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G 서평

제목최선 교수의 [존 낙스의 정치사상]을 읽고 by charis2018-07-04 15: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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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낙스(John Knox)는 명실공히 칼빈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개혁자 중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습니다. 조지 위샤트의 순교와 19개월간의 노예 생활, 5년간의 망명생활과 1560년의 승리, 메리 여왕(메리 스튜어트)과의 논쟁 등은 누구나 한 번 쯤 들어보았을 법한 그의 인생사입니다. 그가 기초를 닦아 놓은 장로교회는 수많은 나라로 전파되었고, 우리나라도 그 빚을 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칼빈을 제외한 다른 개혁자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그에 대해 저술한 한글책을 찾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품절된 책을 제외하고, 낙스라는 이름을 제목에 포함하는 책은 서너권 뿐입니다. 낙스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한글책은 없다고 봐도 무방한 것 같습니다. 아쉬운대로 지평서원의 [존녹스와 종교개혁], 그리고 그리심의 [존 낙스의 정치사상]이라는 책을 골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먼저 [존 낙스의 정치사상]을 읽게 되었습니다.




  저는 서평을 쓸 때 두가지 동기 중 하나때문에 쓰게됩니다. 책을 추천하려는 동기와 책을 비추천하려는 동기입니다. 몇 권 없는 낙스에 관한 책 중에서 한 권을 비추천하는 일은 내키지 않는 일이지만, 정가로 적힌 15000원의 가격이 무색해지는 내용을 모르고 책을 구입하시는 분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이 강하게 들어 서평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최선교수입니다. 총신대학교 사회교육원 교수, 칼빈목회연구원 연구 교수라고 약력에 나오시는데 현재도 그러한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외에 한국 비블리오 액션 드라마 심리치료사, 한국 생명의 전화 자살예방 전문 강사, 누리문화센터 대표, 한국가족치료 연구소 소장 등의 독특한 직함들을 갖고 계십니다. 책을 추천하고 계신 분들은 박희석 총신대 부총장, 이은선 안양대교수, 김봉환 칼빈 목회연구원 원장 등입니다. 다들 제가 한번도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분들이라 어떤 분들인지 모르겠습니다. 추천사에 보면 최선교수님이 낙스를 연구하여 학위를 받았고, 그 논문을 수정 보완하여 책으로 선보이는 것이라는 내용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논문을 기반으로 한 책인 듯 합니다.




  필자는 서론에서 책의 목적을 '존 낙스의 정치사상이 한국교회의 전 영역속에서 살아나 열매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썼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책의 구조는 낙스의 생애 개관, 스코틀랜드의 정치, 사회, 종교적 배경 고찰, 존 낙스의 국가관, 존 낙스의 정치사상이 후대에 끼친 영향, 최종 정리 및 한국교회에 대한 적용점의 순서로 쓰여져 있습니다.




 존 낙스의 생애에 대한 부분에서는 출생년도에 대한 저자의 추측, 존 위샤트와의 만남과 위샤트의 순교, 낙스의 강제노역과 에드워드 6세의 중재를 통해 풀려난 일, 그 후 영국 왕실목사가 되었지만 에드워드 6세의 죽음으로 망명길에 오른 일, 프랑크푸르트와 제네바에서의 망명생활, 1559년 고향으로 돌아온 후 1560년의 승리, 메리여왕과 미사 문제로 행한 논쟁등이 나옵니다. 낙스의 생애를 짧게 서술한 뒤에는 낙스에 대한 학자들의 평가를 크게 두 그룹으로 나누어 소개합니다, 번즈(J. H. Burns)와 그레이(J. R. Gray)는 낙스의 정치사상이 종교적인 신념에 근거하고 있으며 쳬계적으로 발전한 사상이 아니라고 했다며 부정적으로 언급합니다. 반면 베시(W. J. Vessy)와 그리브스(R. L. Greaves), 리드(W. S. Reid)등의 학자들은 존 낙스의 정치사상이 은혜언약이 아니라 행위언약에 더 비중을 두었다는 견해를 갖고 있으며 사회계약적인 발전에서부터 근대혁명의 기초가 되었다는 주장을 하고, 저자 자신은 이들의 견해에 동의한다고 밝힙니다. 그러면서 낙스의 정치사상의 초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의 언약사상은 구약성경을 근거로 하나님과 백성 간에 맺은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것과, 국왕의 우상숭배와 군주가 프로테스탄트들을 탄압하고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에 저항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두 군의 학자들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기에 저자가 이들의 주장을 옳게 정의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자는 여기서 처음 낙스의 정치사상에 대한 본인의 견해를 밝히고 있으며 위의 내용들은 앞으로 반복되면서 조금씩 살을 붙여 나갑니다.




  뒤이어 스코틀랜드의 당시 혼란스럽고 타락이 극에 달했던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배경을 서술해 나갑니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끼인 약소국가로서 점차 약해지는 왕권과 그로인한 귀족들의 권력투쟁, 타락한 카톨릭의 성직제도와 영국과 대륙에서 건너오는 종교개혁의 물결이 점차 확산되던 당시의 상황을 잘 정리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아직 본서의 중심 내용과 의도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기에 무어라 말할 단계는 아닙니다. 그리고 이 정도의 내용은 꼭 책을 사서 보지 않더라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이 책만이 가진 독창성이 드러나기도 힘듭니다.




  제4장 '존 낙스의 국가관의 성경적 근거'에서부터 본론격에 속하는 내용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저자는 먼저 성경에서 '언약'이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부터 정의합니다. 홍수 후 노아와의 언약, 아브라함과의 언약,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과 세우신 언약 등을 예로 들며 '성경의 연구에서 "계약"이 구약의 지배적인 개념'이라고 결론 짓습니다. 이어서 나오는 내용은 제가 처음으로 이 책을 읽으며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대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순종하면 생명을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겠다고 언약하셨다. 하지만 불순종시 주실 징벌에 대한 말씀도 주셨다.(참고. 창 2:16-17) 따라서 언약의 구약 성경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언약이 구약의 지배적인 개념이고, 언약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성경의 배경을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공감합니다. 얼마 전 읽은 게할더스 보스의 '성경신학'은 그런 의미에서 각 시대별로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과 맺으신 구약의 언약에 대해 시대적 특성과 함께 역사를 관통하는 일치성을 함께 이해토록 해주는 좋은 길라잡이가 되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최선 교수님이 언약에 대해 서술하는 이 짧은 한 장 분량의 내용은 종교개혁이후 500년 동안 언약에 대한 많은 연구를 통해 이해가 깊어진 시대에 쓰여졌다고 믿기에는 너무 빈약하고 단순한 서술이라는 생각과 함께, 선악과 시험을 근거로 언약에 불순종할시 징벌을 주신다고 하셨다는 그의 주장은 그가 과연 어떤 언약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언약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잠시 고민하게 만듭니다. 혹시 베시, 그리브스, 리드등의 학자들이 낙스의 정치사상이 행위언약에 무게를 두었다는 앞 장의 진술(그 학자들이 정말 그렇게 이야기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과 궤를 같이 하여, 최선교수도 행위언약의 입장에서 낙스의 언약사상을 이야기하려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그는 은혜언약이 행위언약을 그 안에 품는 포괄적인 개념임을 모르고, 은혜언약과 행위언약을 대비시키거나 성경의 언약개념이 상황에 따라 손쉽게 모양을 바꾸어(때론 자비의 형태로 때론 형벌의 형태로) 적용할 수 있는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일까요? 여기서부터 드러나는 이 책의 문제점은 그(최선교수)가 어떻게 언약을 이해하고 있으며, 나아가 과연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파악하기 힘들도록 때론 지나치게 단순하고, 때론 일관성 없게 서술해나간다는 점입니다. 애시당초 저자가 생각하는 언약에 대해 한 장도 안되는 분량을 할애하고, 그마저도 명료하지 못하게 정의내린 것부터가 첫 단추를 잘못 채운 형국입니다.




  바로 뒷페이지에서는 낙스와 칼빈의 성경관에 대한 구절이 등장합니다. '그(낙스)는 신, 구약 성경의 내용에 있어서 단일성에 관한 칼빈의 견해에 동의할 뿐만 아니라, 양자 간의 연속성도 강조했다.'고 말하지만, 한 단락 뒤에서는 '칼빈은 신약과 구약성경을 구별하지 않았다. 그러나 낙스는 신구약 성경의 차이가 없다는 칼빈의 주장에 반박하였다.'라고 말합니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진술에는 칼빈과 낙스가 의견을 함께했던 부분과 달리했던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뒤따라 나올것으로 예상하지만 저자는 칼빈과 낙스가 무엇에 대해 신구약 성경이 단일하다고 동의했는지, 또 무엇에 대해 신구약 성경이 차이가 있다고 의견을 달리했는지 명시하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대상이 없기 때문에 왜 첫번째 진술에서는 서로 의견을 같이 했던 칼빈과 낙스가 두 번째 진술에서는 의견을 달리하는지 독자로선 이해할 방도가 없어집니다. 그것은 언약에 대한 의견이었을까요? 언약의 어떤 면에 대해 동조, 혹은 반대를 한 것일까요? 애초에 최선교수는 칼빈과 낙스의 의견차이에 대해 정확히 이해는 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런 의문들을 뒤로하고 4장의 4번째 주제인 낙스의 계약사상으로 시선을 옮겨봅니다. 서요한 교수의 [언약사상사]에서 언약을 다섯가지의 용례(하나님의 언약, 개인적 언약, 교회의 언약적 책임, 국가적 언약, 스코틀랜드에서의 왕적 언약)로 사용했음을 보여주면서, 낙스는 하나님과 백성간의 계약에 근거하여 백성들의 책임과 사명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계속해서 저자는 낙스가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의무와 책임을 강조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단정적인 어조로 말합니다.




'따라서 낙스의 계약사상에서는 하나님과 한 번 맺은 언약을 인간이 이행치 않거나 또는 배반할 때 하나님은 진노하시고 형벌에 처하는 것이다.'




  앞장에서 창세기 2:16-17을 근거로 한 진술을 다시 한번 반복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 진술에 대해 추가적인 설명을 덧붙이지 않습니다. 당시의 우상숭배자들에게 이러한 생각을 근거로 낙스가 저항하였다는 내용만이 장황하게 덧붙여져 있습니다. 여기서 또 한 번 독자는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이것이 성경적 언약의 개념인가? 낙스는 정말로 이러한 행위언약적인 개념을 가지고 그리스도인의 의무와 책인에 대해 이야기 했는가? 정말로 이와 똑같이 말한적이 있다면 낙스는 어떤 의도와 생각을 가지고 한 것인가? 물론 낙스가 계약사상을 근거로 위정자들에 대한 백성의 저항을 칼빈보다 더 나아간 형태로 승인한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단순한 사실 이면에 있는 낙스의 언약과 계약사상에 대한 관점과 이해, 한계, 고찰할 점등에 대해 충분히 그리고 명확히 알고 싶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저를 더 당황시키는 것은 저자가 위의 진술 바로 앞단락에서 '우상앞에 굴복하는 사람들은 참된 믿음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백성이 아니라고' 말하며, 언약의 주권적이고 은혜로운 측면들을 설명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상숭배자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은 그가 언약에 속한 자가 아니기 때문인지, 아니면 언약을 어겼기 때문인지 한층 더 혼란스럽게 됩니다. 이후에도 저자는 끊임없이 '언약' 개념에 대해 무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일으키는 일관성없고 단순한 진술들을 계속 늘어놓습니다.




  글이 너무 길어지는 관계로 낙스의 사상을 우리 현실에 적용하는 부분에 대한 논의로 바로 넘어가겠습니다. 제6장 '존 낙스의 정치사상이 후대에 끼친 영향'에서는 낙스의 정치사상이 영국의 청교도 운동과 프랑스의 위그노파, 유럽의 근대 정치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몇 장에 걸쳐 낙스가 끼친 영향에 대해 구체적으로 진술하고자 하지만 책의 크기가 작아서인지, 딱히 구체적인 연관성을 충분히 이해시킬만큼의 내용은 나오지 않고, 약간은 겉핥기식으로 넘어갑니다.




  흥미로운건 한국교회에 미친 영향에 대한 부분입니다. 스코틀랜드 연합장로교회 소속 선교사인 존 로스와 매킨타이어에 낙스의 사상이 들어 있었고, 그 신앙이 최초의 한국 개신 교회인 '소래교회'에 전수되었다는 내용이 처음에 나옵니다. 한데 그 다음에 갑자기 상당한 시간을 뛰어넘어 민주화운동에 대한 언급으로 넘어갑니다. 급작스런 내용의 도약은 둘째치고 '일부이긴 하지만 진보 성향의 교회들이 존 낙스의 정치사상인 저항운동을 근거로 하여 민주화에 동참하게 되었던 것이다.' 로 끝나는 8줄 분량의 단락은 저자가 무슨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게 만듭니다. 한국교회를 진보와 보수로 나누는 기준은 무엇이고, 민주화 운동과 낙스의 사상이 어떻게 연결된다는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통치자에게 저항하는 교회는 무조건 낙스의 사상을 이어받았다고 결론 내릴 수 있는 것일까요? 저자의 추가적인 의견은 2장 정도 뒤에 뒤어이 나오게 됩니다.




'한국교회는 사회와 정치 문제들에서 교회의 사랑과 정의에 대한 의무, 그리고 예언자적 기능을 수행하는 대 냉담한 자세를 취하였다. 1945년 해방 이후 최근에 이르기까지 한국교회의 대다수는 독재정부의 탄압과 사회, 정치적 불의와 착취에 대하여 거의 침묵을 하였다. 한국교회는 사회와 정치적 문제에 대하여 그 책임과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결핍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김윤국은 이러한 현상이 초기 내한한 선교사들의 사역과 그들의 정치적 태도에 기인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이러한 지적은 상당한 일리가 있다.'




  처음에는 초기 선교사들에게서 낙스의 사상이 전달되었다던 저자는 이제는 초기 선교사들이 일제시대 정치적 문제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취했던 것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일제시대 개신교가 독립운동에 미진한 태도로 대응했던 것이 저자는 마음에 안 든 것일까요? 독재정부가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는 것에 대해 개신교가 침묵했던 것은 잘못이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요? 한국 근대사에서 개신교의 역할에 대한 판단은 제 서평의 주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제국주의와 독재정권에 대해 정치적인 저항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낙스의 사상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낙스는 제국주의 야심가들과 사회부조리를 낳는 독재정권에 대항하는 혁명사상을 세우려고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제국주의 타파나 자유 민주주의 확립은 기독교의 이상이나 목적이 아닙니다.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하는 것도 기독교의 관심사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사회에서 살든 부조리를 만나게 되고, 사회구조의 결함에서 오는 고통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위정자들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 낙스가 그의 계약사상에서 말하려는 것일까요? 저자가 한국교회사와 낙스의 사상을 결론에서 이런식으로 엮으려하는 것은 이제 저자의 근본적인 집필 의도에 대해서까지 의구심을 불러 일으키게 만듭니다.




  책을 덮으며 환불의 욕구가 이는 것을 겨우 억눌렸습니다. 누구나 알법한 스코틀랜드 역사 개관이나 언약에 대한 일관성 없고 단순한 정의, 낙스의 행적 나열, (정의가 모호한)보수적이라고 일컬어지는 한국교회들에 대한 무성의한 비판들을 읽기 위해 이 책을 산 것이 아니었습니다. 언약신학에 대한 바르고 심도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낙스가 그 시대속애서 칼빈의 사상과 관계하며 어떻게 언약을 정의했는지, 그리고 그 언약을 토대로 발전시킨 그의 저항사상의 의의와 한계는 무엇인지, 지금 시대에서 우리가 그의 사상을 어떻게 신중하게 적용해 나갈 것인지를 알고 싶었습니다. 이 책은 낙스에 대해 심도있는 이해를 원하는 독자에게는 전혀 맞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히려 이미 낙스에 대해 개괄적인 사항을 알고 있는 독자에게는 혼란을 더해주는 책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소 장황하고, 비판적인 논조로 일관한 서평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제가 저자에 대해서나 낙스에 대해서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다면 교정해주시길 부탁드리며, 현재 쉽게 구할 수 있는 서적중에 낙스에 관한 책으로 추천할만한 책이 있다면 추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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