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G 칼럼

제목"나는 나중에 아무개 목사님처럼 될꺼야"2018-06-26 11:00:36
카테고리 박재원 성도
작성자




          십대 후반에 저의 우상은 존 맥아더 목사님이였습니다. 그 분은 저로 하여금 성경을 사랑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이십대 초반에 저의 우상은 팀 켈러 목사님이였습니다. 그 분은 저로 하여금 복음을 사랑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이 두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마음 속으로 얼마나 많이 다짐했는지 모릅니다. "나중에 크면 꼭 존 맥아더 목사님 같은 목사가 될꺼야." "나중에 크면 꼭 팀 켈러 목사님 같은 목사가 될꺼야."

          그런데 존 맥아더 목사님과 팀 켈러 목사님의 공통점이 뭔지 아세요? 두 분 다 대형 교회의 담임 목사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왜 이 두 분을 닮고 싶어하냐는 질문에 "존 맥아더 목사님은 성경을 사랑하시니까", "팀 켈러 목사님은 복음을 사랑하시니까" 라고 대답은 하지만 사실 꽁꽁 숨겨져 있던 진짜 정답은 "존 맥아더 목사님이나 팀 켈러 목사님처럼 유명해지고 싶으니까" 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 두 분은 대형 교회를 이루기 위해서, 유명해지기 위해서 성경을 강해하고 복음을 선포하셨던게 아닙니다. 단지 주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신실하게 감당해나가셨을 뿐입니다. 하지만 저는 다릅니다. 제 마음은 닿는 모든 것을 검게 만들어 버리는 먹과 같아서 순식간에 하나님께서 누리라고 주신 모든 선한 것을 제 자신의 욕구와 야망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바꾸어 버립니다.


          바빙크 교수님의 <개혁교의학>을 읽을 때 든 생각입니다. 왜 그렇게 어려운 <개혁교의학>을 읽고 있을까요? 그 책을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고 그 분을 사랑하고 섬기기 위한 순수한 동기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려운 그 책을 이해했을리는 없으니) 그 책을 읽어봤다고 말해 사람들의 동경과 선망을 끌어내려는 불순한 동기가 섞여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자랑스럽게 두꺼운 (그리고 무거운!) <개혁교의학>을 들고 다니면서 말입니다.


          목사가 갖추어야 할 자격들 중 하나인 '자기 부인'에 대해 다루시면서 아 브라켈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자기 자신을 내세우는 목사만큼 해 아래 더 역겨운 생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모든 신성한 것들을 이용해 자신의 악한 정욕을 충족하려 합니다. 기도할 때나 설교할 때 거룩한 열정을 드러내 보이면서 결국에는 하나님께 다른 불을 드리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척한다면 이 얼마나 역겨운 일입니까!




다른 곳에서 목사로의 내적 소명을 다루시면서 아 브라켈 목사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만약 사회적으로 낮은 자리에 있는 어떤 사람이 사역을 통해 유명한 사람이 되거나 재물을 모으기를 원한다면 그 사람은 완전히 잘못된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차라리 구두장이가 되는 편이 더 행복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생각하기에 하나님의 거룩한 것들을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는 중생하지 않은 목사보다 더 역겨운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바퀴벌레 같아서 참 죽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굶겨 죽이려고 해도 아무거나 먹어치우면서 악착같이 살아남습니다. 태우고 얼리고 때려 죽이더라도 어느새 배에 달고 다니던 알집을 남겨두고 난 후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마음 속을 주시하면서 교만을 경계해야 합니다. 특히 목회자 후보생은 더욱 더 그래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만한 목사는 자기 자신의 영혼을 위험에 빠뜨릴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주님의 교회를 해치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분의 능력이 역사하심으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일꾼이 되었다. 모든 성도들 가운데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가 주어진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하심을 이방인들에게 전하게 하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안에 영원 전부터 감추어진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지 모두에게 밝히게 하시려는 것이다 (엡 3:7~9).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일꾼으로 부르시는 것은 그 사람이 잘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모든 성도들 가운데 지극히 큰 자'이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 사람이 일꾼이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된 것입니다. 


          복음은 그리스도인을 겸손하게 합니다. 복음은 바울 사도님, 일평생을 바쳐 곳곳에 교회를 세우고 신약 성경의 대부분을 집필하셨던 그 분으로 하여금 "나는 모든 성도들 가운데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다. 내가 사도가 된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님의 풍성하심, 그 은혜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시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은 저로 하여금 모든 성도들 가운데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보다 한참 더 작은 저를 하나님께서 일꾼으로 부르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고 말하게 합니다. 아, 하나님께서 십자가 뒤에 저를 숨겨주셔서 제가 아닌 그 십자가 위에 달리신 그리스도님께서 찬란하게 드러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 분께 모든 영광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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