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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신앙의 확신과 구원의 확신을 다르게 볼수 있나요2018-06-20 14:31:08
작성자

원주민님 질문)


안산 회복의 교회 전상범 목사님의 신앙의 확신이란 글을 보고

신앙의 확신을 구원의 확신이란 말과 비슷하거나 같다는 느낌이 있어서

확실히 구분하여 이해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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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드립니다.

우선 구원과 신앙의 개념과 범주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전자가 후자보다 포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구원론에서 신앙이 구원의 서정(ordo salutis)의 한 요소로 다루어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구원의 서정이란 일련의 연속적인 단계나 획일적인 순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적이고 상호적이며 지속적인 구원의 다양한 국면들이 하나의 단일한 경험으로서 이해될 수 있기에 때로는 구원의 확신과 신앙의 확신을 교호적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신앙의 확신이라고 해서 반드시 구원의 확신이 되리라고 보장하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신앙이란 표현은 다의적(多義的)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신앙이 있는가 하면, 종교적인 의미에서의 신앙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전자는 여기에서 다루는 주제와 무관한 것이므로 차치하더라도, 후자의 경우에도 항상 동일한 의미로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후자와 관련하여 개혁신학에서는 전통적으로 네 가지 종류의 신앙 개념을 말합니다. (1)역사적 신앙: 진리를 순전히 지성으로 이해하는 신앙 (2)이적적 신앙: 이적과 같은 초자연적 현상에 의해 확신하는 신앙 (3)일시적 신앙: 마음 속에 양심의 자극이나 감정적인 감동이 일어남으로써 받아들이는 신앙 (4)구원적 신앙: 성령에 의한 중생과 말씀(복음)에 의한 확신으로서 심령 안에 일어나는 신앙. 이것은 우리가 받아들이는 신앙으로서 ‘구원하는 신앙’ 혹은 ‘구원의 신앙’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러한 설명은 종교적 의미에서의 신앙을 말할 때, 무턱대고 ‘신앙=구원’이라는 도식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신앙의 개념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함께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는 구원적 신앙만이 참된 신앙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신앙의 확신과 구원의 확신이라는 표현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른 개념에 대한 이해 없이 무조건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또다른 오해와 억측을 낳을 수 있습니다. 특히나 구원의 확신을 사람 편에서 갖는 신앙의 확신의 여부나 정도(세기)에 따라 판정하려 할 때, 심각한 혼동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신앙과 구원의 확신을 말할 때에는 두 가지 종류의 확신으로 구분합니다. (1)참된 확신과 거짓 확신, (2)객관적 확신과 주관적 확신이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8장 1항은 이 확신의 전거를 다름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위선자가 그밖의 중생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은총과 구원의 상태에 있는 줄로 알고서 거짓된 소망과 육적인 억측으로 헛되게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있으나, 그들이 가지고 있는 소망은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주 예수를 참으로 믿고, 신실한 마음으로 그를 사랑하며, 그 앞에서 모든 선한 양심을 따라서 힘써 행하는 그러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그들이 은혜의 상태에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영광의 소망 중에서 즐거워할 수 있다. 이 소망은 결코 그들을 부끄럽게 하지 않을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위선자와 중생하지 못한 사람들도 잘못된 소망과 육적인 억측으로 자신들이 하나님의 호의를 받고 있는 구원의 상태에 명백히 머물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주님의 오시는 날에,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마 7:22,23)고 자랑하였으나 결국 주님으로부터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책망들었던 사람들과 같은 이들이 현실 신앙 세계에는 얼마든지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거짓된 확신 가운데 있다는 것은 결국 그들의 소유한 믿음 자체가 참된 믿음이 아님을 방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확신의 확실성을 판가름하는 것은 사람이 가진 확신의 정도나 강도가 아니라, 어떤 믿음의 상태에서 연유한 확신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객관적인 구원의 약속인 말씀(진리)에 기초하여 있어야 하며,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보증과 증거 위에 있어야 합니다. 즉 성령과 말씀의 효과적인 역사 없이는 바른 구원과 믿음의 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령께서 믿음을 일으키는 수단으로 삼으시는 통상적인 은혜의 방편들을 올바르게 활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그 방편들을 통해 성도의 택하심과 부르심을 더욱 확고히 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령 안에서 말씀을 청종하며, 말씀에 순종하며, 말씀으로 평화와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사는 것은 성도로서이 필연적인 의무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의무를 정당하게 행하는 성도는 믿음의 확신이 더 굳세어질 뿐만 아니라 구원에 대한 더 큰 확신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믿음과 구원의 확신에 관한 한 결코 자만하거나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은 구원에 있어서 필수적이지만, 확신은 절대 요건으로서 항상 구비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8장 4항의 가르침에 신중히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참 신자일지라도 그들의 구원의 확신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흔들리며, 약해지며, 일시 중단될 수 있는데, 이 같은 일들은 그 확신을 보존하는 것을 게을리 하거나, 양심에 상처를 주고 성령을 근심케 하는 어떤 특별한 죄에 빠지거나 어떤 갑작스럽거나 강렬한 시험에 의해서, 또는 하나님께서 그의 얼굴의 빛을 숨기시어 그를 경외하는 자일지라도 흑암 중에 행하며 전혀 빛이 없게 되게 하심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씨와 믿음의 생활이나 그리스도와 형제들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의무에 대한 신실한 마음과 양심이 결코 전적으로 그들에게 결여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 확신이 적당한 때에 소생하게 되는 것이며, 또한 그간의 심한 절망에서도 이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그들이 버티어 내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믿음과 구원의 확신이 흔들리고 약해지며 중단되는 원인을 하나님의 깊으신 섭리와 인간의 죄와 연약에서 찾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자인 성도가 경험할 수 있는 확신의 부족이나 결여는 결코 구원에 대한 완전한 절망과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다시 회복될 것입니다. 구원의 근원성이 우리의 주관적인 확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삼위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과 그분의 선하고 신실하신 속성에 기초해 있으므로 우리의 약함에도 불구하고 결코 사라지거나 취소되지 않는다는 것을 굳게 신뢰하며 더욱 진실하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김병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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