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G 탐방과 후기

제목제25회 정암 신학강좌를 다녀와서...2018-06-28 11: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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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회 정암신학강좌를 다녀와서...



▶ 제25회 정암 신학강좌 포스터 & 논문, 수상집




어느덧 정암(박윤선 목사) 신학강좌의 연수가 사반세기가 흘렀다. 올해로 25주년을 맞는 정암신학강좌가 지난 11월 5일, 화평교회당에서 열렸다. 본 행사는 오늘의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와 합신 교단의 정신적 지주(支柱)인 정암의 신학과 삶을 기리기 위한 목적에서 매년 개최하는 일종의 학술 모임(대회)이다. 정암은 한국 교회 역사상 가장 괄목할만한 족적을 남긴 개혁주의 신학자이다. 특히 한국 정통 칼빈주의 신학과 교회에 끼친 그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논찬자로 참여한 이상규 교수(고신대학교 역사신학)의 표현을 빌리면, 정암은 만주 봉천신학교와 고신대학교와 총신대학교와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 이르기까지 무려 50여년에 걸친 교수사역을 통해 한국에 진정한 의미의 개혁주의 신학을 소개하고 발전시켜 온 교회의 교사(doctor ecclesiae)였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그의 인생 노정의 종착점이 되었던 합신과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는 정암이 남긴 유산을 한꺼번에 받는 최대의 수혜자가 되었다. 그러한 수혜를 극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정암 신학강좌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인지 이 행사에 대한 합신 동문들의 관심과 애정은 남다르다. 특히 살아생전 교정에서 정암으로부터 직접 사사받은 목사들의 자부심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정암의 탁월함과 위상을 고려해 볼 때,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약간 우려되는 점도 없지 않다. 정암과의 경험에 집착하는 이들의 의식 속에는 이런 삼단 논법이 자리잡혀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정암은 철저한 개혁주의자이다. 나는 그러한 정암에게서 배웠다. 고로, 나역시도 개혁주의자이다”라는.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정언명제처럼 들리는 이 논법 속에는 예기치 않은 논리적 비약과 오류가 감지된다. 정암이 가리키는 달은 생각지 못하고 그의 손가락을 보고서 안다고 말하는 논리모순과 같은 일들 말이다. 




그러기에 정암 신학강좌의 명분과 목적을 되새기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 하겠다. 외적인 개연성을 근거로 그의 실질적인 적통과 계승자가 누구인가를 따지는 것은 별 의미 없는 일이다. 선견자적인 그의 신학과 삶이 오늘의 한국 교회에 어떤 의미를 던지고 있는가를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하여 그의 장점을 계승하는 동시에 그의 부족한 점을 채워가야 한다. 나는 그것이 정암이 바라던 바라고 확신한다. 이 부분에서 합신은 정암에게서 받은 사랑의 빚을 어느 정도 갚고자 애를 써왔다. 그러한 노력이 정암 신학강좌를 통해 증명되고 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나역시 합신인의 한 사람으로서 자부심을 가지며, 매년 이런 기회를 제공하는 행사 관계자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하지만 다소 송구한 말이지만, 이 행사에 참여할 때마다 약간의 피로감과 실망감을 느끼곤 한다. 압축해서 말하자면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첫째, 정암의 가르침이 계속적으로 강조됨에도 불구하고, 왜 현실 교단과 교회는 여전히 미개혁의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는가 하는 점이다. 정암의 가르침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표준문서로 하는 정통 장로(개혁)교회에 확고히 서 있다.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직전에 저술한 책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이라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책을 출판한 영음사의 설명에 따르면, 정암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1개월 전까지 약 7개월에 걸쳐 이 신앙고백을 읽기 쉽도록 번역하였다. 그리고 그 번역은 합신의 헌법에 고스란히 수록되어 있다. 




그뿐이 아니다. 정암은 생전에 헌법주석을 집필하기도 하였다. 주로 정치와 예배모범에 집중한 시도였지만 그는 이 주석을 통하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정신에 충실한 정치와 예배를 구현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를 추앙하는 현실 교회의 형편은 사뭇 다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고백한다고 말도 하고, 선서도 하지만 그 의미를 꼼꼼히 가르치고 배우는 교회를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목사와 장로도 넘쳐난다. 감히 단언컨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정암의 신학 사상을 이끈 강력한 동력이었으며,한국 교회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표지였다.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는 거리가 너무 먼 그대들조차 정암과 더불어 자신들을 개혁주의자라고 말하는 현실은 나에겐 블랙코미디만큼이나 씁쓸함을 자아내게 한다.




둘째, 정암 신학강좌의 목적에 대하여 공감함에도 불구하고, 왜 항상 ‘그에게 속한’ 것만 찾으려 할 뿐, ‘그를 넘어서는’ 시도가 보이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이런 질문 자체를 교만하고 불손하게 여길 있을지 모르겠다. 정암을 따르기도 힘든데, 어떻게 정암을 뛰어 넘을 생각을 하는가라고 말이다. 물론 내 개인이 그러할 수 있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럴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정암 신학강좌를 대할 때마다 정암을 잇는 신학적 발전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정암 박윤선과 나의 목회’라는 제하를 둔 이번 행사에서도 대부분 정암에 관한 이야기만 나누었다. 




매년 주제는 다르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대동소이하다. 발제자들의 의도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용 대부분이 정암의 탁월성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이번에 처음 시도된 수상문에 당선된 어느 목사님은 ‘(정암)목사님께서는 선지자이셨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하였다. 좀 격하게 말하자면, 용비어천가를 방불하는 글이었다. 발표된 논문 중에는 새로운 시각과 접근이 돋보이는 것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정암에 속한 것들을 찾아내어 그를 드높이고자(?) 하는 목적에 충실한 논문들이었다. 




정암이 평생 그토록 따르길 원했던 칼빈은 자신의 이름으로 된 묘비를 만들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지 않았는가? 누구나 인정하는 위대한 신학자요, 목회자요, 개혁자인 그조차 죽음조차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이유가 되지 않기를 바란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나는 칼빈의 심장을 가장 닮은 개혁주의자로 정암을 택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정암은 이유불문하고 남이 자신을 높이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이다. 믿음의 선인과 선배를 정중하게 높이고 존경하는 것은 매우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정암 신학강좌때마다 어김없이 정암을 위해 쏟아지는 예찬들은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바람이 있다면(이것이 더 강조하고 싶은 바이다), 정암의 신학에 대한 좀 더 객관적인 접근과 이해, 그리고 그의 신학을 넘어서는 제안을 들을 수 있는 신학 강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정암이 존중하는 화란 개혁교회에는 폴레믹스(논쟁)라라는 전통이 있다. 좀 더 바람직하고 견고한 개혁 신학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누구를 향해서도 폴레믹스는 열려져 있어야 한다. 이것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회의와 도르트 총회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개혁신학에서는 매우 유구한 전통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정암 신학강좌에서는 이 전통의 유익과 가능성을 발견하기 어렵다. 




누구나 그렇듯이 정암도 이룬 일도 있고, 못 이룬 일도 있다. 겸허하고 존중하는 자세로 그가 이룬 업적과 한계에 대해 폴레믹스할 수 있어야 한다. 한편으로 기운 태도는 전체의식을 강화시킬 수 있을지언정, 공정하고 객관적인 판단을 갖게 하는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극단으로 치우치면 폐쇄적인 '우리만의 잔치'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역사적인 개혁신앙이라는 테두리안에서 정암에 대하여 논쟁할 수 있는 배려와 자유를 좀 더 느낄 수는 신학강좌가 되기를 바란다. 정암을 추억하고 그 안에 머무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그가 말하고자 했고 지향하고자 했던, 그러나 그가 이루지 못한 가장 좋은 개혁주의로 힘써 나아가는 것이다. 




불현 듯 이런 생각이 스친다. 만약 정암이 살아계시다면 후배들에게 정녕 바라실 일이 아니었겠는가... 그럼에도 정암 신학강좌는 앞으로 계속될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또한 나의 의견과 달리하는 이들에게 상처나 상심을 줄 의도나 소모적인 논쟁을 야기하고픈 생각은 추호도 없음을 밝힌다. 



주나그네


2013.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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