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G 탐방과 후기

제목개혁교회 연합 사경회를 다녀와서...2018-06-28 11:2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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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가깝게 지내는 김준범 목사님의 연락 덕분에 <개혁교회연합사경회>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전해 듣기로는 우여곡절(?) 가운데 내한한 미국 그린빌 신학교의 총장인 조셉 파이퍼(Joseph A. Pipa) 목사님이 주강사로 말씀을 전해 주시기로 하셨다더군요. 지난 주일(5월 11일) 오후부터 4일간 양의문교회당에서 사경회가 진행된다고 하는데, 주일에는 섬기는 교회의 예정된 사역이 있어서 참석하지 못하였습니다. 




조셉 파이퍼 목사님은 두 해 전에 <개혁주의설교연구원> 여름 세미나에서 만나뵌 적이 있습니다. 그때 4일간 '성령과 설교사역'이라는 주제로 파이퍼 목사님으로부터 설교를 포함해서 총 12번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시종일관 여유로움과 부드러움을 잃지 않으면서도 핵심을 간파한 간명하면서도 깊이 있는 설명은 듣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하였습니다. 우리나라 개혁주의 신학자에게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새로운 신학자의 전형을 보았다고 할까요? 한 십 년 만 젊었다면 봇짐이라도 싸서 그린빌 신학교에 공부하러 가고 싶다는 충동감(?)에 사로 잡혔을 것 같다는 공상에 웃음이 나기도 하였지요. 파이퍼 목사님과의 첫 만남에 관한 후기는 http://www.sdgfaith.com/index.php?mid=visiting&page=2&document_srl=78915 에 담겨 있습니다. 관심있는 분은 클릭해 보세요.




▶ 양의문교회 뒷 편 숲길에 오르다 뉘엿뉘엿지는 석양을 바라보다.




방과후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과 서둘러 저녁 식사를 하고는 양의문교회로 향했습니다. 월요일이라 그런지 가는 길이 독토모임이 있는 토요일보다 훨씬 여유로왔습니다. 예상보다 너무 일찍 교회당에 도착하였습니다. 산책도 하고 소화도 시킬 겸, 욕심을 내어 양의문 교회 뒷편에 있는 사직동 숲속 언덕길을 올랐습니다. 평소 한번 걷고 싶었던 길이었는데, 기회가 이때다 하고 등산복대신 양복을 입었지만 개의치 않고 숲속길을 따라 올라갔습니다. 산성을 연상시키는 담벼락과 적당한 경사도를 유지한 채 잘 조성된 숲속 길을 따라 오르다 보니, 어느덧 뉘엿뉘엿지는 아름다운 석양과 숲속을 진동하는 아카시아 꽃내음이 나를 반기더군요. 이래서 사람들이 산을 찾는가 보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대한민국 수도 중심부에 이렇게 좋은 산책로가 있었다니... 무슨 대단한 발견을 한 것마냥 신나고 즐거웠습니다. 양복 차림의 중년 남성이 홀로 숲속 길에서 너무 좋아라 하는 모습이 좀 이상해 보였든지 숲길을 지나치는 분들이 한번씩 훑어보고 가시더군요. ㅎㅎ 꼭 한번쯤은 아이들과 함께 이 길을 걸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는 교회당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야기가 숲길과 함께 샛길로 빠졌군요. 본론으로 돌아와서 다시 사경회 이야기로 이어갈까 합니다. 시간에 맞춰 예배당에 들어 서니 평소 안면이 있는 목사님들과 성도님들이 눈에 띄더군요. 늘 제 자리에 계신 송용조 목사님(양의문 교회 원로 목사)께 인사를 드렸더니 무척 반가워하셨습니다. 일전에 인터뷰를 나눈 후로 노(老) 목사님을 뵙는 것이 많이 편해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서창원 목사님, 강문진 목사님, 김준범 목사님, 서문강 목사님 등 <개혁주의설교연구원>을 이끄는 목사님들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러고보니, <개혁주의설교연구원>에서 이번 연합사경회를 주관한 듯 보였습니다. 그외에 각 교회에 속한 성도님들과 관계있는 신학생들이 예배당을 가득 채웠습니다. 개혁신앙을 도모하는 교회들이 연합사경회로 함께 모여서 같은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참 보기 좋은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보존하고 계승할 가치가 충분한 좋은 교회 전통입니다. 




이윽고 서문강 목사님의 사회로 둘째날 사경회 집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집회 중에 세 곡의 시편찬송을 함께 불렀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사용하는 시편송이라 그런지 더 친근하고 은혜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파이퍼 목사님도 저와 같은 생각이었던지 온 성도가 시편송을 함께 찬송하는 모습을 높이 평가하시더군요. 





 


▶ 개혁교회연합사경회 순서지 




이 날 파이퍼 목사님는 욥 1:6-2:10의 본문을 가지고 '고난의 용광로'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였습니다. 경건한 자의 초상으로서의 욥이 직접 경험한 고난과 시련이 우리 시대의 성도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관해 강론하셨지요. 워낙에 잘 알려진 내용이라 오히려 쉽게 간과할 수 있는 내용속에서 금과옥조같은 영적 교훈을 뽑아내어 설파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파이퍼 목사님의 내공(?)을 느낄 수 있는 설교였습니다. 쉽지만 은혜로운 설교였습니다. 파이퍼 목사님의 의중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근에 온 국민이 큰 절망과 비탄 속에 빠져 있는 상황과 절묘하게 오버랩을 이루면서 듣는 이로 하여금 더할 수 없는 위로와 용기를 얻게 하는 설교였습니다. 개인적으로 크고 작은 일로  인해 고난과 시련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성도가 있다면 함께 나누고 싶은 설교였습니다. 




고난과 시련을 겪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도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어쩌면 성도이기에 반드시 겪어야 하는 필연적인 고난과 시련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고난과 시련에는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가 있습니다. 사실 아무리 큰 고난을 당한다 할지라도 욥이 당한 고난의 정도와 비교할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욥은 성도들이 당하는 모든 형태의 고난을 가장 압축적으로서 전해 주고 있는 고난받는 성도의 초상이라고 할만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난 앞에서는 욥의 고난마저도 부끄러워질 뿐입니다. 가장 완전하고 의로우신 그리스도는 가장 역하고 괴로운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만 하는 가장 큰 고난을 위해 직접 고난의 용광로 속으로 뛰어 들어가셔서 영원한 고난으로부터 우리를 구해 내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 가운데 우리에게 허락된 고난은 영원한 고난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영원한 축복에 이르게 하는 과정인 것입니다. 특히나 성도에게 허용된 믿음의 시련은 하나님 나라의 완전한 극치에 도달하기까지 반드시 요구되는 인내와 소망을 배양하도록 예비된 하나님의 특훈(특별한 훈련)입니다. 




그런데 가끔 우리는 하나님의 특훈을 오해하여 그것으로 오히려 하나님을 참소하고 비방하는 소재로 삼으려는 유혹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사단과 욥의 아내가 욥에게 행했던 것처럼 말이지요. 또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단과 욥의 아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런 위치에서 고난과 시련을 당하는 누군가의 삶을 쉽게 판단하고 정죄하고자 할 때가 있습니다. 욥의 아내는 고난 당하는 성도의 삶을 영적으로 바라보지 않는, 즉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적 관점에서 성도의 고난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모든 경건치 않는 자들의 초상입니다. 파이퍼 목사님은 설교를 통하여 이 부분을 잘 해명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가리켜,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사 45: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늘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를 위해 빛과 평안만을 지으신 분이 되어 달라고 요구하기 십상입니다. 어두움과 환난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지 않는 영역인 양 자신의 생각과 현실에서 몰아내고자 애씁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에 대해 너무 일방적이고 편협한 처사입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참담한 고통 중에 있을 때, 참다 못한 아내가 '이래도 당신은 여전히 신실함을 지킬 것입니까?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서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라고 발악할 때, 욥이 그의 아내에게 위로하며 던진 고백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욥 2:10)고 대답하며, 이 모든 일에 있어서 입술로나 행동으로 범죄하지 아니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자녀에게 복을 주신 분이라면, 어떤 이유에서 재앙도 허락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빛도 짓고 어둠도 지으신 창조주이시며, 평안도 주시며 환난도 다스리시는 주권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에게 허락하시는 어둠과 환난은 결코 완전한 불행으로 이끌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것은 자녀로 하여금 시편 기자가 그리하였던 것처럼 '고난 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시 119:71)는 고백의 의미를 깨닫게 하시며, 종국적으로 모든 위로와 소망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만 있음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주신 은혜를 곱씹으면서 예배당을 나왔습니다. 차에 오르기 전에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어두움이 짙은 밤하늘을 사이로 보이는 교회당 십자가가 그날따라 참 유난히 밝은 빛을 내며 내 마음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불현듯 신약 성경의 한 구절이 뇌리를 스쳐지나갔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벧전 4:16).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당하는 고난을 부끄러워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마십시다. 어떠한 고난이라도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이라면 우리의 자랑과 기쁨으로 삼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설교 중인 조셉 파이퍼 목사님과 통역하는 김준범 목사님 



주나그네


2014.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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