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G 칼럼

제목하나님의 가면으로서의 직업관2018-06-26 11:29:14
카테고리 박재원 성도
작성자




          쩔그럭. 쩔그럭. 손에 든 열쇠 고리가 흔들리며 열쇠들이 부딪힙니다. 주머니에 꽂혀있는 무전기에서는 경비를 서고 있는 학생들의 대화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가볍게 발걸음을 옮기며 학과 건물 1층에 있는 중앙 창고 문 앞으로 갑니다. 창고 문 앞. 짧게 쉼호흡을 하고 알맞은 열쇠를 골라 중앙 창고 문을 엽니다. 입고 있는 파란색 옷 가슴팍에 하얗게 수놓여진 글씨. 'Physical Plant(시설 관리부).'

          네, 현재 다니고 있는 학교 시설 관리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생활비를 벌 명목으로 시작한 일인데 벌써 일을 시작한지 두 해나 지나서 이제는 매 학기마다 들어오는 신참들을 교육시키는 벼슬까지 얻었습니다. 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원래 청소하는걸 좋아해서 쓸고 닦고 비우는건 일도 아닙니다. 거기다가 일을 하는 동안 귀에 이어폰을 꽂고 설교를 들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도 없습니다. 하지만 수요일은 조금 다릅니다. 냄새를 맡기만 해도 목이 따갑고 기침이 나오는 화학품이 가득 든 무거운 기계를 3층으로 운반해 직원용 화장실을 세척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직원용 화장실에 들어가 안에 있는 모든 가구를 밖으로 옮기고 나서 세척 기계를 문 앞으로 밉니다. 산업용 마스크를 쓰고 안으로 들어가 세척을 시작합니다. 한 시간이 지나고 세척이 끝났습니다. 머리는 어지럽고 몸은 녹초가 되버립니다. 무전기로 함께 일하는 동료 직원에게 보고를 한 후 그 날 할 일이 적혀있는 일지를 확인하고 다른 곳을 청소하러 갑니다.


          수요일 밤, 일을 끝내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 가끔 제 자신에게 묻습니다.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지?' 머릿 속에서 바로 들려오는 대답이 있습니다. '생활비 정도는 네 힘으로 벌어야지. 언제까지 부모님께 손 벌릴 수만은 없잖아.' 보통은 거기서 머리 속에서의 대화가 끝이 납니다. 하지만 오늘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정말 그게 다야? 일을 하는 이유가? 그게 전부?' '......'


          우리는 왜 일을 할까요? 단지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하는걸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하는 일은 금세 빛을 바래버립니다. 단순히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하는 일에는 어떤 기쁨도 보람도 없습니다. 정말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우리가 하는 일은 단지 그 정도 의미밖에 없는걸까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는 일은 단지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고, 주일에 하는 일은 하나님을 위한 일인걸까요? 루터 목사님께서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시인은 성령님의 감동으로 다음과 같이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예루살렘아, 여호와를 찬송하여라. 시온아, 네 하나님을 찬양하여라. 주께서 네 문의 빗장을 견고케 하시고, 네 안에 있는 자녀들에게 복을 내리실 것이니, 주께서 네 안에 평화를 주시고, 가장 좋은 밀로 너를 만족케 하신다 (시 147:12~14).


 


이 시편을 해석하시면서 루터 목사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의 직업관에 대해 설명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일하도록 부르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통해 그 분의 일을 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문의 빗장을 견고케 하신다는 노랫말에, 루터 목사님께서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문의 빗장을 견고케 하시냐고 묻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우리를 보호하실까요? 이에 대해 루터 목사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로 대답하십니다.


 


'빗장'이라는 말을 들을 때, 우리는 대장장이가 만드는 쇠붙이만을 떠올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 말을 들을 때 좋은 정부, 좋은 관리, 좋은 질서와 같이 우리의 안전을 지키는 모든 것을 떠올려야 합니다... 이 모든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주께서... 가장 좋은 밀로 너를 만족케 하신다" (시 147:14). 가족 모두가 저녁 시간에 식탁에 둘러 앉았습니다. 각 사람 앞에 놓인 그릇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고봉밥이 담겨 있습니다. 자, 이 밥이 어떻게 밥상까지 올라오게 되었을까요? 먼저 쌀을 살 돈을 번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 쌀로 밥을 지으신 어머니가 있습니다. 그 쌀을 판 점원이 있습니다. 그 쌀을 판 도매시장 직원이 있습니다. 그 쌀을 운반한 운전수가 있습니다. 그 쌀을 탈곡한 농부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두의 뒤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주께서 가축을 위하여 풀을 자라게 하시고 사람을 위하여 채소를 자라게 하시며 땅에서 양식이 나오게 하셨으니,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빛나게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 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습니다 (시 104:14~15).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힘 있게 하는 양식을 주실까요? 저녁 시간에 가족 모두가 빈 식탁에 둘러 앉아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읍니다. 아버지가 기도를 마치고 모두가 눈을 뜨면 빈 식탁에 갑자기 상다리가 부러질만큼 진수성찬이 '뿅'하고 나타나는 방식인가요?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그런 방식으로 우리를 먹이지 않으신다는걸 잘 압니다. 우리가 먹는 밥은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서 그 자리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아니, 다른 말로 하자면 우리가 먹는 밥은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들의 손을 빌려서 그 자리에 두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루터 목사님께서는 우리의 직업을 '하나님의 가면'으로 비유하십니다. 루터 목사님의 말씀을 잘 들어보세요. 


 


우리가 들판에서, 정원에서, 성읍과 가정에서, 전쟁터와 왕궁에서 하는 이 모든 일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는 일은 하나님의 가면입니다. 비록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일을 하시지만 그 가면 뒤에 숨어 계시는 것이지요. 만약 기드온이 순종하지 않고 미디안과 전투하러 가지 않았다면 미디안은 결코 정복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이 없이도 그렇게 하실 수 있으셨지만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밭을 갈고 씨를 뿌리지 않아도 옥수수와 과일을 주실 수 있으십니다. 하지만 그건 하나님의 뜻이 아니였습니다. 여러분이 혼자 힘으로 밭을 갈고 씨를 뿌려야만 옥수수와 과일을 얻는 것 역시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열심히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나서 이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 하나님. 도와주소서. 사랑하는 주님, 이제 제게 옥수수와 과일을 주소서.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그 자체는 우리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한 분만이 모든 선한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반드시 소매를 걷어부치고 손에 흙을 묻혀야 합니다. 열심히 일을 해서 하나님께 기회와 가면을 드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섭리를 통해 모든 사람을 먹이십니다. 그것은 그 분의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일에 우리가 참여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우리를 통해 일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우리의 손과 발을 빌리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합법적인 일이라면) 어떤 식으로라도 하나님께서 지으신 사람들을 먹이고 입히고 돕는 일입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일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 분과 함께 일하고 계신 것입니다!


          저는 이제 수요일 밤, 일을 마치고 휘파람을 불며 기숙사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비록 몸은 고단하지만 그 날 밤 저는 하나님의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세상적인 기준에서는 비천한 일이지만 저는 하나님을 도와 그 화장실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위생과 안전을 보장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루터 목사님께서는 "하나님께서는 시골 처녀를 통해 직접 소젖을 짜신다." 라고 설교하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다음 날 아침에 직원용 화장실에 들어가는 교수님들께서는 깨끗한 화장실을 보고 미소를 지으시겠지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도 똑같이 미소를 지으실 것입니다. 어느새 그 생각을 하는 제 입가에도 미소가 걸립니다. 아, 오늘도 보람찬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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