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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아더 핑크(The Life of Authur W. Pink) 서평 by 김병혁 목사2018-07-04 16: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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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더핑크』 (The Life of Arthur W. Ping) 서평




 

이안 머레이 저, 아더 핑크, 복있는 사람


 


 


얼마 전에 국내의 어느 기독 출판사를 통해서 ‘아더핑크’의 평전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은 마치 연애편지를 기다리는 군인같이 내 마음을 들뜨게 하였다. 더군다나 이 책 저자가 정통 교회 역사와 인물을 소개함에 있어서 우리 시대에 가장 탁월한 기독교 전기 작가 중 한 사람인 이안 머레이(Iain H. Murray)라니, 내 안에 책에 대한 강렬한 소유욕이 불일 듯 일어났다.


 


그런데 나의 간절함을 눈치 채고 있었다는 듯이 어느 날 출판사에서 금방 찍어 낸듯한 책 한 권을 내게 보내 주었다. 주린 배를 채우듯 허겁지겁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하지만 곧 단박에 읽을 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그 어간에 다른 분주한 일상과 겹치는 바람에 손에 책을 계속 넣고 있을 수 없는 이유도 있었다. 덕분에 긴 호흡 속에 480여 페이지에 새겨진 깨알 같은 글자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비교적 세심히 관찰할 수 있었던 것은 기대하지 않은 행운과도 같은 일이었다.


 


아더 핑크. 나에게는 매우 특별한 분이다. 어쩌면 구면(舊面)이라고 할 만하다. 아더 핑크 목사님과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는 십 수 년 전 기억 속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학대학원 재학 시절, 도서관에서 우리말로 번역된 이분의 책 몇 편을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 개혁주의 신학에 심취해 있었던 나에게 ‘하나님의 주권'(도서출판 예루살렘)이라는 책은 충격 이상의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 일을 계기로 국내에 번역 소개된 다른 저서들을 수집하기도 하였다.


 


잠시 외국에 있는 동안에도 아더 핑크 목사님의 저작을 소개하는 웹사이트(http://www.pbministries.org)를 들락거리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곳은 적어도 나에겐 목마른 사슴을 위해 예비된 옹달샘과 같았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섬기고 있는 연구회의 독서토론 모임에서 그의 또다른 저서인 ‘하나님을 아는 즐거움’이(도서출판 누가)란 제목의 책을 가지고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속에 채워지지 않는 한 가지 아쉬움이 있었다. 아더 핑크 목사님의 생애에 관한 신뢰할만한 자료를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신뢰하는 이안 메리이 목사님을 통해서 흠모하는 아더 핑크 목사님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를 이토록 자세하고 깊고 선명하게 전해들을 수 있다니... 이것은 나 자신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나와 비슷한 신앙과 정서를 가진 한국 교회 성도들에게 그야말로 단비와 같은 소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이런 사실적인 행복감을 안겨 준 출판사(복있는 사람)와 출판 관계자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이 책이 영리추구의 근본 생리를 얼마만큼 충족시켜 줄 수 있을는지 모르겠지만(영리추구의 이유라면 이런 류의 책을 찍어낼 출판사는 거의 없다고 생각되지만), 진리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한국 교회의 열악한 풍토에 양질의 거름을 주는 일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책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는 한국에 산재한 기독 출판사의 가치성과 존재 이유와도 맞닿는 일이라 생각된다.


 


각설하고, 이제 이 책에 관해서 톺아보자. 대개 어느 신학자나 목회자의 사상과 신앙을 알기 위해서 그가 쓴 글이나 설교를 살펴보는 것이 통례이지만, 그가 살아 온 인생을 면밀히 추적해 보는 일이야말로 정보적인 면에서나 공감면에서 더욱 실제적인 유익을 가져다 준다. 특히나 글로는 잘 알려졌으나 무명과 같은 생애를 산 인물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아더 핑크 목사님은 우리말로 소개된 책만 해도 십 여 권에 달하는 유명인이지만 그의 생애에 관해서는 철저하게 무명인으로서 남겨져 있었다.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만해도. 그동안 어떤 이유로 그의 생애의 일화들이 비밀에 부쳐진 것처럼 소개되지 않았는지 잘 모를 일이나 그의 글을 통하여 진리의 명확함과 부요함을 조금이라도 경험한 사람에게라면 그의 생애는 충분하고 편만하게 알려질 가치가 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이 책은 훌륭한 신학자이며 동시에 탁월한 전기 작가인 이안 메레이 목사님의 정교한 필체와 경건한 집념으로 빚어진 아더 핑크에 관한 최고의 평전이다. 이 책을 최종 탈고하기까지 머레이 목사님은 수십 년간 아더 핑크 목사님의 발자취를 쫓아 그와 관련된 여러 인물과 사건과 직접 조우하였다. 그의 표현대로, 아더 핑크 목사님은 20세기 후반에 가장 영향력있는 복음주의 저자 가운데 한 사람이지만 그의 삶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없었음에도 그는 오랫동안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던 아더 핑크 목사님에 관한 철저한 연구와 사려 깊은 자료 수집을 통하여 그를 대중 앞에 세우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그가 이 책을 통해서 살려낸 아더 핑크 목사님은 저명한 위인도, 성공한 목회자도 아니다. 진리에 관한 한 표리부동하고 불성실하며 암매하고 유치한 교회 현실 속에서 오직 말씀과 함께 치열하고 사색하며 좁은 길로 담대히 나아가는 성도의 삶을 담담하게 소개할 뿐이다.


 


우리 시대의 관점에서 보면 아더 핑크 목사님은 실패한 목회자요, 무명의 신학자이다. 그는 오늘날과는 교통 시설과 편의를 비교할 수 없이 열악한 시대에 지구를 몇 바퀴나 돌 정도의 정열적인 복음 전도 여행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언제나 실망과 좌절의 일들이 끊이지 않았다. 수없이 반복된 이사와 늘 새로운 삶의 환경에 적응해야만 했던 기억은 그가 어느 곳에도 머리 둘 곳 없는 가난하고 병약한 목회자였음을 말해 준다. 그는 발길이 닿은 곳마다 복음을 전하며 글을 쓰며 교회를 세웠지만 결말은 좋지 못했다. 격렬한 논쟁으로 미움의 대상이 되든지, 사람들의 거절로 사임을 하게 되든지, 아니면 그곳에서 떠나야 했다.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으스하고 춥고 축축하고 어두운 영국 날씨를 닮은 아더 핑크 목사님의 개인적 성향탓이라고 몰아 부친다. 그는 실제로 당시 많은 목사들과 불화와 갈등을 겪었으며, 낯선 사람과의 만남을 어려워할만큼 내성적이었으며, 사람들의 날선 반응에 대해 의기소침하였으며, 지속된 격무와 호전되지 않는 병세에 신경쇄약증이 걸릴 정도로 날카롭기도 하였다. 그러나 저자는 아더 핑크 목사님에 이러한 주장이 얼마나 근거 없는 편협한 낭설인가에 대해 깊고 다양한 고증을 통하여 설득력 있는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아더 핑크 목사님의 성격이 호방하더다거나 사교적이라는 말이 아니다. 또한 그가 세련된 제스쳐와 큰 목소리로 청중의 감정을 움직이는 불같은 설교자나 칼빈, 존 오웬, 요나단 에드워즈에 범접하는 불세출의 신학자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책 전체에 스며 있는 그의 여생의 흔적들은 그가 얼마나 진리 편에 분명하고 단호하게 서 있는 설교자였으며, 얼마나 엄격하고 충실한 칼빈주의자였으며, 얼마나 교회와 성도를 지극히 사랑한 목회자였는지를 말해 준다.


 


그가 가는 곳마다 분쟁에 휘말리고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한 것은 그의 성격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세상 풍조와 잘못된 신학에 물든 사람들의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하는 아더 핑크 목사님의 설교와 신학과 삶을 싫어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 의 소망을 절망으로 바꾸며 악한 양심을 정죄하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마치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치려고’(행 7:57,58) 하듯이 아더 핑크 목사님을 거부하였던 것이다.


 


사실 아더 핑크 목사님의 설교와 글에는 당시 교인들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무거운 주제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알미니안적 교리와 신앙에 익숙한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을 소리 높여 부르짖었다. 중생하지 않은 자들의 비위에 맞추는 일을 목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향해 거짓 복음에 주의하라고 경고하였다. 사람들의 귀와 눈을 즐겁게 하는 요소들로 변질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전하였다. 그런데 어찌 그러한 거짓 복음 전도자와 명목상의 신자들로부터 미움과 조롱과 핍박을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찌 그들로부터 분리되지 않을 수 있겠으며, 주님만을 의지하는 나그네의 삶을 고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아더 핑크 목사님의 이러한 신앙 태도를 그 유명한 「성경연구(Studies in the Scriptures)」를 통해 엿볼 수 있다. 대개 일반 성도를 대상으로 하는 신앙 잡지들이 강조하는 컨셉은 친절과 적응이다. 영악한 편집자들은 독자들에게 부담을 덜 줄수록 부수가 늘어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아더 핑크 목사님의 「성경연구」는 그런 의도와는 전혀 맞지 않았다. 제목에서 풍겨나듯이 세상일에 너무 바빠서 하나님의 일에 틈을 낼 시간이 없는 사람이나 성경을 주의 깊게 정독하고 묵상하는 일을 낯설어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퉁명하고 불친절하게 느껴질만한 잡지였다. 효율성과 실용성의 가치가 교회 안에서조차 높이 숭상받는 시대의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경연구」 은 2차 세계 전쟁 중에도 끊임없이 발행되었으며 전쟁과 무관한 성도뿐만 아니라 전장(戰場)에 있는 주를 믿는 병사들에게도 위로와 확신을 주는 은혜의 메시지로 활용되었다. 아더 핑크 목사님과 그의 아내 베라 핑크 여사의 탁월한 소신과 끈덕진 결심에 의해 발행된 이 잡지는 핑크 목사님 사후에는 세계 도처에 있는 하나님의 성도들에게 전달되었다. 이름모를 어느 성도만이 아니라 로이드 존스 목사님과 같은 이름난 신학자도 이 잡지에 실린 하나님의 은혜를 실제적으로 맛보는 수혜자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아더 핑크 목사님의 개인적인 성향과 독특한 사역을 근거로 그를 실망과 고독 속에 잊혀진 무명의 신학자로 여긴다. 심지어 하나님을 사랑했지만 그의 삶은 불투명한 회색빛 톤으로 점철된 음산하고 우울한 인생으로 단정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안 머레이 목사님을 통해 전달되는 아더 핑크 목사님의 생애는 진리 가운데 불꽃 같이 타오른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바 된 삶이었음을 여실히 보여 준다. 세상에서 절망과 고난을 대할 때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량없는 기쁨과 감격을 누렸다. 현실 교회에 대한 기대가 깨어지고 선한 소망이 짓밟혀 보이는 순간에도, 그는 그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장차 이루실 기이한 일의 재료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진리가 침체되고 영적인 쇠락이 거듭되는 현실속에서도, 그는 자신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구원의 빛으로 인도하신 그분의 계획과 섭리를 확실하게 믿었다. 또한 자신에게 허락된 수많은 고난과 시련은 자신을 더욱 강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축복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담대하고 행복한 특권을 누렸다. 병약한 몸과 경제적 불황과 불우한 환경과 민감한 성격은 때로 인간적인 고민과 절망을 안겨 주었지만 그것은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기회가 되었으며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징검다리가 되어주었다. 아더 핑크 목사님의 생은 하나님 안에 사는 성도에게 있어서 완전한 절망이란 있을 수 없으며, 세상의 유혹과 사단의 시험일지라도 그것이 우리를 무너뜨리지 못한다는 것을 몸소 교훈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 사람의 목사로서 아더 핑크 목사님을 통해 받는 실제적인 도전을 나누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우선 아더 핑크 목사님의 엄청난 독서량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일년에 이만 내지 삼만 페이지 가량의 책을 읽을 정도였다니 놀랍고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청교도의 서적 중에 차마 읽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그는 책을 사랑했으며 책과 함께 한 인생이었다. 그는 정통 개혁교회의 서적들을 통하여 청교도와 개혁주의자를 사랑하게 되었으며, 그들이 생명 같이 사랑한 진리를 더욱 사랑하였던 것 같다. 하지만 그가 대부분의 시간을 책을 읽는 데만 소비하였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그는 편지쓰기를 좋아하는 목사였다. 1946년까지 자필로 쓴 편지가 이만 통이 족히 넘는다고 하니 오늘날 인터넷 환경에 익숙한 시대에서도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수치이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보낸 편지들은 사사로운 편지가 아니라 성경의 지혜를 전달하는 방편이었다. 그는 편지를 통하여 자신의 믿고 확신하는 바를 전하였을 뿐만 아니라 성도의 지식과 형편을 돌아보았다.


 


어디 그뿐인가. 그는 기회가 될 때마다 긴 시간 설교 하였고(어떤 때는 일주일에 여섯 번 설교 할 때도 있었다), 그 외 성경 연구와 글을 쓰는데 나머지 시간을 투자하였다. 그는 오직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생각하고 실행하고자 하는 것만으로도 하루 24시간이 부족한 삶을 살았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눈부신 과학의 발전에 힙입어 시간과 노동을 쉽사리 아낄 수 있는 많은 문명적 이기(利器)와 혜택을 누리고 있음에도 과연 오늘날 목회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얼마만큼의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는가? 자문하지만 절망할 수밖에 없는 내 모습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오늘날에도 칼빈주의와 개혁주의를 말하는 이들이 많다. 나도 그런 무리 중에 있는 한 사람이다. 하지만 진리 가운데 믿고 알고 확신하고 전하고 들은 대로 사는 칼빈주의자, 개혁주의자를 만나기란 좀처럼 어려운 시대이다. 유명한 개혁주의자로 살기를 원하나 무명한 개혁주의자로 죽기를 두려워한다.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말하면서도 의를 위해 겪는 고난과 핍박을 회피하려 한다. 그런 점에서 진리에 충실한 칼빈주의자, 말씀에 철저한 개혁주의자 아더 핑크 목사님의 생애가 주는 교훈은 이 시대에 개혁 신앙으로 살고자 하는 목회자와 성도에게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 특별한 의미를 찾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노파심에 한마디 거든다면, 이 책에서 인간 아더 핑크에게 집착한다면 차라리 책을 덮거나 읽지 않는 것이 좋다. 내가 이 책을 추천하는 가장 주된 목적은 그로 하여금 주권적인 능력에 순응하도록 하시며, 마침내 그를 통하여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성취하신, 바로 그분을 앙망하자는데 있음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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