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G 서평

제목-서평- 교회개척자 by 김병혁목사2018-07-04 15: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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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개척자(Church Planter) 서평


 


김병혁 목사(SDG 개혁신앙연구회, 솔리데오글로리아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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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역자 : 대린 패트릭/이지혜 | 출판사 : 복있는 사람


 


 


이 책은 직접 구매한 것이 아니라, 어느 페친(페이스북 친구)께서 서평을 부탁하며


손수 저에게 보내 주신 책입니다. 이 기회를 빌어 보내 주신 분의 성의에 감사를 표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부담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나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며 책상 위에 수북이 쌓여 있는 책들을 외면하고


낯선 저자의 책과 밀애(?)를 즐기기란 정서상 별로 친숙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또다른 한 가지의 부담은 이 책에 관한 추천과 서평의 글들이 이미


여러 형태로 소개된 상황에서 또하나의 서평이 필요할까 하는 의문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 책에 관해 개혁신학적 관점에서 시도한 평을 찾기 어려웠던 것을


내심 이유 삼아 간단하게나마 몇 자 적어 봅니다.


 


‘교회 개척자’라는 제목만을 보고서 이 책이 교회 개척을 위한 방법론을 다룬


실용서나 교회 개척을 고민하는 이들을 위한 상담서 정도로 생각하고 접근했다면,


이 책의 첫 번째 주제(1장 사람)를 들춰 보더라도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될 것입니다.


 


초반부터 등장한 이 책의 주제의식은 명확해 보입니다.


이와 유사한 제목으로 교회 개척의 방법이나 상담, 혹은 성공 신화 간증을


주목적으로 하는 여타의 책들과는 분명한 차별화를 시도합니다.


 


이 책은 교회 개척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강조하고 있습니다. 목회(牧會)의 정의를 신학적으로 말하지 않더라도,


목회 행위 자체가 결국에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복음 사역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저자의 집필 의도는 독자로 하여금 고개를 끄떡이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더구나 저자는 이 책의 첫머리에서부터 독자들로서는 예상하지 못한 돌직구를 날립니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교회개척자는 다름 아닌 남성으로 제한합니다.


책의 가용 수요층을 예상한다면 결코 내뱉기 쉽지 않은 발언입니다.


 


그러나 이해력이 많은 독자라면


스스로도 무모한 행동이라고 말하는 이러한 모습에서 그가 견지하는


신학적 입장이 무엇인지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교회 안에서의 남녀 관계를 단순한 평등주의(egalitarianism)가 아니라


상호보완주의(complementarianism)의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후자의 관점에서 저자는 목사 ․ 장로직을 남성에게만 허용하는 것은 충분히


용인되는 것이며, 나아가 이것은 성경의 진중하고도 분명한 가르침과 일치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교회 직분과 관련하여 정통 개혁주의에서 주장하던 것과 궤를 같이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여성 안수와 여성 목회가 일반화되어 가는 오늘날 복음주의권의


독자들에게 혼돈과 도전을 주는 동시에 창조의 질서를 근거로 교회와 가정에서


남성의 리더쉽을 강조하는 이들에게는 일단 안심과 위안을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3부(제1부 사람, 제2부 메시지, 제3부 사명)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는 즐거움을 만끽한 부분이라면 제1부를 들 수 있습니다.


교회개척자, 즉 사람(남자)에 대하여 다루고 있는 이 부분은 이 책의 백미입니다.


교회를 섬김에 있어서 무엇보다 교회 지도자가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구원 여부를 의심받을 수준에 있는


목회자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타락해 가는 현대 교회 안에서 어디서나


맞닥뜨리게 되는 현상이 된 지 오래입니다.


 


아이러니한 교회 현실 속에서 저자는 진정한 교회지도자로서의 자격을 꼼꼼히 따집니다.


그리고 이 자격의 결격 여부는 윤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생명이 걸린 영적인 문제라는


것을 번뜩이는 기지와 통찰력있는 설득으로 해명해 줍니다.


 


특히 제1부 2장에서 언급한 목회자로서의 부르심(소명)에 관한 설명은


중생하지 못한 목회자와 거짓 교회들이 난무하는 현실에서


더욱 귀담아 들어야 할 교훈이며, 특히나 목사로서의 삶을 준비 중인


목회자후보생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대목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개혁주의자로서 이 책을 장점을 논하자면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상당히 선구안 있는 주제 인식과 탁월한 글쓰기 솜씨에도 불구하고


이 대목 이후의 논지는 용두사미(龍頭蛇尾)라는 사자성어를 떠올리게 할만큼 부진합니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장로직의 자격 요건을 세심하게 살펴보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장로직에게 요구되는 리더쉽을 설명하는데 있어서는 신학적으로 전혀 신뢰감이 들지


않는 사람들(예, 피터 와그너, 척 스윈돌, 존 맥스웰 등)의 견해를 섞어짓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관성없는 모습은 기독교 지도자나 유명 인사들의 글을 발췌하여


각 장 맨 앞쪽에 인용한 내용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자에서부터 신정통주의자와 자유주의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글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말하는 이의 신학이나 또한 내용상의


의미와 문맥과 상관없이 듣기에 좋은 말만 모아 놓은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


엄정한 신학과 교리에 의한 분별보다는 자기 방식의 논증과 설득에 더 관심이


집중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점이 제2부와 제3부에서 현저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제2부와 제3부에서는 메시지와 사명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신학적으로


구원론과 교회론에 해당하는 부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신학적인 주제를


다루는 것만큼 저자의 신학적 성향이 그대로 표출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만,


아쉽게도 그에게서 개혁주의 신학의 특징적 사고를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저자는 제2부에서 역사적 복음메시지의 중요성을 설파하면서


교회지도자가 증거해야 할 몇 가지 유형의 메시지(구원을 성취하는 메시지,


그리스도 중심의 메시지, 죄를 드러내는 메시지, 우상을 부서뜨리는 메시지)를


성경 지식과 자기 경험을 적절하게 배합하여 그 의미를 도출해 내고자 합니다.


 


그런데 저자는 알미니안주의적 신학적 프래임 속에서 이 의미를 해설하고 있습니다.


성경적인 구원론의 출발점이 되는 ‘예수님께서 누구를 위하여 죽으셨는가’라는 질문에


저자는 시종일관 ‘우리를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저자는 자신이 말하는 ‘우리’가


‘예외없이 모든 사람’이나 ‘믿고자 하는 모든 사람’이라고 적시하지는 않지만,


그의 설명은 전반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적 관점에서 그리스도의 구속과


신자의 구원을 해명하는 개혁주의 노선에서 이탈해 있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은 성경적인 구원론을 파악하는데 피해갈 수 없는 주제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복음주의자가 그렇듯이 저자역시 이 주제를 묘연하게 비껴감으로써


하나님 편에 치밀하고 명료한 복음을 사람들 편에 쉽고 헐거운 복음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하다보니, 책장을 거듭하면서 처음에 강조한 ‘사람’(남자)의 역할이


결국 ‘사람으로서의 역할’로 고착되는 우를 범하고 맙니다.


제3장 사명편 첫 주제에서 저자는 본래적 의도를 이러한 말로부터 여실히 드러냅니다.


“액츠 29는 구원의 본질을 개혁주의의 관점에서 이해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이 구원받게 하려는 바람만큼은 절실하다.“(p. 235)


이 말은 보편구원론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전혀 차이를 느낄 수 없는 표현입니다.


 


다만 이 말은 저자가 지닌 중대한 두 가지 착각을 드러낼 뿐입니다.


첫 번째 착각은 액츠 29라는 단체와 역사적 개혁주의를 연결짓고 있다는 것입니다.


액츠 29라는 단체가 어떤 곳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사도행전은 끝나지 않았고 계속 씌여져야 한다는 의미에서 국내의 온*리 교회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Acts29 운동과 유사하거나 관계를 갖고 있는 모임임에도


개혁주의와의 관련성을 말하는 것은 역사적 개혁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과 훼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두 번째 착각은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다 구원하게 하고자 하는


것은 개혁주의적 구원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저자는 교회가 온 세상에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는 비전을 꿈꾸면서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바로 교회(의 사명)라고 주장합니다(p. 248).


 


마지막으로 저자를 결코 개혁주의자라고 할 수 없는 가장 분명한 이유 중의 하나만


더 소개하지요. 저자는 14장에서 자신이 교회의 사명에 대하여 자각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를


윌로우크릭 교회와 빌 하이벨스 목사를 알고나서부터였다고 말합니다. 이후에 책에서 그가


제시하고 있는 이상적인 혹은 성공적인 교회의 모델은 윌로우크릭 교회와 빌 하이벨스 목사의


가르침의 확장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12장에서 저자가 그토록 강조한 우상을 부서뜨리는 메시지란


우선적으로 교회 성장을 꿈꾸는 전 세계 목사들의 우상으로 여겨진


이 교회와 이 목사에 대한 환상을 깨뜨리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자와 저자의 의견에 공감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혹시 수 년 전에 빌 하이벨스 목사의 고백을 기억하는지요?


자신을 따르는 수많은 목회자와 신자들 앞에서


“우리가 잘못했다. 실패했다.”


“숫자로는 성공을 했는지 몰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를 만드는 일에는 실패했다”라고 고백한 것을...


 


저는 이 책에 관한 한, 모든 면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 같이 이 책은 몇 가지 점에서 독자에게 유익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교회를 개척자에게 요구되는 선명한 주제 의식과 선한 자극을 제공하는


측면에 대해선 고마움을 갖습니다.


 


그럼에도 이 책의 행간과 여백 사이에 숨어 있는 여러 함정과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에게 주의를 요청합니다.


고로, 이 책을 독자에게 조건 없이 추천하는 일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이 책을 개혁주의 도서로 분류하여 추천하는 것은 참아 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에 대해


저자와 출판사측에 다소 미안한 감정이 없지 않습니다만,


사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개혁주의적 관점에서 전해 드리는


평(評)으로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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