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G 서평

제목이성호 교수님의 논문, [17세기 회중교회론과 장로교회론의 차이]를 읽고 생각한 점] by charis2018-07-04 16:3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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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관심가는 주제였던 개혁주의설교연구원 28기 정기세미나의 '장로회주의 원리와 목회 실제' 발제집을 다 읽었습니다. 실제 현장에서 어떤 질문, 논의, 평가가 오갔는지 궁금합니다. 특별히 마지막에 실린 이성호교수님의 논문, [17세기 회중교회론과 장로교회론의 차이]는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었습니다.




자세한 후기는 쓸 실력이 안 되고, 단문 형태로 논문의 내용과 제 생각을 나란히 놓는 형태로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아래에 쓰인 제 생각들은 뚜렷한 근거와 확신가운데 쓰인 결론이라기보다는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앞으로 제가 더 알아가고 싶은 내용들을 정리해서 남긴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교회론 일부를 제외하고 장로교회와 회중교회는 신학이 본질적으로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곳은 신학이 아니라 교회정치에 관련된 부분이었다."




- 교회정치가 신학함의 과정을 통해 이끌어내진다고 하였을 때 교회정치의 차이는 신학의 차이가 아니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지 궁금해지는 부분이었습니다.




"우선 재세례파는 성경을 제외한 모든 교회의 전통을 거부하였다. 이와 반대로 개혁파와 루터파는 교회의 전통이 성경의 교훈과 일치하는 한 받아들였다.........개혁파와 루터파는 동일한 성경관을 가졌으면서도 역시 하나의 교회를 이루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성경에 대한 신학적 해석이 달랐기 때문이다."




- 저는 루터파와 개혁파의 중요한 차이를 이성호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성경에 대한 해석에서도 발견하지만, 또 한편 루터파가 (성경과 동등한 권위로서는 아니지만) 성경에서 근거를 전혀 발견할 수 없는 인간적 전통을 인정한 면에서도 발견한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런 루터파의 모습을 생각할 때 루터파가 "교회의 전통이 성경의 교훈과 일치하는 한 받아들였다." 고 말하는 것은 조금 엄밀하지 못한 진술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이들(장로교회와 회중교회)이 성경해석에서 다르게 된 결정적인 차이점 중에 하나는 본성의 빛(light of nature) 즉 이성에 대한 이해가 달랐기 때문이다."




- 웨민에 나왔듯이 성경으로부터의 선하고 적절한 추론의 중요성을 중요시하는 장로교회의 특징이 장로회주의를 도출했고, 이것이 회중교회주의자들과 교회정치의 차이를 가져왔음을 잘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조지 길레스피의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어떻게 장로회주의의 성경적 근거를 이런 선한 추론가운데 옹호하였는지 더 궁금해집니다.




"가시적 교회에서 가장 논쟁이 되는 부분은 개체교회와 보편교회를 어떻게 규정하고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였다........회중교회주의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보편교회는 구체적인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단순히 전 세계에서 참된 신앙을 고백하는 자들의 모임일 뿐이다.....이와 반대로 장로교회주의자들은 가시적 보편 교회야말로 진정한 교회이고 개체교회는 보편교회의 부분으로 보았다.......장로교회주의자들은 개체교회가 교회로서 충분하다고 보았지만 완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 교회의 가시성과 보편성의 측면을 중요시 여기는 장로교회의 특징을 잘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개체교회가 가시적 보편 교회에 속하여야 완전한(온전한?) 교회의 모습을 나타낼 수 있다는 생각에 공감이 갑니다.




"노회가 상설기구이고 개체교회는 그 기구의 일부라면 노회의 결정은 개체교회에 대해서 강제적 권위를 갖게 된다.......총회와 노회, 노회와 개체교회 사이에는 본질적으로 위계질서가 존재한다."




- 거대한 회중교회들(이름만 장로교회인 메가처치들)이 노회와 총회의 개념을 왜곡시키고 있는 한국교회의 현실을 바라보며, 반대 극단으로 나간 많은 분들이 노회와 총회의 가치와 위계를 무시하며 노회와 총회는 절대 상회가 아니며 개체교회와 완전히 모든 면에서 동등하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특별히 화란교회의 정치를 언급하는 분들 중에서....) 하지만 이것은 장로교회적인 노회와 총회의 개념이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성호 교수님의 장로교회적인 노회의 이해를 통해서 이 점을 새롭게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장로교회의 교회정치를 너무 위계적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장로교회 역시 노회에 대한 개교회의 자율성, 총회에 대한 개교회의 자율성을 상당히 보장하고 있다. 주교제도와 같이 상회가 하회에 절대적 복종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 후반부에 나오는 이 진술을 통해 장로교회적인 노회와 총회 개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전에 제가 쓴 독토 후기 '장로주의 정치와 정교분리'에서 '회(會)간의 평등성만을 강조함으로써 노회의 역할을 무색하게 만들거나, 회(會)간의 고저(高低)를 강조하여 지교회의 독립성을 해치는 방식은 옳지 못' 하다고 정리했던 생각이 더 체계를 잡게 된 느낌입니다. 즉 노회와 총회를 설명함에 있어 우리는 무척 신중해야 하며, 노회는 절대 상회가 아니라거나, 노회는 모든 면에서 상화라는 식의 극단을 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이유때문에 장로교회주의자들은 보다 친밀한 국가와 교회의 관계를 추구하였고 회중교회주의자들은 그 반대의 입장에 서게 되었다........예를 들어 웨민 고백서는 위정자들이 교회의 회를 소집할 수 있다고 선언한다........여기에서 우리는 회중교회 주의자들이 관용에 대해서 일관성 있는 입장을 유지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국가와 종교의 분리는 여전히 생소한 개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정교분리에 대한 단락에서 장로교회주의자들이 국가 권력에 더 친숙했다는 근거로 1647년 웨민 원본에서 위정자의 교회 소집권한을 인정한 진술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의문은 장로교회주의자들이 국가 권력에 친숙했던 것이 장로회주의에서 연역되는 필연적인 논리적 결과인가 하는 것과, 웨민 원본의 23항에 있는 위정자의 교회회의 소집권한에 대한 진술이 장로회주의자들이 바라던 가장 이상적인 진술이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스코틀랜드 장로회주의자들 사이에서도 귀족의 성직임명권에 대한 치열한 논쟁과 분열의 역사가 있었음을 압니다. 그리고 국가로 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교회의 모습은 그 당시 상황속에서 쉽게 정립하기 힘든 개념이었습니다. 또한 1647년 웨민 원본의 모든 내용이 (회중주의자와 에라스투주의자들로 인해) 장로회주의자들의 생각과 이상을 완전히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도 압니다. 이러한 고려점들을 생각할 때 이성호교수님의 진술은 좀 성급한 진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회중교회의 경우 개체교회가 최종적 권위를 가지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분쟁이 일어나서 해결되지 못 할 경우 해결할 방법이 없다......어떻게 보면 이것이야말로 회중교회가 지닌 가장 큰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 회중교회가 가지는 현실적이고 심각한 약점을 설명한 부분에서 왜 그들이 오늘날과 같이 대부분 자유주의로 빠져들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장로교회는 크게 다르다고 자신할 수 있는 현실은 아니지만, 장로교회가 교단의 분리를 통해 정통성과 순결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작지만 무시하지 못할 흐름들이 이어져 온 것에 비해 회중교회는 이러한 정통성의 명맥을 유지할 안전장치가 전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미국북장로교회는 이전의 전통적 웨민 신앙고백서를 변경 및 포기하고 현대주의의 노선을 걸었고 이 때문에 정통장로교회가 새롭게 출발하게 되었다."




- 장로교회 역시 문제가 없을 수는 없다는 점을 지적하시며 언급한 구체적인 사례입니다. 이 부분에서 이성호 교수님이 몸 담고 계신 고신측도 미국북장로교회와 같이 1903년 개정된 웨민을 받고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목사가 장로나 집사를 지배할 수는 없지만 장로교회는 중요성에 있어서 목사가 다른 직분들에 비해서 우선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노회의 기능이 약화될 경우 목사는 제대로 보를 받을 수 없다."




- 학식과 경건을 갖춰 양무리를 풍성히 먹일 수 있는 목회자가 끊이지 않는 것이야말로 장로교회가 장로교회다워질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한국교회에서는 노회가 목사 양성에 책임을 지지도 않고, 진실한 목사들을 보호하는 일에도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이처럼 노회의 기능이 마비되었을 때 목사다운 목사들은 사라지고, 직분의 평등성이라는 민주주의 사회의 평등성 개념과 다를 바 없는 평등성만이 개교회 안에 남게되어 직분자들간의 대립이 첨예화되고 교회가 큰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오늘날 회중교회와 별반 다를 바 없는 한국교회가 마주하는 문제들을 노회의 바른 기능 회복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실마리를 이 논문을 통해 찾았습니다.




여러면에서 생각할 거리와 통찰력을 제공해 준 논문이라 이렇게 훗날 더 발전된 논의와 개념 정리를 위해 감상을 적어 보았습니다. 혹시 이 논문을 접하시거나 당시 개설연 세미나에 계셨던 회원분들이 있다면 제 의견이나 의문에 대해 지도해주시고, 일깨워 주신다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밤이 늦었습니다. 모두 평안한 밤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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