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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선의의 거짓말이란 있을까요??2018-06-20 12:26:44
작성자

순례자님 질문)


안녕하세요^^ 카페 활동을 자주 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이들과 성경 공부를 하다 질문을 받았는데 선의의 거짓말이란


있을까요? 많은 지식을 보유하신 여러 카페 관계자 분들 


답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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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드립니다.

 

앞선 분의 질문&답변 댓글에서 언급한 것 같이 오늘 밤이 아니라면 - 더이상 미루었다가는 - 한동안 답변을 드리지 못할 것 같아서 생각이 흩어지기 전에 글로 옮깁니다.

 

님께서는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 ‘선의의 거짓말’이 가능한가를 궁금해 하셨습니다.

혹자는 아이들의 질문이라서 쉽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리 간단한 물음이 아닙니다. 답변을 하기 전에 약간의 호기심이 발동하였습니다. 일반인(자연인)들은 이 주제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어서 Da**, Na*** 검색창에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키워드를 쳐 보았습니다. 예상보다 찬․반 논쟁이 뜨겁더군요. 내용을 열어보지는 않았습니다만, 기독교 신앙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큰 관심사인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기독교 신앙을 가진 성도라면 이 주제에 대해서 어떤 견해를 갖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그런데 기독교 신앙 안에서도 두 갈래 주장이 있습니다.

 

우선 ‘선의의 거짓말’을 포함하여 어떤 거짓말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속성상 오직 진실하며 참되시며 의로우신 분이시며(시 11:7; 계 16:7), 예수님은 진리로 충만하실 뿐 아니라 진리 자체이시며(요 1:14; 15:6),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온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요 14:17). 즉 삼위 하나님은 오직 진실만을 말씀하시며 진실대로 행하십니다. 반면에 사탄에게는 진리가 그 속에 없을 뿐 아니라 그는 거짓의 아비입니다(요 8:44). 또한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것은 거짓의 자녀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행 13:10). 이러한 성경의 교훈을 따라서 거짓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의 실체이므로 기독교 신앙에서는 어떤 이유에서든지 거짓말을 허용할 수 없다는 주장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9계명의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출 20:16)는 교훈을 보태면 더욱 확고한 주장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 안에는 이와 조금 다른 주장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속성과 사탄의 속성에 관한 이해에 있어서 위와 똑같은 입장을 견지하면서, 한편으로 성경은 모든 형태의 거짓(속임)을 다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즉, 성경은 선별적인 방식으로 어떤 거짓(속임)에 대해서는 정당성을 인정하는 부분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을 ‘선의의 거짓말’ 혹은 ‘하얀 거짓말’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성경에는 매우 드문 경우이기는 하지만 특별한 상황하에서 거짓이 용인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몇 가지 근거를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율법에 대한 해석과 적용의 형평성 차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살인하지 말라’는 6계명은 원칙적으로 살인 행위의 비합법성과 부당함을 말해 줍니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형태의 살인을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교훈은 아닙니다. 자기 방어(출 22:2), 사형(출 21:12-14), (방어적) 전쟁(신 20)에서의 살인 행위는 율법에서도 그 정당성을 인정합니다. 이러한 율법 이해는 9계명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교훈이 모든 형태의 거짓에 대하여 예외없이 동일한 해석과 적용을 갖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성경에서 허용하고 있는 거짓(속임)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지요. 예루살렘의 멸망 직전에 시드기야 왕은 자신의 신하들을 반발이 두려운 나머지 예레미야에게 거짓말로 그들을 속여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렘 28:24-28). 예레미야는 그것이 사실이 아닌 줄 알면서도 왕의 부탁대로 그들에게 고합니다. 그 덕분에 예레미야는 위기 속에서 목숨을 건지게 됩니다. 예레미야는 왕의 말을 전달하였지만, 그것은 신하들을 속이기 위해 꾸며낸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레미야의 행동을 꾸짖지 아니하십니다. 결과적으로 그의 행동은 위기에서 벗어나는 지혜로운 선택이 되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다윗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울을 피해 도망자의 길로 나섰던 다윗은 가드 왕 아기스를 만났을 때, 그를 심히 두려워한 나머지 미친 사람 흉내를 내었습니다(삼상 21:10-13). 거짓된 말과 행동으로 아기스와 부하들을 속이고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일도 명백한 거짓 행동이었음에도 하나님은 그의 행동을 비난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에서 언급된 일화 중에서 가장 훌륭한 선의의 거짓말 예를 든다면, 단연 애굽 왕 바로의 명령을 거부하고 히브리 남자 아기들을 살려 준 산파들의 행동을 말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바로 왕이 산파들을 불어 이유를 캐묻자 그녀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이 히브리인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답합니다(출 1:15-21). 산파들의 거짓말과 거짓된 행동으로 인해 히브리 남자 아이들이 생명을 건졌습니다. 그중에는 모세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그녀들의 거짓(속임)이 없었다면, 히브리 남자 아이들도 모세도 생명을 보존받기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한 가지 보기 좋은 사례를 더 들어보겠습니다. 이번에도 구약의 여인입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에 보낸 이스라엘 정탐꾼들을 살려 준 라합입니다. 정탐꾼들을 쫓아 자신의 집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에둘러 거짓말을 한 탓에 그들은 무사히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결국 여리고 성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여호수아는 라합이 보여준 친절과 용기에 감사하여 여리고 성을 정복할 때 그녀와 그의 가족을 모두 살려주었습니다. 비록 사실상 거짓말을 한 것이지만, 그녀의 기개에 찬 선의의 거짓(속임)이 없었다면 아마도 이스라엘이 여리고 성를 그렇게 쉽게 정복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 좀 더 현대적이며 현실적인 두 가지 예를 전해 드릴까 합니다. 성경에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지만 앞서 말씀드린 원리 속에서 성경으로부터 허용가능한 거짓(속임)의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악하고 부당하며 폭력적이며 위급한 상황(전쟁, 강도, 강간 등)에서 생명의 위태로움을 느낄 때에, 과연 선의의 거짓말은 전혀 할 수 없는 것일까요? 적에게 치명적인 약점을 알려 주거나 친구나 동지를 위태롭게 할만한 정보를 곧이 곧대로 전하는 것만이 선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상황 논리로 따질 수 없는 매우 급박한 위기 에 처한 사람에게 뱀같이 지혜로울 것(마 16:10)을 기대하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물론 이러한 행동은 믿음과 신앙 고백에 심각하게 위배되어서는 안 되겠지요. 좀 다른 내용이지만 문화적 관점에서 보편적으로 거짓(속임)이 허용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생일 축하와 같은 서프라이즈 이벤트나 운동에서 속이는 행동(패이크)이나 반전있는 말이나 행동으로 웃음을 유발할 때 이용되는 거짓(속임)에 관해서 사실상 거짓이기 때문에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물론 성도는 이런 일에 있어서도 너무 자극적이거나 과도한 태도는 지양해야 합니다.

 

이제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성경은 분명 거짓말에 대하여 경계하며 비난합니다.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은 성도라면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매우 드문 경우이지만 예외적 상황에서 허용되거나 관용할 수 있는 거짓(속임)의 양태가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하여 이 예외적 상황은 누구에게도 죄를 위한 거짓(속임)이 용인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직 말씀에 합당한대로 진실과 진리를 말하고 행하는 것이야말로 성도의 자태이며 본분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김병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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