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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한국개혁주의연대 제1회 학술대회 후기_12018-06-28 11:4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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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개혁주의연대 제1회 학술대회 후기_1

-주제: 한국장로교회의 성찬의 회복

-일시: 2014년 11월 17일(월)

-장소: 총신대학교 사당 캠퍼스 종합관




어제 오후에 총신대 종합관에서 ‘한국개혁주의연대(Reformed Alliance in Korea)’가 주최하는 학술대회에 참석하였다. ‘한국개혁주의연대’? 들어 보니, 작년에 결성되었다고 하는데 내게는 생소한 단체이다. 그런들 어떠하리. 내용이 좋고 교회를 위한 일이라면 어디인들 못 갈쏘냐!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참석할 수 없는 충분한(?) 여건이었음에도 일부러 욕심을 내었던 이유는 이 단체에 대한 호기심이나 어떤 인간관계 때문이 아니다. 순전히 ‘한국장로교회의 성찬의 회복’이라는 멋진(!) 타이틀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석하고자한 의지를 불태운 또 한가지 이유는 성찬에 대해 로버트 레담 교수의 강연이 예고되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로버트 레담 교수에 대해 합동신학대학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는 이승구 교수의 평을 빌리면 레담은 칼빈과 후크마로 이어지는 개혁신학의 연속성을 잘 계승하고 있을 뿐 아니라, 최근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대한 좋은 연구서를 낸 바 있는 개혁파 정통주의 입장을 잘 대변하는 귀한 개혁파 신학자이다. 이 연구서는 최근에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역사: 웨스트민스터 총회」라는 제목으로 우리말로 번역 출간되었다. 레담 교수는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와 리폼드 신학교(Reformed Theological Seminary)에서 다년간 교수 생활과 17년간의 장로교회 목회 경험을 거쳐 현재는 영국 웨일스복음주의신학교(Wales Evangelical School of Theology)에서 주임교수로 조직신학과 역사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이 정도의 레벨(?)급 강사가 직접 고국을 방문하여, 그것도 내가 가장 관심있어 하는 분야에 대해 강연한다는데 몸이 좀 덜 회복되었다고 침상에서 어기적거릴 수 있겠는가 말이다. 본 학술대회 사회를 맡은 안인섭 교수(총신대, 역사신학)는 레담 교수를 특히 성찬 분야에 있어서 세계적인 석학이라고 소개하였다. 나의 기대감을 한껏 고조시키기에 부족함 없는 묘사였다. 하지만 너무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 했던가. 레담 교수의 강연은 고작 한 타임으로 제한되었다. 통역과 질의 응답하는 시간을 뺀다면 강단에서 그가 말한 시간은 채 30분도 안 되는 것 같았다. 




첫 번째 학술대회에서 나름 의미와 성과를 내보자는 주최측의 숙고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바쁜 일정 중에 고국을 찾아 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신학자에 대해 과연 최선의 예우인가를 속으로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그가 맡은 짧은 강연 이후에 우리말로 다분히 길고 지루하게 진행된 순서 동안 한켠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어야 하는 자신의 모습을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같은 신세라고 한탄하지 않을까 하여 되레 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사전에 주최측에서 그에게 정중하게 양해를 구하였기를 바랄뿐이다.




사실 본 단체 회장을 맡고 있는 박형용 교수가 환영사에서 레담 교수를 언급할 때만해도 주강사로서 그의 활약을 십분 기대할 수밖에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용두사미 학술대회가 된 것 같아 아쉽다. 물론 그렇다고 다른 순서들이 무의했다는 말은 아니다. 이환봉 교수(고신대) ‘한국장로교회의 성찬에 대한 이해와 실천에 대한 설문조사 보고’에 이어 개혁주의 성찬 예식문에 따라 진행된 실제 성찬은 기존의 생동감이 결여된 학술대회와는 차별되는 좋은 아이디어였다. 그럼에도 레담 교수을 초청한 것이 금번 학술대회의 최고의 선택이었다면, 그에게 발언하고 답변할 기회를 충분히 허용하지 않은 것은 최대의 패착이었다.




레탐 교수는 ‘주의 만찬에 대한 찰스 하지와 존 네빈 사이의 논쟁’이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찰스 하지(Charles Hodge)와 존 네빈(John W. Nevin) 사이에 있었던 성찬 논쟁에 대해 소개하는 글이다. 논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짧으나 소고(小考)라고 하기에는 다소 무거운 내용을 다룬 글이었다. 하지만 짧은 강연 중에도 중요한 생각 거리들을 많이 남겼다. 한국 장로교회에서의 진정한 성찬 회복을 위해 심사숙고해보아야 할 진중한 신학 주제들을 던졌다. 먼저 간단하게나마 강연을 통해 제시된 레담 교수의 중요 견해를 소개하고, 다음으로 나의 질문과 각오를 언급하는 것으로 본 후기를 갈음하고자 한다.




<레담 교수의 해설과 견해>

1. 네빈은 장로교도로서 프린스턴에서 아키발드 알렉산더(A. Alexander)와 찰스 하지 밑에서 공부하면서 하지가 독일 유학 중에 있을 때, 그의 자리를 대신 맡기도 하였다. 

2. 네빈은 독일 낭만주의와 헤겔 철학과 독일 교회사가 요안 네안더(Johann Neander)의 영향을 받았다. 

3. 네빈은 펠라기우스주의와 부흥주의를 맹렬히 공격하였으며, 성경적 권위를 반대하고 역사적 개혁교회의 신조와 교육을 평가절하하는 개인주의적 경향을 비난하였다.

4. 네빈은 성찬을 개혁주의 교리의 핵심으로 보았다.

5. 네빈은 성찬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실재적(영적) 임재를 강조하였다. 

6. 네빈은 고전적 개혁주의의 성찬과 18세기 이후의 청교도적 성찬을 구분하며, 근대 청교도 성찬은 이전의 개혁주의 성찬의 기준점으로부터 이탈한 것으로 본다. 

7. 그런 점에서 네빈은 조나단 에드워즈를 비롯하여 많은 청교도주의자들이 (성찬에 관한) 개혁주의 교리를 버렸다고 판단한다.

8. 고전적 개혁주의의 관점은 성례를 신비로 간주하나 근대 청교도주의에서는 지적으로 판단하며, 전자는 성령의 객관적 능력에 의해 그리스도의 실체가 전달된다고 하나 후자는 하나님의 축복을 조건으로 하는 언약과 인간적 의무를 강조한다. 또한 전자는 성찬에서 신자가 실제적으로 임재하는 그리스도의 인격에의 실제적 참여를 수반하나, 근대 청교도주의는 도덕적 연합과 묵상을 강조한다. 

9. 네빈의 책 「신비로운 임재」는 칼빈을 위시한 전통적인 개혁주의자들의 성찬론을 소개한 책이다.

10. 윌리엄 커냉햄(William Cunnigham)과 로버트 댑비(Robert Dabney)를 굉장한 합리주의자인 동시에 네빈의 대적자들이며, 성찬에 대해 칼빈의 견해를 공격하는 자들이다.

11. 네빈의 최대의 적수인 하지는 스코틀랜드 상식 실재주의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어서 성경의 권위를 드러내는 일에 있어서는 탁월하였으나 개혁주의 교회의 성숙한 (교리적) 가르침에 대해 무시 혹은 간과하였다.

12. 하지는 성찬에 관해 칼빈보다는 쯔빙글리와 취리히 신학을 지지하였다.

13. 네빈의 성찬 이해가 더 성경적이고 역사적 개혁주의에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하지의 명성과 걸춤함으로 인해 미국 장로교회에 쯔빙글리의 기념설이 퍼지게 되었다. 

14. 네빈은 속죄와 칭의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사역과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대해 새로운 변혁적인 많은 질문들을 제기하였다. 

15. 네빈은 칼빈에 대한 충실한 고찰을 제공하였으며 고전적 개혁주의 신학으로 돌아가고자 하였다. 

16. 바로 이 점이 네빈과 그가 추구한 성찬신학을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이유이다.




<나의 질문과 각오>

1. 네빈의 신학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독일 교회의 신학적 정서(낭만주의, 경건주의, 주관주의)가 고전적 개혁주의 신학을 확립하는데 있어서 갈등적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았겠는가?

2. 고전적 개혁주의 성찬론과 근대 청교도주의의 성찬론을 구분짓는 합당한 기준과 윌리엄 커닝햄과 로버트 댑니를 굉장한 합리주의자로 단정하는 명확한 근거가 무엇인가?

3. 성찬에서 ‘그리스도의 신성만 아니라 인성과도 연합된다’는 표현은 오히려 신성이 인성 가운데 편재한다고 보는 루터교회의 성찬론에 가까운 표현으로 오해받을만하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었던 것이 아쉽다. 혹시 네빈의 이러한 진술은 그가 독일 교회로부터 받은 신학적 감수성이나 사상적 영향의 흔적이라고 볼 수 없는가? 

4. 스코틀랜드 상식 실재주의의 영향으로 인해 하지가 성찬에 대한 개념을 보편타당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설명하려고 한 것은 이해되나 그가 고전적 교리를 상식에 따라 수정하였다고 하고 심지어 개혁주의 교회의 성숙한 가르침을 무시했다고 말하는 것은 좀 과도하고 일방적인 평가가 아닌가?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좀 더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정보를 제공했어야 했다.

5. 그럼에도 한국과 미국 장로교회에서 시행하는 성례가 쯔빙글리의 기념설이나 루터교회의 공재설에 가깝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 현상에 대한 원인을 신학적으로나 교회사적으로 좀 더 면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6. 칼빈의 영적 임재설을 운운하는 이들 중에도 성찬 시행과 적용에 있어서 정통 개혁교회의 신앙고백과 불일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교회에서 성찬이 어떻게 시행되며, 성찬 전후에 신자와 교회에 어떤 영적 변화가 나타나는지를 확인해 본다면 이러한 모순이 현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성찬을 집례하는 입장에 있는 목회자들이 정통 개혁교회의 성찬론에 대한 바른 이해의 결여와 확신의 부족함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때보다도 장로교 신학을 가르치는 학교와 신학 교수들의 역할이 중대하다. 또한 성찬과 세례에 대해 역사적 개혁교회의 입장을 바르게 정립하고자 하는 목회자들의 노력과 성례를 은혜의 방편으로서 귀하게 여기는 인식의 전환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7. 역사적인 성찬 논쟁에서 개혁주의와 루터주의의 차이점이 극명하게 드러났고, 성경적인 성찬 시행을 위해 모진 핍박과 고난을 감수하며 심지어 진리 앞에 순교를 각오하였던 지난 시대의 종교개혁을 기억할 때, 그로부터 가장 좋은 혜택을 누리는 처지에 있으면서도 그들의 정신에 반역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주신 가장 귀한 은혜의 방편을 함부로 몰염치하게 대하는 것은 아닌지를 신중하게 돌아보아야 하겠다.

8. 네빈의 신학에 대해서는 국내에 좀 더 많은 자료가 소개되기를 바라며, 네빈이 하지에 대해서 비판하는 내용과 관련해서는 보다 깊은 탐구와 숙고가 요청된다. 아울러 한국 장로교회에서 정통 개혁주의에 입각한 성례가 시행되지 못하는 원인을 철저하게 분석하며 직분자와 성도들은 지교회에서 성경적인 성찬이 회복되고 바르게 시행될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주나그네

2014.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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