도 될까요?

장 : 발전된 부분들이 없는 건 아니죠. 예를 들면, 칼빈은 교회 표지를 말씀선포와 성례 시행으로 보았어요. 교회의 표지로서 권징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교회 운영에 있어서 권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어요. 그런 면에서 스코틀랜드의 낙스나 귀도 드 브레 같은 경우에는,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은 제 18조에서, 또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28조와 29조에서 권징을 참된 교회의 표지로 명확하게 언급하고 있어요. 이런 점에서 발전했다고 볼 수 있죠. 칼빈은 말씀 선포와 성례 시행을 그리스도의 임재를 구현하는 측면에서 강조하였어요. 하지만 그리스도의 임재를 보존한다는 의미에서 권징이 교회의 표지로 들어오는 것은 마땅하다고 봐요. 그런데 저는 개인적으로 권징이라는 단어보다는 훈련이라는 말을 더 좋아합니다. 건전한 훈련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임재를 보존한다는 측면에서요.

여기서 한가지 제가 칼빈 연구를 통해서 얻은 ‘9C‘개념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 9C요?

장 : 나인 컨셉스(9 Concepts)라고 합니다. 칼빈주의라고 하면 막연하게 하나님의 절대주권이나 예정론 또는 칼빈주의 5대 교리와 같은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것으로 칼빈주의를 포괄해서 설명하는 것은 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리하게 된 것이 나인 컨셉스(9C) 개념인데요. 우선 기본적으로 세 가지 개념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성경(Cannon)과 교회(Church)와 해석(Construction)이 있어요. 이 세 개의 개념 하부에 각 파트별로 관련된 아홉 가지 9C개념이 있어요. 성경에는 신조(Creed)와 언약(Covenant)과 지배(Control)를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신조는 성경 66권을 다른 말로 표현한 것이고, 언약은 성경 구속사의 내용이고, 지배는 성경의 권위를 나타내지요. 권위라는 말은 조직신학적으로 ‘Authority(권위)’라고 표현되지만 하나님의 권위란 곧 우리를 지배하고 통치하고 다스린다는 당위성을 갖기 때문에 지배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어요. 이어서 성경 해석에 관한 개념을 말하자면 이 해석은 반드시 고백(Confession)으로 와야 해요. 그리고 그 고백은 어떤 독자적인 고백이 아니라 하나의 역사적인 영속성(Continuity)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죠. 이 역사적인 연속성을 갖는다는 사실은 기독교강요 내용 속에 다 녹아있다 할 수 있겠고요. (참고 : 해석에 속한 세 개의 C중에 본 인터뷰에서는 2가지만 밝히고 계십니다.) 이러한 전제에서 고백은 눈에 보이는 교회, 즉 로컬처치(Local Church)를 이뤄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 교회가 어떤 교회이어야 하는가를 생각할 때, 첫 번째로 교회에 관한 바른 표지(Correct Mark)를 염두에 두어야 해요. 과연 교회가 교회로서 올바른 표지를 갖추고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리고 두 번째로 이 교회를 바르게 운영하기 위한 헌법(Constitution)이 있어야 되요. 다른 말로 교회 정치죠. 교회헌법에 보면 교리부분이나 예배모범이 있거든요. 교회는 그 정신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예배모범에서 예배 중에 찬송할 때, 시편을 노래해야 한다고 명문화해 놓았다면 그대로 따라야 하지요. 교회가 그런 질서를 따르지 않고 어느 소영웅주의자가 목소리를 크게 내는 것으로는 진리가 되는 게 아녜요. 그런 다음에 필요한 것이 성도간의 교제(Connection)이예요. 성도는 각자 거듭난 본성 안에서 자기 위치와 역할이 있어요. 개인의 은사와 직분이 직무적으로 수행되기도 하지만, 성품으로 나올 때 열매를 맺게 되요. 그러한 덕성들이 잘 어울려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룰 때, 그리스도께서 세상 앞에 성신의 신비한 능력으로 지상적으로 자기 몸을 표현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지상적 임재가 교회 안에 있는 각 성도들의 유기적인 연합으로서 구현되어진다는 것은 우리에게 굉장히 많은 연구와 수고를 요구하는 면이 있지요.

: 아하, 그렇군요. 굉장히 일목요연하게 머릿속에 들어오는데요?

장 : (웃음) 한번 그렇게 정리를 해봤어요. 제가 칼빈 연구로 얻은 일종의 결과물이지요. 기회가 되면 이런 내용들을 영문으로 번역해서 세계 교회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고요.

: 그럴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출판과 관련해서 준비하시는 내용들이 있으신가요?

장 : 지금까지 나온 CNB시리즈를 전자책으로 만들어 내려고 작업하는 중입니다. IT계열 회사에 다니는 우리 교회 멤버들이 만들고 있는데, 첫 작품으로 송영찬 목사님의 아가서와 이광호 목사님의 마태복음과 저의 기독교 강요 모범설교가 우선적으로 나올 것 같아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기독교 강요를 가르치는 교재를 만들고 있는데, 이런 종류의 책은 영문판으로도 거의 없어요. 기존의 출판한 분석서는 기독교 강요 전체를 파악하는데 중점을 두었다면, 지금 만들고 있는 것은 한 단계 더 질문을 가지고 조금 더 넓게 보는 관점에서 만들고 있어요.

: 그러시군요. 집필과 출판 과정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인터뷰를 정리할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간단하게 두 가지 질문만 여쭙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말씀을 들어보니까 참 하시는 일이 많으신데요. 개인적으로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시나요? 그리고 취미 같은 것도 있으시다면 곁들여 말씀해 주세요.

장 : 제가 몇 차례 심장 시술을 한지라 스트레스 안 받고 조심하는 방법밖에는 없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심장이 안 좋으니까 심장에 좋다고 생각되는 그런 음식들이나 건강보조제 같은 것들에 조금 관심이 있는 편이고요. 운동은 하고 싶은데 운동에 시간을 빼앗긴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대로 시간을 못 내고 있어요. 취미는 책읽기인데 요새는 집중력이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라 지치지 않게 하고 있고요. 요즘은 아볼로 바이블 프로그램을 개발하다 보니까 거기에 취미삼아서 역량을 쏟고 있어요. 그러니까 취미생활이 아볼로 바이블 프로그램 개발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 취미치고는 너무 신앙적이고 고상하신데요.(웃음)

장 : 허허허(웃음)

: 마지막으로 저희 연구회 회원들과 목사님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여러분들에게 들려주실 권면이 있다면요?

장 : 치열한 자기 싸움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우리가 무엇을 하든 다 신앙과 관련되어 있지 않습니까? 바른 신앙에 녹아지기 위해서는 자기의 연약함을 깨닫고서, 즉 자기부정과 자기씨름을 하면서 주님의 도우심을 바라보고 나아가야 한다고 봐요. 이것을 놓쳐버리면 기독교적 종교인으로 전락하기 쉽죠. SDG 개혁신앙연구회와 같은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내용들이 지역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 내는 일에 좀 더 고민하고 투쟁하면서 많이 표출되기를 바래요. 칼빈이 자궁이라고 그랬거든요. 한 사람의 생명을 잉태하고 낳아서 어른이 되어도 평생 다녀야 할 학교 노릇을 하는 어머니. 바로 이러한 교회를 이루어내는 일에 매진하고 피튀기는 싸움을 해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하는 신학이어야 된다고 권하고 싶습니다.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우리의 모든 신학과 신앙이 결국에는 총체적으로 교회를 위한 신앙고백적인 결과물로 나타나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또한 교회나 교인이나 치열한 자기 싸움과 개혁을 통해서 장성해갈 때, 거기에서 목사님께서 그토록 강조하시는 칼빈의 정신이 온전하게 드러나게 되리라는 다짐을 하면서 오늘 인터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귀한 시간 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2013.1.21. 부평역 근처 커피숍에서

※ 인터뷰 녹음 파일은 제공하지 않습니다.

※ 본 인터뷰의 권리는 SDG개혁신앙연구회에 있으며 무단 전재 및 복제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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