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G 서평

제목생명을 걸고 쓴 개혁주의 신앙고백 이야기 by charis2018-07-04 15: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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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에 온 세 사람과 귀도 드 브레




Three Men Came to Heidelberg and Glorious Heretic(The Story of Guido de Bres)




Thea B. Van Halsema(테아 반 할세마 부인)




  테아 반 할세마 부인이 쓰고 강변교회 청소년학교 도서위원회에서 옮긴 '하이델베르크에 온 세 사람과 귀도 드 브레'는 16세기 중반 개혁교회 역사에 길이 남을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과 벨직 신앙고백서가 만들어질 당시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테아 반 할세마 여사는 남편 딕 반 할세마가 개혁 성경 학교(Reformed Bible College)의 학장이 되었을 때 학생과장 및 사회복지학과의 조교수로 섬겼고, 1988년 은퇴 뒤에도 두 부부는 I.D.E.A 선교회 사역을 열정적으로 수행 하였습니다. 테아 반 할세마 여사의 작품으로는 1959년에 쓴 'This Was John Calvin', 1991년도에 부군과 함께 집필한 'Going and Growing' 등이 있습니다. 다소 긴 제목의 이 책은 1961년도에 나온 'Glorious Heretic : The Story of Guido de Bres'와 1963년도에 나온 'Three Men Came to Heidelberg'를 합쳐 1991년도에 I.D.E.A 선교회에서 출판하고, 2006년도에 강변교회 정병길 목사님의 제안에 따라 강변교회 교인들이 운영하는 청소년 학교 도서위원회에서 옮긴 것입니다.






  - 테아 반 할세마 부인의 저서들




  이 책을 덮으며 먼저 든 생각은, 개혁신앙의 정신으로 쓰인 성인을 위한 한글책들도 부족한 상황에서 이처럼 어린 자녀들을 위한 책을 고민하고 출판하는 독립개신교회의 정신이 부럽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정신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여건도 부러움의 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종교개혁자들과 이를 잇는 청교도들은 그들의 후손들이 개혁의 정신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신앙의 유산을 문자의 형태로 남기는 일에 많은 힘을 쏟았습니다. 교회가 이땅에 들어선지 120년 조금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는 아직 바른 전통을 세우는 일만으로도 벅찬 지경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오히려 개혁신앙의 전통을 이 땅에 심고 후대에 전하려는 노력들은 무지, 무관심, 무책임, 무성의함들로 인해 현상유지를 하는 것만으로도 힘겨워 보일 때가 있습니다. 현실의 고달픔이 미래를 위한 헌신에서 우리의 마음을 떼어 놓기란 어찌나 쉬운 일입니까? 개혁신앙을 가진 성도들의 연합을 통해 한국의 미래 세대에게 개혁신앙의 바른 유산을 여러 방편으로 전달하려는 목적으로 세워진 우리 SDG개혁신앙연구회도 과연 미래 세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고민이 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욱 하나님께 의지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 고마운 책입니다.




  이 책은 객관적 사실을 나열하는 식이 아닌 적당한 상상력을 가미한 인물들간의 대화와 심리묘사, 기승전결의 구조를 갖춘 소설의 형식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중심내용을 위해 필요한 정보들만을 쉬운 필체로 전달하는 이 책은 당시 역사적 정황을 전혀 모르는 자가 읽더라도 사건의 전말에 대해 충분한 이해와 공감이 가능하도록 쓰여졌습니다. 어린 자녀들도 쉽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임은 물론, 꼭 어린 자녀들만이 아닌 당시 유럽 국가들의 복잡한 정세에 대해 문외한인 저와 같은 이들이 읽기에도 좋은 책입니다.




  1부인 '하이델베르크에 온 세 사람'은 프리드리히 3세, 올레비아누스, 우르시누스 세 사람이 어떻게 하이델베르크로 오게 되었는지 그들의 어린 시절부터 상세히 추적해 오는 구조를 가집니다. 프리드리히 3세는, 4년간의 짧은 통치기간을 끝내고 서거한 오토 하인리히의 뒤를 이어 팔츠 영방의 제후로 오라는 소환장을 받아들고 과거에 대한 회상에 잠깁니다. 독자들도 프리드리히 3세의 회상속으로 자연스럽게 빨려 들어가며 어린 시절의 궁정생활, 17세때의 전쟁 경험, 20세때 맞은 어머니의 죽음, 매일 성경을 읽고 루터의 글을 공부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승낙을 얻어 낸 바흐 가의 공주 마리아와의 결혼,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비르켄펠트 시절, 그리고 젊은 나이에 먼저 떠나 보낸 아들과 딸의 이야기들응 숨죽이며 읽게 됩니다. 그리고 아들 헤르만 루트비히가 익사하는 장면에서 그를 구하려고 강물에 뛰어든 올레비아누스가 깜짝 등장하며 앞으로 이들의 관계를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실지 무척 궁금해지도록 만듭니다.




  이러한 독자들의 궁금증을 아는 듯이 뒤이어 설교자 올레비아누스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리스도의 성의와 사도 마태의 시신이 안치된 수도원 교회로 유명한 트리에르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올레비아누스는 14세때 법학 공부를 위해 프랑스로 유학을 오게 됩니다. 이곳에서 프리드리히 3세의 아들 헤르만 루트비히를 만나고, 또한 개혁신앙을 가진 신교도들도 만나게 됩니다.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제네자에서 칼빈과 베자를 만나게 되고, 파렐의 권유로 트리에르의 라틴어 교사로 돌아오게 됩니다. 




  사실 스위스의 종교개혁자들과는 다소 동떨어진 인물로 알았던 올레비아누스가 이처럼 당시 동시대를 살던 종교개혁자들과 만남을 가졌다는 사실은 저에게 조금 놀라운 사실이었습니다. 우르시누스도 올레비아누스처럼 짧은 시간이었지만 스위스의 종교개혁자들을 여행중애 만나보았고, 특히 피터 마터 베르미글리와의 만남은 그의 인생 향로를 결정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통해 개혁교회의 유산이 한 지역만의 고립된 사상이 아니라 당시 전유럽에 걸쳐 같은 믿음을 가진 사역자들이 서로의 신앙의 동질성을 확인하고 확고히 하는 과정을 통해 확립되었음을 알게 된 것은 이 책을 통한 또 하나의 수확입니다. 트리에르에서 설교자로서 명성을 떨치던 올레비아누스는 요한 대주교에 의해 투옥되고, 프리드리히 3세의 도움으로 감옥에 풀려나 하이델베르크을 향하게 됩니다.




  하이델베르크에 마지막으로 도착한 인물은 우르시누스 입니다. 브레슬라우 출신의 조용했던 한 학생이 멜란히톤의 눈에 띄어 7년의 세월을 보내며 긴 여행을 함께 다닌 일과 고향 브레슬라우에서 성찬논쟁에 지친 그가 취리히로 가서 피터 마터를 만나게 된 일은 그를 은둔자에서 개혁의 최전선에 서 있는 투사로 바꾸게 됩니다. 특히 우르시누스가 하이델베르크로 오게 된 계기를 만든 헤슈시우스와 사위 요한 프리드리히와의 성찬 논쟁은 종교개혁당시 카톨릭의 잘못된 유산으로부터 벗어나 바른 신앙을 확립하기 위해 거쳤던 개혁파들의 진통을 생생히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논쟁의 한복판에서 바른 신앙을 갖고자 고독하게 고뇌하는 프리드리히 3세의 모습은 이 시대에 참으로 필요한 위정자와 목회자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이처럼 세 사람이 하이델베르크에 모인 뒤 프리드리히 3세는 백성들의 신앙 교육을 위한 요리문답의 작성을 두 사람에게 부탁하게 됩니다. 우르시누스의 나이 28세, 올레비아누스의 나이 26세 때의 일입니다. 그리고 이 요리문답은 구교인 카톨릭의 사람들보다도 신교인 고 루터파의 사람들을 화나게 합니다. 고 루터파의 크리스토포루스 공작과 2년여에 걸친 문서전쟁은 이러한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결국 1566년 막시밀리안 황제에 의해 소집된 아우크스부르크 제국 회의에서 이러한 갈등이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카톨릭 제후들가 고 루터파 제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하나님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위대한 신앙의 고백을 하게 되고, 그의 정적들은 결국 그의 죽음을 볼 수 없게 됩니다. 이는 제국 회의가 시작될 당시에는 상상도 못할 결과였습니다. 이 대목을 읽는 독자들은 넓은 홀 중앙에 우뚝 서서 자신을 죽일 악의로 가득 찬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프리드리히 3세의 고독하지만 강한 믿음의 웅변이 울려퍼지는 것을 느끼실 것입니다. 그리고 후에 그를 일컬어 '팔츠 영방의 경건한 사람'이라고 부른 황제의 칭호에서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느끼게 됩니다.




  이제 하나님이 정하신 마지막 때가 왔고, 프리드리히 3세는 고 루터파인 그의 아들 루트비히에게 제후의 자리를 물려주게 됩니다. 그의 죽음과 함께 소망이 보이지 않던 시대에 많은 설교자와 교수들은 하이델베르크를 떠나게 되고, 올레비아누스와 우르시누스는 결국 다시 하이델베르크로 돌아오지 못하게 됩니다. 하지만 6년 뒤 루트비히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하이델베르크는 프리드리히 3세의 손자에 의해 다시금 온전한 개혁신앙으로 다스려지게 됩니다.




  올레비아누스나 우르시누스보다 10년 쯤 젊은 나이에 순교한 귀도 드 브레의 이야기는 조금 더 진한 슬픔을 줍니다. 종교재판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깔린 스페인 왕의 통치를 받던 저지대의 몽스에서 태어난 그는 조금씩 밀려오던 개혁신앙의 물결을 맞으며 자라납니다. 26세가 돼던 해 영국으로 건너간 그는, 올레비아누스와 우르시누스가 그랬던 것처럼 영국에서 당시 대표적인 종교개혁자였던 마르틴 부처와 폴 요한 아 라스코등의 사람들과 접촉하게 됩니다. 서른 살의 나이로 귀국한 그는 '몽스의 어거스틴'이라 불리며 '장미교회'라는 이름의 비밀 교회를 섬기게 됩니다. 하지만 곧 펠리페 2세의 탄압정책이 불어 닥쳤고, 그는 존 낙스가 잠시 머물던 프랑크푸르트로, 베자가 있던 로잔으로 떠돌게 됩니다. 하지만 자신의 나라를 잊지 못했던 그는 도르닉과 발랑시엔 등지에서 비밀교회를 섬기며 유랑하는 목회자로서의 삶을 삽니다.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있는 시간보다 떨어져 있는 시간들이 더 많았던 험난한 7년의 결혼 생활은 발랑시엔의 브뤼넹 감옥에서 그 끝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야기의 마지막에 그의 아내 카트린느 라몽에게 보낸 귀도 드 브레의 편지가 인용되어 있는데 우리는 여기서 결혼생활의 의미와 목적을 무엇인지를 눈물과 함께 익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녀들에게 때론 안식을 때론 환난을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역사를 통해 어떠한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그분의 용사들을 만나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보다 전쟁, 질병, 학대의 두려움이 더욱 기승을 부리던 그 시절의 이야기는 나태해진 우리의 마음을 강하게 채찍질합니다. 이 책이 소설의 형식으로 쓰여진 것은 그 채찍질의 강도를 더해주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가 담긴 듯 합니다.




  우리는 압니다. 우리도 그들과 다르지 않은 큰 전쟁과 환난속애서 살고 있습니다. 단지 우리의 적이 눈에 띄게 우리를 공격하거나 모욕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안식가운데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지 못하게 하는 적들에 둘러쌓여 있습니다. 그것은 어둠의 주관자들과 그들의 하수인이 꾸미는 각종 계략일 수도있고, 내 마음에 찌꺼기처럼 남아있는 욕심이거나 근심, 또는 나태함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해서 목숨을 빼앗지는 않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종교개혁시대의 사람들보다 더 치열하게 살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우리가 그 때보다 더 안정적으로 천수를 누리게 되었고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해서 느긋하게 현실에 만족하며 살아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영적 전쟁속의 인생에 대해, 연기 같이 사라지는 인생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바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 겁니다. 




  올레비아누스가 우르시누스의 서재에 들어가기 전 그의 문 앞에 붙어있는 문구를 읽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곳에 들어오는 친구여,


용건만 간단히,


아니면 돌아가든지,


아니면 내 하는 일을 돕든지"




  하나님이 이 땅에 잠시 안식을 주신 이 때가 우르시누스의 금언을 되새겨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우리에게 발달된 문명이 있고, 육체의 고통을 덜어 줄 현대의학이 있고, 목숨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평화가 있다면 이 때가 어느 때보다 더 하나님의 일에 전심으로 매달릴 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와 가족의 목숨이나 안락함, 명예보다 하나님의 일을 더 소중히 여기는 주님의 용사로 저를 만들어 주시길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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