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G 칼럼

제목시편 찬송을 부른지 한 달쯤 되는 날2018-06-26 11:24:12
카테고리 박재원 성도
작성자

"개인이나 가정 중에 경건의 시간에 찬송을 부르는 분들은 손 들어보세요."






          예배당 안이 조용합니다. 어찌나 조용한지 제 뒤에 앉은 아이의 과자를 먹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릴 정도입니다. 두 분. 결혼한지 얼마 안 된 신혼 부부 두 분만 손을 들고 계시고 저를 포함한 나머지 분들은 모두 누가 손을 들었나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예배에 대한 토의의 연장으로 이번 주는 개인이나 가정이 드리는 예배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목사님께서 갑자기 그런 질문을 던지신 것이지요. 손을 들고 계시던 부부가 멋쩍게 손을 내리고 목사님께서는 본인도, 본인 가정도 원하는 만큼 찬송을 부르지는 않는다고 인정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몇 가지 유익을 설명하시면서 개인 예배든지 가정 예배에서든지 찬송을 부를 것을 권면하셨습니다. 그게 벌써 한 달 전 일입니다. 한국에서 올 때 '고려서원'에서 출판한 <시편 찬송>을 가지고 왔기에 그 날 이후로 경건의 시간을 가질 때 시편 찬송을 두 편씩 부르고 있습니다. 주일에는 시간을 내서 시편 찬송을 몇 곡씩 익혀가고 있고요. 한 달정도 되니 이제는 말씀을 읽기 전, 읽고난 후에 시편을 찬송하는 그 시간이 참 즐겁고 유익합니다.

          아 브라켈 목사님께서는 그 분의 책 <Christian's Reasonable Service>에서 구원론의 일부로서 한 장이나 할애해서 '찬송'이라는 주제를 다루십니다.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그 마음으로부터 샘솟는 기쁨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찬송하게 된다는 맥락이겠지요. 그런데 흥미롭게도 찬송에 대해 말씀하시다가 갑자기 화제를 돌려 찬송을 하지 않는 당시 교회상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기십니다.




네덜란드에 사는 경건한 사람들을 보면 노래를 별로 부르고 싶어하지 않고, 또 실제로도 노래를 자주 부르지 않습니다. 놀랍습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볼 때) 점잖은 태도를 중시하는 우리 나라의 국민성을 생각해보면 노래를 별로 부르지 않는게 이해가 되긴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속적인 사람들을 보면 노래를 꽤나 부르곤 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마음을 헛되게 만드고 음란을 부추기는 노래를 부릅니다. 한 편으로 경건한 사람들은 아예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고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저는 노래를 부를 시간이 없습니다" 하고, 어떤 사람은 "저는 노래를 잘 못 부릅니다" 라고 하기도 하며, 또 어떤 사람은 "저는 아는 노래가 없습니다" 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 눈치가 보여서 노래를 못 부르겠습니다" 라고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볼 때 이 모든 것은 진짜 문제가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노래를 부를 의욕이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찬다면 우리는 지체없이 주님을 찬송할 것입니다. 기쁨의 노래를 부르며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것입니다. 지금 저는 교회 안에서 찬송을 부르는 것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근데 가만히 보면 교회 안에서조차 입을 열어 찬송을 부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만히 서서 시편 가사를 조용히 읊조리는게 전부입니다.)




          노래를 잘 부르지 않는게 네덜란드 국민성이 그렇다고 하시네요. 제가 다니는 교회의 교인 분들 대부분이 네덜란드계 미국인이라는게 자꾸 떠오릅니다. 물론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요. 여담이지만 지금도 생각나는게 어머니께서 동생을 재우실 때마다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시편 121편)를 부르시곤 했는데, 방에서 어머니의 찬송 소리를 들으면서 제 마음이 따뜻해지는걸 느꼈던 기억이 있어요. 참 그러고 보면 예전에 어머니께서 집안일을 하시면서 곧잘 찬송을 하셨던 것 같은데 이제는 어찌된게 더이상 어머니의 찬송 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 서글픈 마음이 드네요. 


          어쨌든 네덜란드 그리스도인들이 자주 찬송하지 않는 것을 한탄하시면서 아 브라켈 목사님은 다음의 다섯 가지 이유를 들어 찬송할 것을 권면하십니다. 




1) 노래를 부르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2) 노래를 부르는 것은 인간의 본성과 부합하는 활동입니다.


3) 노래를 부르는 것은 하늘의 천사들과 땅의 교회가 해야할 일입니다.


4) 노래를 부르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5) 노래를 부르는 것은 마음을 움직입니다.




그 중에서도 저는 특히 다섯 번째 이유에 고개가 끄덕여지더라고요. 아 브라켈 목사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다섯 째로, 찬송에는 기도할 때조차 움직이지 않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찬송을 하면서 들고 있는 찬송가집에 눈물을 뚝뚝 흘리곤 합니다. 여러분은 그런 경험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이 찬송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찬송을 할 때, 다른 사람들도 그런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프랑스 교황주의자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시편을 찬송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이를 어길 시에 가혹한 처벌을 내리도록 했습니다. 개신 교회 대학살이 일어나기도 전부터 말입니다. 그러므로 더이상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지 마십시오. 입을 열어 찬송하십시오. 마귀와 하나님의 대적들과 상관없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말입니다. 찬송을 하는 것이 경배의 노래로 주님을 감사하지 않는 것보다 이미 여러분에게 유익이 되었던 것처럼, 아니, 유익이 되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여러분의 찬송 소리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게 할 것입니다. 세속적인 사람들조차 여러분의 찬송 소리를 듣고 경건은 우울해하는 삶이 아니라 기쁨으로 가득차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들도 그 기쁨을 얻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찬송을 하기로 결심했다면 마음으로, 뜨겁게, 주님의 임재를 느끼며 경건하게, 가사를 생각하면서 찬송하십시오. 그럴 때 여러분의 찬송은 주님 앞에서 하는 찬송이 되고, 주변 사람들을 세우는 찬송이 될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죄의 짐으로부터 해방되었던 <천로역정>의 주인공은 세 번 뛰며 기뻐하고 찬송하며 다시 발걸음을 옮깁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도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님을 바라볼 때 가슴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낍니다. 눈시울은 붉어지고 코 끝은 찡해집니다. 우리의 구원은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 값비싼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기 전에 먼저 그 분의 공의를 충족하셔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은 우리 위에 쏟아 부으셔야 할 진노를 예수님께 쏟아 부으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를 견뎌내셨습니다. 하나님조차 잠잠하셨던 그 언덕 위에서, 온 땅에 엄습했던 그 어두움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마셔야 할 잔을 가만히 취하시고, 그 잔에 담긴 하나님의 진노를 한 방울도 남김없이 모두 마시셨습니다.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주님 앞에서 연한 순같이 마른 땅의 뿌리같이 자라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으며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다. 그는 멸시를 당하고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으며, 슬픔을 많이 맛보고 병고를 아는 사람이다. 마치 사람들이 외면하는 자 같이 그가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아니하였다.




참으로 그는 우리의 병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으나, 우리는 그가 징벌을 받고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하였다.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며,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그가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다. 우리는 모두 양같이 방황하여 각기 제 길로 갔으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를 그에게 넘겨 씌우셨다.




그는 짓밟히고 괴롭힘을 당하여도 그 입을 열지 않았으며,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 같고, 털 깎는 사람 앞의 양같이 잠잠하여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다. 그가 잡혀가 감금당하고 재판받았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받을 내 백성의 죄악 때문이다.' 하였겠느냐? 그는 폭력을 행한 적이 없으며 그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은 악인들과 함께 있었고 그의 묘실이 부자들과 함께 있었다.




여호와께서 그가 상처입는 것을 기뻐하시고 고난을 당하게 하셨으니, 그의 영혼을 속건제로 드릴 때에 그가 자손을 볼 것이며, 그의 날들이 길 것이며, 또 그 손으로 여호와의 기쁜 뜻을 이룰 것이다.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할 것이니, 내 의로운 종이 그의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를 친히 짊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많은 사람과 함께 분깃을 그에게 나눠주고, 그는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눌 것이다.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들로 취급되었으나 실상은 그가 많은 자들의 죄를 지고 범죄자를 위해 중보하였다" (사 53:1~12).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리스도님께서 치루신 댓가가 얼마나 막대했는지를 깨닫게 될 때, 우리는 그 분을 찬송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됩니다. 아니, 그 분은 반드시 찬송을 받으셔야만 합니다. 하늘의 수많은 천사들이 큰 음성으로 말합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께서는 능력과 부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계 5:12).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어린 양께 목소리를 높입시다! 교회에서 그 분을 찬송합시다. 가정에서 그 분을 찬송합시다. 홀로 그 분을 찬송합시다. 화형틀에서 바짝 마른 입술을 열어 시편을 찬송하며 죽어갔던 프랑스 위그노들처럼, 우리도 하늘 나라에 있는 천사들과 성도들과 한 목소리가 될 그 때까지, 마음으로부터 샘솟는 찬송을 멈추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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