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G 칼럼

제목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의 초대 교수들2018-06-26 11:51:51
카테고리 박재원 성도
작성자




        겨울이 아직 가지 않았나봅니다. 찬바람은 여전히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새까맣게 변해버린 눈더미는 아직도 도로변에 쌓여있습니다. 가끔씩 세찬 눈발이 날리기도 합니다. 이런 날씨 가운데 봄 아닌 봄방학이 시작되었습니다. 평소라면 봄방학동안 알고 지내는 가정 집에서 머물거나 학교에 남아 일을 했을텐데, 이번 해 봄방학은 달랐습니다. 한 친구가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에 같이 방문하자고 제안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은 펜실베니아 주에 있는데 제가 머물고 있는 미시간 주에서 차로 열 시간정도 가야되는 거리입니다. 지난 일주일동안 오하이오 주에 있는 친구 집과 뉴 저지 주에 있는 친구 집에 번갈아 머물면서 저번 주 수요일에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에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펜실베니아 주에 들어서서 필라델피아 시 근처로 접근할수록 흥미로웠던게, 길가에 있는 건물들 대부분이 뉴잉글랜드 건축 양식으로 지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건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도 예외가 아니였습니다. 여든 다섯 해라는 긴 역사를 자랑하는 신학교인 만큼 교정에 자리잡고 있는 네 채의 건물들도 모두 고풍스러운 느낌을 물씬 풍기고 있었지요.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은 행정 관련 사무실이 들어서 있는 메이천 관, 교실과 경건회실이 들어서 있는 반틸 관, 학생들을 위한 시설이 들어서 있는 캐리지 하우스(Carriage House), 몽고메리 도서관, 이렇게 네 채의 건물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저와 친구는 먼저 메이천 관에 있는 입학 사무실을 방문했습니다. 입학 희망자 견학을 담당하고 계신 카일(Kyle) 씨께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교정 견학이 시작되었습니다. 한 시간동안 진행되는 교정 견학은 주로 메이천 관에서 이루어집니다. 메이천 관 안 곳곳에는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 설립 당시 초기 교수진들의 초상화가 걸려있는데, 그 초상화를 하나씩 살펴보면서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볼 수 있는 시간이지요. 자, 저와 함께 일곱 개의 초상화를 살펴보면서 20세기 미국 장로교회의 거장들을 알아보도록 합시다.




에드먼드 클라우니 (Edmund Clowney, 1917~2005년)




          먼저 우리는 입학 사무실 벽에 걸려있던 에드먼드 클라우니 교수님의 초상화 앞에 섰습니다. 클라우니 교수님은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에서 성경 신학과 설교학을 가르치셨던 분입니다. 이 분은 성경을 해석하는 방식들 중 하나인 구속사적 해석 방식을 실천 신학의 분야인 설교에 접목해서 구속사적 설교(redemptive-historical preaching)라는 개념을 대중화하셨던 분입니다.


          구속사적 설교가 무엇인지 설명하시면서 카일 씨께서는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를 예로 들으셨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이 이야기를 그저 도덕적으로만 설교하십니다. 이 경우에 회중은 다윗을 닮아야 합니다. "다윗과 같은 용사가 되자!"라는게 이 설교의 골자입니다. 또 어떤 목사님은 이 이야기를 그저 신학적으로만 설교하십니다. 이 경우에 회중은 어린 아이를 쓰셔서 적장을 쓰러뜨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키신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게 됩니다. 


          하지만 구속사적 설교는 이 양 극단을 모두 아우르게 됩니다. 누가복음 24장 27절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와 모든 선지자들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있는 자신에 관한 것들을 그들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성경이 자신을 가르키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설교도, 특히 구약 설교도 이와 일관된 방식으로 전달되어야 합니다. 이 경우에 회중은 예표로서 다윗이 가르키고 있는 그리스도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적장의 머리를 상하게 하신 그리스도님을 바라보며 회중은 그 분의 백성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볼 뿐만 아니라, 이미 승리를 거두신 그리스도님 안에서 자신들의 삶 속에서도 영적인 세력과 싸워 이길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구속사적 설교인 것이지요. 아래는 한국에 출판된 에드먼드 클라우니 교수님의 책들입니다(갓피플몰로 링크되어 있음).




설교와 성경신학(류근상, 크리스챤 출판사)

구약에 나타난 그리스도(네비게이토)

교회 - IVP 조직신학시리즈(황영철, IVP)

예수님은 십계명을 어떻게 해석하셨는가?(신호섭, 크리스챤 출판사)

베드로전서 강해 : 순례자의 소망과 영광 - BST 시리즈(정옥배, IVP)

베드로전서 - 여수룬 성경주석 시리즈(오광만, 여수룬)




폴 울리(Paul Woolley, 1902~1984년)




          두 번째로 우리는 입학 사무실에서 나와 대합실 벽에 걸려 있는 폴 울리 교수님의 초상화 앞에 섰습니다. 울리 교수님은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의 첫 번째 교회사 교수이셨는데요. 그 뿐만 아니라 첫 번째 교무과장, 심지어는 첫 번째 경비원이셨다고 합니다. 교수가 겸직으로 학교 건물 경비를 설 정도라면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이 얼마나 적은 인원으로 시작되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지요.


          폴 울리 교수님은 교회사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던 분입니다. 울리 교수님은 단순히 이름과 사건만을 나열하는 교회사 수업을 지양하시고, 전체적인 흐름을 짚어가며 역사를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강조하는 교회사 수업을 지향하셨다고 합니다. 이 분의 영향으로 현재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은 목회학 석사 과정에 있는 신학생들이 네 학기 분량의 교회사 수업을 듣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다음 세대 목사들이 충분한 교회사 지식을 갖추도록 장려하고 있다는 뜻이지요.




코넬리우스 반 틸(Cornelius Van Til, 1895~1987년)




          세 번째로 우리는 메이천 관의 접수처 벽에 걸려있는 코넬리우스 반 틸 교수님의 초상화 앞에 섰습니다. 반 틸 교수님은 변증학 분야에서 어마어마한 업적을 남기셨던 분이십니다. 그 당시에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모든 과목들은 성경을 기반으로 두고 있었지만 변증학만 그렇지 않았었다고 합니다. 반 틸 교수님은 그런 태세에 의문을 품고 만약 개혁 신학이 성경을 두고 '그리스도인의 삶과 교리의 표준'이라고 말한다면 변증학 또한 성경을 기반으로 가르쳐질 것을 주장하셨지요. 그렇게 '전제론적 변증학(Presuppositional Apologetics)'이 대중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까지 기독교 변증학은 계단을 올라가는 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고전 변증학의 한 종류인 우주론적 증명 방식을 취한다고 합시다. 그리스도인이 비그리스도인을 만납니다. 그리스도인이 말합니다. "만약 모든 결과에 원인이 있다면 이 우주에도 원인이 있겠지. 그 원인이 바로 신이야." 이런 방식의 변증학은 먼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으신다는 가정 하에 출발합니다. 그 다음에 증거들을 살펴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을 증명해내는 식으로 접근하지요.


          반 틸 교수님은 이런 식의 변증 방식에 반기를 드셨습니다. 만약 성경의 가르침과 일관되게 변증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며, 성경은 그 분의 계시임을 전제로 삼은 상태에서 변증해야 합니다. 방법론적으로라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존재하지 않으실지도 모르며, 성경이 그 분의 계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제론적 변증론은 모든 사람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일정한 전제를 두고 진리를 탐구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아무런 전제없이 중립적으로 진리를 탐구한다는 것은 이론 상에나 존재하는 일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세계관이 가지고 있는 일정한 전제들을 머릿 속에 둔 상태에서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변증을 위해 잠시동안 비그리스도인의 세계관이 가지고 있는 일정한 전제들을 빌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기독교 세계관이 가지고 있는 전제들을 기반으로 삼아 변증하면 되는 것이지요. 사실 전제론적 변증학은 제가 잘 모르는 분야라 혹시 잘 아시는 분이 계시다면 간략하게 소개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래는 한국에 출판된 코넬리우스 반 틸 교수님의 책들입니다.




개혁신앙과 현대 사상(이승구, SFC 출판부)

조직신학 서론(이승구, 강웅산, 크리스챤 출판사)

변증학 - 코넬리우스 반틸(신국원, P&R)

개혁주의 신학 서론(이승구, CLC)

개혁주의 교육학(이경섭, P&R)




R.B. 카이퍼(R.B. Kuiper, 1886~1966년)




          네 번째로 우리는 회의실 벽에 걸린 카이퍼 교수님의 초상화 앞에 섰습니다. 카이퍼 교수님은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에서 실천 신학을 가르치셨던 분이십니다. 원래 처음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에 오셨을 때는 조직 신학을 가르치셨었는데 1930년대에 기독 개혁 교회들(Christian Reformed Churches) 아래 대회의 결정으로 칼빈 신학대학원(Calvin Theological Seminary)의 학장으로 부임하셨었지요. 하지만 경제적인 이유와 신학적인 이유로 인해 카이퍼 교수님은 두 해만에 칼빈 신학대학원 학장 직을 사임하시고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으로 돌아오셔서 실천 신학을 가르치시게 된 것이지요.


          실천 신학 교수님답게 카이퍼 교수님께서는 '교회를 위한 신학'을 강조하셨다고 합니다. 바울 사도님께서 그 분의 편지들에서 먼저 교리를 설명하시고 그 다음에 그 교리를 바탕으로 실천을 교훈하셨던 것처럼 실천 신학으로 귀결되지 않는 조직 신학은 조직 신학으로서의 소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지요. 이 분의 영향으로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은 목회학 석사 과정을 밟는 학생들로 하여금 교수님의 지도 하에 400시간동안 기독교 사역을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한국에 번역된 R.B. 카이퍼 교수님의 책들입니다.




전도 신학(박수준, 생명의말씀사)

그리스도는 누구를 위해 죽었는가(현영훈, 신호섭, 고려신학교출판부)





존 머레이(John Murray, 1898~1975년)




          다섯 번째로 우리는 회의실 벽에 걸려있는 존 머레이 교수님의 초상화 앞에 섰습니다. 존 머레이 교수님은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에서 첫 번째로 조직 신학을 가르치셨던 분입니다. 이 분은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얽힌 일화가 참 많습니다.


          머레이 교수님은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한 쪽 눈을 잃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리로 만들어진 가짜 눈을 하셨는데 때때로 학생들을 놀래키기 위해 수업 시간에 가짜 눈을 빼서 보여주셨다고 합니다. 또 이 분 수업은 점수가 짜기로 유명한 수업이였기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 이런 농담이 돌고 돌았다고 합니다. "나는 존 머레이 교수님의 어느 쪽 눈이 가짜 눈인지 알아. 자비와 긍휼로 반짝이는 눈이 바로 가짜 눈이야."


          재밌는 일화가 또 있습니다. 머레이 교수님은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에서 첫 번째로 조직 신학을 가르치셨던 분이셨을 뿐만 아니라 첫 번째로 체포된 분이시기도 합니다. 어느 잠 못 이루는 밤, 머레이 교수님께서는 잠옷을 입으신 채로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의 교정을 거닐고 계셨습니다. 산보를 마치고 다시 건물 안으로 돌아가려고 하셨는데 알고 보니까 학교 건물이 잠겨있는거에요. 그래서 머레이 교수님께서는 자고 있는 학생들이 듣기를 바라면서 고레 고레 소리 지르며 학교 문을 두들기셨다고 합니다. 야밤에 어떤 괴한이 신학교에 침입했다고 생각한 주민들은 경찰에 신고를 했고, 초라한 행색의 머레이 교수님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교수님을 체포해 구금하셨다고 합니다. 다음 날 아침 학교가 발칵 뒤집혀진건 두말하면 잔소리고요. 다행히 교수진의 해명으로 풀려나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간에 머레이 교수님은 조직 신학을 함에 있어 성경 원어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던 분입니다. 조심스럽게 성경 본문을 원어로 주해한 후에 교리를 도출해나가는 식으로 조직 신학을 해나가는 것이지요. 이 분의 영향으로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은 어느 정도 성경 원어 지식이 선행되야 조직 신학 수업을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번 방문에 팁톤(Tipton) 교수님의 기독론 수업 시간에 앉아있을 수 있었는데, 조직 신학에 있어 성경 원어 지식이 왜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였습니다. 히브리서 1장 1~4절을 헬라어로 주해하시면서 말씀으로서의 그리스도님에 대해 설명하시는데, 지금 학교에서 듣고 있는 헬라어 수업 시간에 더 집중해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아래는 한국에 출판된 존 머레이 교수님의 책들입니다.




존 머레이 조직 신학 - 합본(박문재, 크리스챤 다이제스트사) 

존 머레이의 구속(장호준, 복 있는 사람)





N.B. 스톤하우스(N.B. Stonehouse, 1902~1962년)




          여섯 번째로 우리는 회의실 벽에 걸린 N.B. 스톤하우스 교수님의 초상화 앞에 섰습니다. 스톤하우스 교수님은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에서 첫 번째로 신약학을 가르치신 분이십니다. 이 분은 구속사적 성경 해석을 대중화하는데 앞장서신 분이시기도 합니다. 이 분은 특히 신약 성경의 구약 성경 인용과 적용을 주로 연구하셨다고 하네요. 아래는 한국에 번역된 N.B. 스톤하우스 교수님의 책입니다. 




메이천의 생애와 사상(홍치모, 도서출판 그리심)




그레샴 메이천(Gresham Machen, 1881~1937년)




          마지막으로 우리는 접대실 정중앙 벽에 걸린 그레샴 메이천 교수님의 초상화 앞에 섰습니다. 메이천 교수님은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을 설립하신 분들 중 한 분이십니다. 20세기 초에 메이천 교수님은 미합중국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 in the U.S.A.) 산하 교육 기관인 프린스턴 신학대학원(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약학 교수로 재직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미합중국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 in the U.S.A.)의 총회는 1929년에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을 개편하고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작성한 어번 선언서(Auburn Affirmation)에 서명한 두 명의 목사를 교수진으로 임명하게 됩니다. 이에 개혁 신앙의 정수를 지키기 위해 메이천 교수님은 프린스턴 신학대학원 교수직에서 물러나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을 설립하게 됩니다.


          초창기 메이천 교수님은 반 틸 교수님이 없이는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을 설립하지 않겠다고 그 분의 동료들에게 선언하셨다고 합니다. 당시 반 틸 교수님은 교수가 되겠다는 생각도 없이 미시간 주에서 서너 가정이 모이는 작은 교회에서 목회를 하는데 만족하고 계셨습니다. 메이천 교수님께서는 그런 반 틸 교수님을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 교수진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스톤하우스 교수님을 보내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반 틸 교수님은 스톤하우스 교수님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청빙을 거절하셨지요. 그러자 메이천 교수님께서는 반 틸 교수님에게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에서 한 해만 가르쳐줄 것을 부탁하셨다고 합니다. 한 해가 지나고 반 틸 교수님은 은퇴하실 때까지 계속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에서 교수로 지내시게 되지요. 이렇게 메이천 교수님은 설립 초기부터 정통 개혁 신앙을 계승한 교수진을 꾸리기 위해서 부지런히 발품을 팔으셨대요.


          이외도 메이천 교수님에 대해서는 할 말이 참 많습니다. 특히 이 분이 쓰신 <Christianity and Liberalism(기독교와 자유주의)>은 꼭 읽어보아야 할 중요한 책이지요. 이번 해 첫 번째 달에 독토 모임 도서로 선정되기도 했고요. 아래는 한국에 번역된 그레샴 메이천 교수님의 책들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인가(심명석, 도서출판 대서)

신약 헬라어(조운일, 솔로몬)

기독교와 자유주의(김길성, 크리스챤 출판사)

기독교와 현대신앙(김효성, CLC)

메이천 박사 저작 선집(김길성, 총신대학교 출판부)

현대인의 자기 발견을 위한 기독교 인간관(채겸희, 나침반)





          교정 견학이 끝나고 경건회실로 향하는 저의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교회를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의 파도에도 부서지지 않는 바위같은 진리를 지키기 위해 이렇게 훌륭한 분들을 일으키셨습니다. 이 분들께서 흘리신 땀과 튀기신 침을 통해 정통 개혁 신앙을 갖춘 목회자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나게 되었던 것이겠지요.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셨던 최낙재 목사님이나 김명도 교수님도 그런 분들 중 한 분이셨던 것이고요.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은 아직도 건재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뜻'(행20:27)이라는 표어에 맞춰 감추지 않고 하나님의 모든 뜻을 전하는 이 시대의 목사들과 신학자들을 배출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님과 같은 마음을 가진 일꾼들을 말입니다.




보아라, 이제 내가 성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에서 내게 닥칠 일들을 내가 알지 못하나, 다만 성령께서 각 성읍에서 내게 증언하여 말씀하시기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고 하신다. 그러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기 위하여, 나는 나의 목숨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내가 너희 가운데 두루 다니며 그 나라를 전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 모두가 더 이상 내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을 안다. 그러므로 내가 오늘 너희에게 증언하는데, 나는 모든 피에 대하여 깨끗하니, 이는 내가 감추지 않고 하나님의 모든 뜻을 너희에게 전하였기 때문이다. 너희는 스스로와 모든 양 떼를 위하여 조심하라. 성령께서 너희를 그들 가운데 감독자로 세워 자신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게 하셨다(행 20: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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