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G 칼럼

제목4,320시간에 걸친 심장 수술 끝에2018-06-26 12:29:23
카테고리 박재원 성도
작성자


 

          인적이 없는 학교 복도에서 이리저리 청소기를 돌리다가 문득 든 생각이 있습니다. '손에 들고 있는 성경이 너무 무겁다.' 듣고 있던 설교가 싫증이 나 이어폰을 뽑아 주머니에 쑤셔 넣었습니다. 들어도 들어도 끝이 없고,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심연처럼 느껴져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머릿 속에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 앞으로 읽어야 될 책들의 무게가 제 어깨를 짓누르는듯 무겁게만 느껴졌습니다. 아니, 그보다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지킬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들이 제 목을 조여 왔습니다. 하나님께 그저 죄송한 마음 뿐이고 이런 제 자신이 싫어지기만 했습니다. '이젠 지쳤어.' 윙윙 돌아가는 청소기 소리에 긴 한숨 소리가 묻힙니다.


          "행복하지 않아." 그 주에 한 친구와 마주앉아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하나님이 낯설게만 느껴지는 나날들이였습니다. 성경을 펼쳐도 눈에 말씀이 들어오지 않고, 설교를 들어도 귀에 말씀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입을 열어 기도하려 해도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 무슨 말을 해야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제 투정을 조용히 들어주던 친구도 굳게 다문 입술을 힘겹게 움직이며 말했습니다. "나도 그래." 서로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엉킨 실타래를 쳐다보다 함께 두 손을 모으고 멀게만 느껴지는 하나님께 속마음을 드러내 보였습니다.


          물론 이제는 지난 일입니다. 짧은 지면에 그동안 있었던 일을 모두 쏟아낼 수는 없지만 작년 후반부터 하나님께서 저를 수술대 위에 눕히시고 양날 선 검보다 더 날카로운 그 분의 말씀으로 장장 4,320시간에 걸친 심장 수술을 감행하셨습니다. 그동안 제 심장은 온전히 하나님을 위해 뛰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님의 혈액이 아닌 다른 혈액을 제 몸에 공급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계속 그렇게 살 수 있을거라고 착각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저를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그토록 힘차게 뛰던 심장이 멈추고, 제 영혼은 나무토막처럼 힘 없이 쓰러졌습니다. 


          영적인 혼수 상태에 빠져있는 동안 저는 모든 소망을 잃었습니다. 하나님도, 성경도, 교회도, 설교도, 기도도, 교제도, 그 어떤 것도 모래를 씹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더이상 살아갈 이유를 잃은 것처럼 그저 숨만 쉴 뿐이였습니다. 과연 내가 나을 수 있을까 고개를 내젓기를 수십 번, 의심이 번져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상태를 벗어날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영적 침체를 극복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다시 제게 복음을 들려주셨습니다. 습관을 좇아 설교를 듣고 성경을 묵상하고 신앙 서적을 읽던 제 마음이 어느덧 낮아지고 높아지신 그리스도님을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분께서는 본래 하나님의 형상이면서도 하나님과 동등되심을 취하려 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취하여 사람들과 같이 되셨으며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신을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분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으니, 이는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있는 것들의 모든 무릎을 예수님의 이름 앞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시라 고백하게 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이 되게 하셨다 (빌 2:6~11).




          히브리서를 기록하신 분께서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말하며 믿음의 창시자이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자고 목소리를 높이십니다.




그러므로 이처럼 많은 증인들이 구름같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모든 무거운 짐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경주를 경주하자. 믿음의 창시자이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자. 그분은 자신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수치를 개의치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고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에 앉으셨다(히 12:2).




히브리서를 기록하신 분께서는 예수님께서 '자신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미 모든 것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부족한게 없으셨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 분께서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자신을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실 이유가 무엇이였을까요? 그 모든 것을 감내할 수 있을만한 가치를 가진 그 기쁨,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시던 그 분께서 바라보신 그 기쁨이 도대체 무엇이였을까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을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예언하시던 이사야 선지자님은 성령님의 감동으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할 것이니" (사 53:11). 예수님께서 십자가, 죄악 위에 쏟아지는 하나님의 진노, 아버지 하나님과 누리던 모든 친밀한 교제가 찢겨지는 그 단절을 견뎌내시면서까지 만족할만한 그것이 도대체 무엇이였던걸까요? 영광? 예수님은 이미 하나님으로서 모든 영광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삼위 하나님 간의 친밀한 교제? 예수님은 이미 삼위 하나님 안에서 완벽한 사랑을 경험하고 계셨습니다. 그 모든 것을 포기하시면서까지 종의 형체를 취하실만큼 만족스럽고 기쁜 그것이 도대체 무엇이였던 것일까요? 이사야 선지자님께서 마저 외치십니다.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할 것이니, 내 의로운 종이 그의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를 친히 짊어질 것이다 (사 53:11).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가시던 예수님의 망막에는 그 분의 신부, 교회가 아로히 새겨져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배반당하여 잡히시기 전까지도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요 17).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은 그들을 하나로 온전하게 하셔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도 내가 있는 곳에 나와 같이 있게 하시고, 세상 창조 전부터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내 영광을 그들도 보게 하소서(요 17:23~24).




예수님께서는 죽어서 악취를 풍기던 그 분의 신부를 살리려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분의 빛나는 의의 옷을 그 분의 신부에게 입히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분의 신부에게 성령님을 보증으로, 곧 약혼 반지로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먼훗날 그 분의 신부를 데려가 그 분이 계신 곳에서 같이 살도록 하실 것입니다. 그 신부는 교회입니다. 그 신부는 바로 여러분과 저입니다.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여러분을 위해 대신 죽어주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여러분 가슴 깊숙한 곳에 있는 모든 간절한 염원과 소원과 열망을 만족시켜주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 그 어떤 이의 사랑도 여러분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의 열기에 비하면 얼음장처럼 차가울 것입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예수님의 그 사랑이 깊은 잠에 빠져있던 저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님의 영광을 보면서 주님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어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이는 영이신 주님으로 말미암은 것이다(고후 3:18).




"어두움 속에 빛이 비쳐라." 하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 속에 비추셨다(고후 4:6).




바울 사도님께서는 예수님의 영광을 바라보면 바라볼 수록 주님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어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우리 복음 안에 나타난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봅시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 분이 치루셔야 했던 값비싼 댓가는 우리로 하여금 얼굴을 가리고 그 분 앞에 무릎을 꿇도록 합니다. 더이상 우리의 삶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시간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물질도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소망과 목표와 계획과 꿈과 희망과 소원과 인생도, 우리 자신도, 더이상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의 것이 되신 것처럼, 우리도 복음 안에서 완전하게 예수님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의 사랑이 얼마나 압도적으로 높고 넓고 깊은지를 깨닫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게 됩니다.




전에는 악한 행위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육신의 몸으로 화목하게 하시어, 너희를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들로 하나님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튼튼한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가 들은 복음의 소망에서 떠나지 않으면, 그렇게 될 것이다. 복음은 천하 모든 피조물에게 선포되었고,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다(골 1:21~23).




          심장 수술이 끝났지만 저는 슈퍼맨이 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제 심장은 이따금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위해 뛰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저는 제 가슴 위에 손을 올리고 복음의 소망을 이야기합니다. 바울 사도님의 말씀처럼 복음은 모든 믿는 자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롬 1:16). 복음은 불신자를 죽음으로부터 깨우고, 복음은 신자를 생명으로 굳게 세웁니다. 이 기쁜 소식을 전하기를 원합니다. 저 박재원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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