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G 탐방과 후기

제목37회 성경신학회 정기논문발표회(게르할더스 보스와 우리들의 신학) 후기2018-06-28 13:5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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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할더스 보스와 우리들의 신학]


 


오늘(2.16) 오후에 신반포중앙교회에서 열린 성경신학회 정기논문발표회에 다녀왔습니다. 주제는 "게르할더스 보스와 우리들의 신학"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보스 선생님에 대해 이렇게 관심이 많은지 몰랐습니다.


교회당을 가득 메운 인파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고무적인 현상입니다.


젊은 목회자 후보생들이 눈에 많이 띈 점은 참 기분좋은 징조입니다.


 


네 분 교수님의 발제가 있었습니다.


세 분은 보스의 신학과 관련하여 성경 주해(장제훈), 성경신학과 조직신학(이승구), 삼위일체론(김영호)에 대해, 그리고 나머지 한 분은 성경신학 정립을 위한 제언(허주)에 관해 발표하였습니다.


 


네 편의 소논문은 주제에 충실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역력해 보였습니다.


개인적으로 두번째로 발제한 허주 교수의 논문(우리는 성경신학을 무엇이라고 하였는가? 개혁/복음주의적 성경신학 정립을 향한 제언)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근현대 성경신학의 좌표와 연구 동향에 대해 비교적 상세하게 잘 짚어주었습니다. 조금만 내용을 더 세밀하게 다듬고, 레퍼런스를 잘 확인하여 정리해 둔다면 성경신학 혹은 성경해석학(성서비평학) 한 학기 강의 내용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을 만한 논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발제한 분에게는 송구하나, 사실 강의 내용보다도(특히 결론 부분) 촘촘하게 정리된 약 백여개의 레퍼런스가 훨씬 더 감동적이었습니다.


 


보스에 대해서 생소하거나 보스 신학에 대해 개괄적인 소개가 필요한 분들에게는 매우 유익한 시간이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기대가 컸던지) 아쉬움이 많이 남는 논문 발표회였습니다.


 


생각나는대로 몇 가지 해소되지 않은 궁금증에 대해 열거하자면,


1. 시종 친(親) 보스를 넘어 극존(劇尊) 보스로 일관하는듯한 분위기가 좀 걸렸습니다.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보스를 존중하는 만큼 건전한 비평을 시도해야 하는 부분이 적지 않아 보였는데도 말입니다.


 


2. 보스를 "개혁주의 성경신학의 아버지"라고 평가하는 것까지는 좋지만, 그 전제가 너무 강하다 보니 "보스는 항상 옳다"는 식으로 약간 강요받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말하거나 강조한 분은 없었습니다만.


 


3. '계시의 점진성', 오늘 논문발표회에서 가장 언급된 문구입니다. 하지만 '계시의 점진성'이란 단어가 개혁주의 성경신학의 최고의 핵심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구심이 있습니다. 종교개혁을 통해 증빙된 성경 계시의 판명성과 전체 성경 사상에 비추어 이 문구를 어떻게 조화롭게 해석해야 할 지 충분한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발표 후 제기된 질문들을 들으면서 '계시의 점진성'이라는 말은 '계시의 발전성'이라는 개념으로 혼동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워습니다.


 


4. 보스의 신학과 16,17세기의 개혁신학과 대비시키고, 심지어 16,17세기 정통신학의 방법론을 폄하하는 듯한 발언(발제자 중 한 분)은 유감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보스의 신학의 가치를 16,17세기 정통 신학의 연속성에서 찾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 보스가 의존한 코케이우스적인 신학적 방법론를 비판한 헤르만 바빙크의 입


장(그는 개혁교의학에서 코케이우스를 개혁주의를 몰락시킨 주요 인물로 취급하며, 코케이우스의 새로운 언약론적인 방법을 전통신학과 성경신학과, 언약을 작정과, 역사를 이념과 대조시킴으로써 역사의 실체를 언약의 경륜의 차원으로 전락시켰다고 비판함)과 보스의 신학적 입장에 관한 차이점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얻지 못했습니다. 코케이우스의 신학적 방법론과 그것을 차용한 보스와 그것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는 바빙크의 신학적 관점을 단지 개혁주의적 성경신학에 대한 관점 차이 정도로 치부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6. 보스의 삼위일체론을 들으면서 전통적인 삼위일체론과 유사점이 많으면서도 혼동스러운 부분이 적잖이 있었다는 점에 새삼 놀랐습니다. 삼위일체를 해명하는 개념과 언어(표현)에 있어서 일치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 부분은 보스의 삼위일체론이 부분적으로 소개된 상황이기 때문에 단정하기에는 이른 측면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발제를 통해 소개받은 보스의 삼위일체론에는 유감스럽게도 어거스틴과 칼빈이 설명한 삼위일체적 구조에 관한 이해가 없거나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한 경우라면 과연 어떠한 방식으로 성경신학이 정통 개혁신학에 토대 위에 구축된 조직신학과 내용적 연속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스의 교의학의 번역이 서둘러 진행되어 가능한한 빨리 국내에 소개되어지길 바랄뿐입니다.



그럼에도 부디 오해없기를 바랍니다.


오늘 논문발표회를 통해 얻은 전체 유익에 비하면 앞서 (생각나는대로) 열거한 궁금증들은 작은 부분입니다. 또한 발제한 분들의 의도와 달리 제가 잘못 알아들었거나 오해한 점일 수도 있습니다. 토의할 시간이 충분히 주어졌다면 해소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른 참가자들은 어떤 평가를 하는지 귀담아 듣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개혁주의를 추구하는 신학자와 목회자와 신학도라면 보스를 비롯하여 그와 함께 한 구프린스턴 신학은 어떤 형태로든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공유하며 계승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언제나 그랬듯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개혁주의자들에게 주어진 숭고한 교회적, 역사적 사명입니다.


 


개인적으로 그러한 사명을 새삼 인식하게 된 좋은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오늘처럼 꾸준히 주님의 교회를 위한 신학을 전하고 배우는 일이 계속되어질 수 있기를 바라면서 후기를 마칩니다.  




 


▶ 제37회 한국성경신학회 정기논문발표회(2016. 02. 15, 신반포중앙교회)



주나그네


2016.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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