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강 목사 인터뷰

 

ㅣ 주나그네 목사
서 ㅣ 서문강 목사

: 산천에 아름다운 꽃들이 기지개를 피우는 4월입니다. 올해는 유난히 겨울이 길었던 탓에 봄에 대한 갈망이 어느 때보다 더 간절했던 것 같습니다. 따뜻한 봄날에 아름다운 꽃 풍경을 보러가는 것 같은 설레임과 기대감으로 SDG 인터뷰에 귀한 목사님 한 분을 모셨습니다. 아마 한국 교회에서 개혁주의나 청교도 신학에 관심이 있는 목회자라면 이분의 손을 거쳐 번역된 책을 소장하지 않은 분은 거의 없으리라고 생각이 되는 데요. 특히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로마서 강해 전권 번역으로 한국 교회에 강해설교라는 혁신적인 설교 문화 형성의 기폭제를 마련하신 분이기도 합니다. 오랜 기간 동안 교회를 섬기시는 중에도 바쁜 시간을 쪼개서 오로지 한국 교회에 수준 높은 청교도 개혁신앙을 소개하고 보급하고자 하는 일념으로 많은 번역서를 내시고 그뿐 아니라 여러 신학교 강단과 많은 집회에서 개혁신학과 관련하여 좋은 가르침을 주고 계시는 서문강 목사님을 통해서 오늘 교훈과 도전이 되는 말씀을 전해 듣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서: 네. 반갑습니다.

: 우선 저희 SDG개혁신앙연구회 명사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뭐 명사는 아니고.(웃음) 하나님이 주신 은혜속에서 제게 주신 은혜를 따라서 부족하지만 섬겨 왔던 것을 나누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기대가 큽니다. 우선 신앙생활을 하게 된 과정과 청소년에서 청년 시기까지의 신앙이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서: 저는 불신 가정에서 태어나서 스무 살 될 때까지는 교회에 가 본 적이 없습니다. 1969년에 처음에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어요.

: 스무 살 이전에는 교회를 발을 들여보신 적이 없으셨나요?

서: 예. 대학도 신문방송학과를 다녔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께서 라디오를 사다 주셨는데, 그 때는 라디오가 참 귀했던 시절이에요. 라디오에서 아나운서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는 그때부터 아나운서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3회)를 들어갔어요. 그때는 초창기여서 우리 선배들이 두 학년만 있던 상황이었어요. 그러다가 3학년 때 교제하고 싶은 아가씨가 있어서 편지를 보냈는데, 답장이 한 달 만에 왔어요. 그런데 그 편지의 답장에 예수님이 영생의 구주시라고 적혀 있었어요.

: 그 편지에 짧막한 복음이 소개되어 있었군요.

서: 예. 간단한 인사를 하고 복음을 소개하였는데,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의 길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교제하고 싶은 자매가 이런 말을 하니까 상당히 뭐가 있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고, 또 내가 예수님에 대해서 관심을 전혀 보이지 않으면 교제가 끊어지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웃음) 그래서 그 편지에 대한 답으로 영생의 길이 있다고 하니 그럼 한번 인도해 보시라고 했지요. 사실 이전부터 인생과 죽음과 그 이후의 사람의 존재에 대해 상당히 깊은 생각을 하고 있던 바여서 그러한 것들을 편지에 써서 보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던 것 같아요.

: 자매님과 교제가 복음으로 인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 셈이군요.(웃음)

서: 예. 이후로도 편지를 계속 주고 받았어요. 그런데 그 자매는 다른 말은 안하고 계속 성경말씀과 목사님 설교에서 은혜 받았던 내용들을 보내오는 거예요. 그것이 저의 심령을 파고 들었어요. 그러다가 한 2개월 뒤에 성경과 찬송을 보내 주더라구요. 교회를 나가라면서요. 그래서 그때부터 교회를 나가게 된거예요. 그때가 1969년, 미국이 아폴로호를 쏴 올리기 한 달전이었는데, 학교 가는 길목에 있는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어요. 우리 집에서 걸어서 한 7, 8분이면 갈 수 있는 교회였어요. 그런데 그 교회가 아주 정통적인 개혁교회였습니다.

: 혹시 교회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서: 안암제일교회입니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가셨는데, 장덕호 목사님이라는 아주 훌륭한 목사님이 계셨어요. 그 목사님이 목회를 얼마 안 남기신 상태에서 열정적으로 복음을 증거하시던 그런 상태였고, 당시 부교역자로 계시던 장성춘 목사님이라는 분이 얼마 후에 후임이 되셔서 38년 동안 목양을 하시고 이제는 은퇴하셨죠. 제가 교회에 처음 나올 때부터 그 목사님이 잘 지도해 주셨어요. 덕분에 교회에서 세례도 받고, 신학교에도 가게 되었지요.

: 교회를 나가신 지 얼마 만에 신학교에 가실 생각을 하셨나요?

서: 교회를 출석한 지 1년도 안 되어서 복음에 소명을 느꼈어요.

: 1년도 안돼서요?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신앙 생활을 하셨군요.

서: 그렇죠. 하나님의 은혜죠. 저는 이전부터 책읽는 것을 좋아했어요. 철학이나 문학 고전을 많이 읽으려고 했는데, 성경을 알고 나니까 거기에 비할 수가 없더라고요. 예수님을 믿고서 성경을 보니까 한 말씀도 군더더기가 없고 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란 말이에요.
그리고 제가 20여년 동안 살아오면서 가졌던 지식을 다 동원해서 쓴 편지와 자매가 보내오는 편지를 대조해 보아도 전혀 격이 어울리지 않는 거예요. 내가 아는 모든 세상 지혜를 다 써서 대응을 해도 그 자매는 은혜를 받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딱 전해 오는데, 이게 도저히 수준이 맞질 않아요. 처음에는 그러한 것이 은혜인 줄을 몰랐죠. 나중에 ‘아, 이런 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구나.’ 하고 깨닫고 나니 그 자매와의 교제가 더 좋아졌고, 계속 말씀 속에서 교통하는 관계가 되었어요. 그러 과정에서 소명을 갖게 되었고, 대학을 졸업하는 마당에는 신학교를 가겠다고 그랬어요. 그랬더니 부모님이 야단나셨죠.

: 부모님의 반대가 있으셨군요. 교회를 다니는 것도 반대하셨나요?

서: 부모님은 예수님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셨어요. 고향 동네에는 교회도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서울에 와서 교회 다니는 것은 반대하지 않으셨어요. 왜냐하면 그 때 시골에서 어려운 가운데서 대학을 보내놓고 잘못된 자녀들이 있었어요. 소위 말하는 방탕 생황을 해서 잘못 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셨는지, 교회를 나간다니까 반대를 안 하시는데 대신 너무 골똘하게는 믿지 말라고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그런데 막상 제가 신학교를 간다니까 아버지 입장에서는 너무 청천벽력 같은 충격이었죠.

: 가히 상상됩니다. 시골에서 서울로 유학간 자녀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보란 듯 다닐거라 생각하셨는데, 신학교를 가겠다고 하니까 상심하실만 하셨겠죠.

서: 그렇죠. 그 당시의 목회자들의 생활이라는 건 아주 어려웠잖아요. 그래서 아버지께서 그 때 맘고생을 하셨죠. 하지만 제가 목사가 된 몇 년 후에 두 분 다 교회에 나가셨어요. 두 분 모두 예수님 잘 믿으시다가 하늘나라 가셨죠, 제가 9남매의 맏이였는데, 지금 한 가정만 교회를 안 나가고 8남매가 다 교회를 다녀요.

: 목사가 되신 이후에 모든 가족이 복음화된 거군요.

서: 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죠. 아버지도 잘 믿으셨고, 어머니는 기도를 많이 하시는 권사님으로 계시다가 하늘나라 가셨어요. 너무 감사하죠.

: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 편지를 나누신 그 자매님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셨나요?

서: 저희 집사람이 됐습니다.(폭소) 아내는 우리 가정에 선교사와 같죠. 제가 신학교 간다고 할 때, 부모님께서 반대가 심하셨어요. 특히 어머니께서요. 어머니 입장에서는 잘 모르시니까요.

: 신학을 공부하신다고 할 때, 사모님의 반응은 어떠셨나요?

서: 결혼하기 전에는 신학교 가리라고는 생각을 안 했어요. 결혼을 하고 나서 하나님의 종으로서 평생을 보내겠다고 하니까 집사람이 무척 기뻐했죠. 그러나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어리석은 일이었죠. 우리 집이 잘되는 집안이라는 소문이 났었는데, 제가 신학교를 간다는 소식을 듣고는 ‘저 가정은 망했다’라고 말하는 고향 사람들도 있었다고 해요.(웃음)

: 사모님이 많은 위로와 힘이 되셨겠네요.

서: 그렇지요. 저희 집사람한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어요. 암튼 모교회에서 좋은 목사님으로부터 사랑과 지도를 받으면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신학교도 들어가고 거기서 부교역자 생활도 하고 한 것을 생각하면 하나님의 은혜죠. 그리고 지금까지 교회를 두 교회밖에 섬기지 않았는데, 제 모교회인 안암제일교회와 지금 섬기고 있는 중심 교회하고 둘입니다.

: 특별한 일이시네요. 아무래도 첫 번째 사역지인 모교회에서 많은 영향을 받으셨다고 볼 수 있겠지요?

서: 그렇습니다. 교회를 영적 어머니라고 하잖아요. 정말 저는 그 교회를 통해서 났고, 그 교회 품 안에서 자랐다고 할 수 있어요. 거기서 교육전도사로부터 목사로서 한 13년 동안 사역하였는데, 훌륭한 설교자이신 장덕호 목사님과 개혁주의적인 신실한 목사님이셨던 장성춘 목사님뿐 아니라 저희 아버지와 연배가 비슷하거나 많으신 장로님들로부터 정말 사랑을 많이 받았지요.

: 참 아름다운 모습이군요.

서: 그럼요. 저희 모교회는 참 좋은 교회입니다. 목사님이 38년 동안 계시면서 목회자와 선교사와 같은 사역자들이 40여명이 나왔습니다. 저는 그곳을 통해서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에 견고히 서서 바르게 나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런 교회를 얼마나 크게 사용하시는지를 알게 되었어요. 교회가 바로서면 그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일을 하시는 거죠.

: 신학교에 들어가시기 전에 교회를 통해서 어느 정도 개혁신앙에 대해서 소개를 받으셨겠군요.

서: 그때는 개혁신앙이 뭔지는 잘 몰랐어요. 다만 이런 생각은 했었어요. 교회에서 성경대로 가르쳐 주니까 그대로 믿어야 하겠다고 생각했었어요. 신앙생활을 막 시작할 때는 여러 가지 유혹들이 있잖아요. 얼마든지 미신적이고 샤마니즘적인 유혹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이 있었어요. 그런데 교회에 품안에서 자라나니까 안전하게 지켜지는 거예요. 지금도 성도들이 세상에 나가서 이러저러한 유혹을 받고, 여러 가지 건전하지 못한 신앙, 예를 들어, 신비주의나 번영신학이나 은사주의 같은데서 영향을 많이 받거든요. 그런데 교회가 견고하게 개혁주의적인 입장에 서서 나간다면, 그런 유혹을 받더라도 이겨낼 수가 있잖아요. 개혁주의는 성령께서 성경을 체계화 하도록 가르쳐 주신 것이니까요. 그것이 바로 개혁주의니까.

: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개혁주의 신학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은 신학교에 들어가시고 난 후라고 할 수 있나요?

서: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설교를 읽으면서부터였던 것 같아요. 제가 신학교 갔을 때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산상설교가 문창수 목사님에 의해 번역되어 나왔었어요. 그런데 그때만해도 출판환경이나 재정형편이 어렵다보니까 한번에 책이 다 나오지 못하고 찔끔 나오고 몇 개월 있다 또 나오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도 이것이 얼마나 단 꿀과 같은지, 기다리다 못해 출판사까지 찾아가기도 했어요. 특히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산상수훈을 읽다 보니까 그동안 제가 받은 은혜를 말씀을 통해서 여실히 드러내 주더라구요. 제가 겪었던 회심과 영적이고 심리적인 문제들을 말씀으로 풀어주는데, ‘아, 이것이 설교구나! 이게 하나님의 말씀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로마서 강해를 만나게 된 게 신대원 3학년 때 일인데, 어느 날 보니까 그 책 원서가 저희 집에 있는 거예요. 학교에 가끔 선교사님들이 오셔서 외국 원서들을 싸게 많이 팔았어요. 그때 그 책을 구입했는데, 그것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책인지도 몰랐어요. 나중에 보니까 Banner of Truth에서 나온 책들이었고 그중에는 제임스 패커 목사님의 책도 있었어요. 그것도 나중에 번역했어요. 아무튼 그렇게 해서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로마서 강해 원서를 갖게 되었고, 신대원 3학년 1학기때부터 그 책을 번역하기 시작했어요.

: 처음부터 전문 번역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하신게 아니시군요.

서: 그렇죠. 뭣도 모르지만 너무 읽고 싶어서 한 거예요. 영어라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고, 부족하지만 번역을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그리고는 그 책을 다 탈고해서 CLC(기독교문서선교회)라는 출판사로 가져 갔어요. 그때 CLC는 책을 다섯 종밖에 못 낸 작은 출판사였어요.

: 그랬군요.

서: 그때는 문서 선교가 매우 빈약했어요. 당시 김의환 총장님이 교회사 교수님이였는데, 리포트를 써 오라고 하면 별반 참고도서가 없었어요. 그러다보니까 기독교서회에서 나온 자유주의적이거나 바르티안적인 색깔이 있는 책을 참고해서 냈더니 어느날 교수님이 그러더라구요. “학생은 바르티안 책만 많이 인용을 했더라구?” 그러시면서 “앞으로 자꾸만 그러면 많이 점수 안 준다.”고 웃으시면서 경고하시더라구요. 그 정도였어요. 당시에는 공부하고 레포트 쓰려고 해도 책이 없었어요. 생명의 말씀사에서 나오는 경건서적 정도가 다였어요. 제대로 된 신학책은 거의 번역이 안 된 상태였어요.

: 아, 그래서 목사님이 직접 번역을 시도하신거군요. 로마서 강해를 번역하신 게 언제였나요?

서: 1976년 초에 번역하기 시작해서 그해 11월달에 출판되었어요. 그때는 따로 출판 기념회같은 게 없었는데, 우리 학년 학우들이 해 줬어요. 한 100여명 모여서 출판기념회를 했어요.(웃음) 명동의 어느 식당에 모였는데, 당시 학장이셨던 김희보 목사님과 또 지금은 하늘나라에 가신 최낙재 목사님도 오셔서 서평도 해 주셨어요.

: 학생 신분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은데요. 이 책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예상하셨습니까?

서: 그 일이 한국 교회에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치리라는 건 생각도 못 했고, 기대도 안 했어요. 단지 ‘내가 은혜를 받았으니까 이거 한번 내가 번역할 수 있겠는가.’ 해서 시도한 일인데, 사실은 하나님이 하신 거죠. 칼빈이 기독교 강요를 쓰고자 할 때에 ‘내가 세계를 움직이는 10권의 책을 쓰겠다’고 해서 썼겠어요? 그냥 교회를 위해서 섬기는 자세로 썼는데 하나님이 그대로 사용하신 거죠. 제가 한 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 책을 읽고서 개혁주의 신학의 노선을 알았어요. 제가 유학을 안 했잖아요. 사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정식으로 신학교에 다니지 않았어요. 신학 공부를 하였지만 제도적인 학교에서 한 것은 아니잖아요. 의사로 계시다가 소명을 받고 나서 평신도 설교자로 있다가 웨일즈 장로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어요. 여러사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목사가 될 수 있는 충분한 신학적 소양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한 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준 것이지요.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훌륭한 설교자가 되었던 것은 어거스틴과 종교개혁자들, 청교자들의 신학을 잘 이해하고, 그들의 사상이 소개된 책들을 많이 읽고서 거기서 나름대로 시각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비록 신학교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러한 책들을 섭렵하면서 나름대로 체계화 한 거예요. 이안 머레이의 전기를 보면, 이 분이 그레샴 메이첸이 하늘나라 가셨을 때 얼마나 슬퍼했는지 몰라요. 그것은 이 분이 혼자 독습한 것이 아니라 메이첸뿐 아니라 칼빈, 존 오웬, 요나단 에드워즈 같은, 심지어는 존 웨슬리까지도 멘토로 삼으면서 신학적 지평을 넓혀가면서 신학적 조망(眺望)을 형성한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한 것들이 다 이 분의 설교 속에 녹아 있어요. 로마서 강해를 번역하면서 제가 그것을 학습하게 된 거죠. 그러한 학습 과정을 거치면서 어떤 종류의 책을 한국 교회에 소개해야 할지 감을 잡게 되었어요.

: 번역을 통해서 개혁신학에 대해 중요한 통찰을 갖게 되신 거군요. 그리고 한국 교회를 향한 사명감도요.

서: 그렇죠. 한국교회에 무엇이 필요한가를 생각하게 되었지요. 지금은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해서 많이들 알고 계시잖아요. 너무나 감사하게 여러 출판사에서 책들을 많이 소개하고 있어서요. 그런데 그때는 조나단 에드워즈라는 이름은 들어 보았어도 그분이 어떤 신학자인지, 어떤 신학적 영향을 미쳤는지 잘 몰랐어요.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책을 번역하면서 이런 분들을 만나게 된 거죠. 개혁주의의 본류를 만나게 된 거예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모자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여전히 쓰셨어요. 개인적으로 영광스러운 일이지요. 하나님이 하신 거죠. 그 책이 나와서 여러분에게 좋은 영향이 있었다면 정말 하나님의 역사죠.

: 어찌보면 로마서 강해 번역 이후부터 본격적인 번역 사역을 시작하신 거네요.

서: 예. 로마서 강해 번역을 마치고 바로 다음 해(1977년)에 ‘목사와 설교’를 번역했습니다. 그리고 78,79년에 제임스 패커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번역했고요. 그리고나서 무얼 번역을 해야 될까 생각하니까 그냥 쫙 나오는 거예요.

: 아, 번역하시면서 어떤 책을 번역해야 할지를 알게 되신 거군요.

서: 그렇죠. 번역을 마칠 때쯤이면 미리미리 어떤 책을 번역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정말 헐떡대면서 번역했어요. 하나님이 그렇게 몰아대시더라구요.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로마서 강해는 25년에 걸쳐서 번역되어 나왔어요. 오랫동안 걸렸죠. 출판사에서 책이 나오면 저에게 가장 먼저 알려줘요. 어느 시인이 이야기한 것 같이 저는 그 책만 보면 가슴이 뛰어요.

: 그러셨군요.(웃음) 그래도 공부와 사역을 병행해서 하시기가 쉽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 어떠셨어요?

서: 저에겐 번역이 고생이 아니라 너무너무 즐겁고 행복한 일이에요. 신학교 졸업하기 전부터 번역을 시작한 것인데, 교회에서 이해해 주지 못하면 못 할 일이었죠. 교회 사역과 번역 사역을 함께 진행하는 것을 장 목사님께서 많이 이해해 주셨어요. 잘못 생각하면 목회에 신경 안 쓰고 다른 일(번역)만 한다고 싫어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정말 아버지처럼 보호해 주셨어요.

: 목사님의 번역 사역을 개인의 일이 아니라 한국 교회를 위한 일로 생각하셨나 보군요.

서: 그렇죠. 한국 교회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늘 자랑스럽게 생각하시고 또 격려해 주셨어요. 하나님이 정말 역사하신 거죠. 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한국 교회 전체를 위해서…

: 지금까지 하신 말씀에 의하면, 목사님과 로이드 존스 목사님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저의 경험을 보더라도 주변 목회자와 성도들 가운데 로이드 존스의 신학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고백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신학이 한국 교회에 미친 결정적인 영향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서: 교회가 바르게 서려면 강단에서 말씀이 바르게 전해져야 하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도 에베소 교회 3년 동안 사역하신 다음에 고별 설교하면서 ‘주와 그 은혜의 말씀께 너희를 부탁한다’고 장로들에게 말했던 것처럼 말씀이 강단에서 전파되고, 믿어지고, 섬겨지는 일에 있어서 말씀이 주가 되지 못하면 하나님의 교회가 바르게 설 수 없잖아요. 그런데 80년대 한국의 정치적인 상황이나 시대적 조류 속에서 젊은 목사님들을 중심으로 강해 설교에 대한 인식이 생기기 시작한 결정적인 배경에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기여가 있다고 생각해요.

: 그 이전에는 강해 설교라는 말을 듣기 어려웠나요?

서: 그럼요. 저희 선배 목사님때에는 제목 설교가 주를 이루었어요. 로이드 존스 목사님도 그러한 설교가 전혀 필요없다고 한 적은 없어요. 하지만 어떤 설교를 하더라도 그 본문을 강해하는 것을 강조하셨어요.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강해설교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내렸어요. ‘본문이 길든 짧든, 한 어구나 한 단어를 가지고 설교를 하든, 그 본문이 말하는 교리를 설교하는 게 강해 설교다.’라구요. 이것은 칼빈 목사님과 존 오웬 목사님의 설교 방식이었어요. 그러니까 강해설교는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독창적으로 생각해 낸 것이 아니라, 개혁주의 안에서 이전부터 하나의 줄기로 있었어요. 그것을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20세기에 잘 드러내셨다고 봐요. 20세기에 활동하였던 신실한 종들의 뒤를 추적해 보면, 그분들 대부분이 로이드 존스를 언급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존 맥아더 목사님 있잖아요. 그 목사님이 88년에 한국에 오셔서 목회자 세미나를 했어요. 행사를 마치고 나서 그분에게 “어떤 책을 읽어야 합니까?”라고 여쭤봤더니 첫 번째로 말씀하신 것이 로이드 존스 목사의 책이었어요. 같은 해에 내한한 제임스 보이스 목사님도 로이드 존스를 자신의 멘토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끼친 영향력은 지대하다고 할 수 있어요. 제가 어디서 한번은 이런 얘길 했어요. 칼빈 이후에 개혁주의적인 입장에서 가장 개혁주의적인 설교를 한 사람이 누구냐 꼽으면 저는 로이드 존스라고 얘기 하겠다고 그랬어요. 물론 조나단 에드워즈도 훌륭하죠. 로이드 존스도 조나단 에드워즈에게 영향을 받았지요. 누가 더 앞서느냐 하는 것은 말할 수 없지만, 현대적인 의미의 20세기에서는 로이드 존스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큰 역사를 이루신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저는 로이드 존스를 20세기에 일어난 제2의 종교개혁의 선구자라고 말하고 싶어요. 왜냐하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20세기 현대인들이 처한 현실을 이해하면서, 이것에 대한 대처를 말씀가운데 설교로서 녹아내는 섬세함이 탁월해요. 설교를 통해서 어떻게 그 속에서 그리스의 복음과 은혜를 잘 드러낼 수 있는가 하는 점을 이 분의 책을 번역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 목사님의 번역 사역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가 느껴집니다. 한국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생각도 들고요.

서: 너무 감사하죠. 저같이 부족한 사람을 통해서 그렇게 해 주셨다는 건데,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것이기 하지만 지나고 나니까 좀 더 잘했더라면 하는 송구함이 들기도 해요. 하지만 이제 젊은 목회자분들과 성도님이 많이 일어나서 제가 못 다한 일을 하는 모습을 볼 때, 너무 감사하죠.

: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은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신학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장로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지 않았습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말씀해 주세요.

서: 원래 웨일즈 출신인데요. 메소디스트(감리교)의 영향을 많이 받기는 하였지만, 신학적으로는 아주 정통 칼빈주의자라고 할 수 있어요. 1905년 웨일즈 부흥 운동의 영향 속에서 어려서부터 부흥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어요. 물른 은혜의 깊이를 헤아릴 나이는 아니었지만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가졌고 훈련도 많이 받았어요. 그러다가 의과대학에 들어가서 내과 전문의가 됐어요. 그리고 왕실 주치의로 있던 토마스 호더라는 분의 보조 의사로 일하면서 일하는 방식을 유심히 살펴봤죠. 호더 경은 비록 예수님을 안 믿는 분이었지만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나중에 그분에 대해 이런 얘길 한 적이 있어요. 일반은총 영역에서 환자를 어떻게 대하고, 검진하고, 의료 행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그 분을 통해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요. 특히 로이드 존스는 육체의 병을 치료하는 의사였지만, 질병을 단순히 육체적 문제로만 보지 않았어요. 근본적으로 질병을 포함하여 육신의 문제는 정신, 나아가서는 심령의 문제라고 보았어요. 그런 깨달음 때문에 정신과 영혼에 대하여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책을 많을 읽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나름대로 그러면서 신앙적인 회심도 경험을 하구요.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말에 따르면, 조나단 에드워즈 전작집을 읽고 자기 눈에서 비늘이 떨어졌다고 그랬어요. 그런 경험을 통해서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며, 어떻게 설교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바른 시각을 갖게 되었지요. 그러다가 27세 쯤 되었을 때, 샌드필즈로 가서 목회를 시작했어요. 당시에는 설교자가 많지 않은 때여서 평신도 설교자로 그곳에 가게 되었어요. 거기서 한 2,3년 정도 지났을 때, 웨일즈 장로교단에서 안수를 받았지요.

: 좀 예외적인 상황이군요.

서: 그럼요. 당시에도 어떻게 신학교를 안 나온 사람에게 안수를 줄 수 있는가에 대해서 논란이 있었어요. 그런데 시험을 쳐보니까 신학적으로 탁월함이 드러나니까 그런 논란이 다 접어져 버리고 말았죠. 이후로도 계속적으로 독서를 하면서 목회를 하였는데, 1930년대에 대공황이 일어났잖아요. 당시 부두 노동자들에게 돈대신 술로 보너스를 줬어요. 그러니까 술에 중독된 사람들이 늘어나고 가정은 망가지고 그랬지요. 그랬는데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부임하고 사역하는 동안 그분의 설교로 회심과 변화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렇게 그곳에서 12년 동안 사역을 하다가 런던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채플로부터 청빙을 받아 가게 된 거지요.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이사갈 때, 목사님의 서재에서 술병이 많이 나타났어요. 목사님이 마신 게 아니라 술중독자들이 회심하여 가져 온 것들이라고 해요. 이걸 가지고 있으면 자꾸 마시니까 목사님이 가지고 있으라고 하면서요.(웃음) 그래서 술병이 굉장히 많이 나왔다는 거예요. 샌드필즈 교회는 많이 모여야 백이삼십명 모이는 규모의 교회인데요. 처음에는 엉망이었어요. 교회에서 연극도 하고요. 하지만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기도회를 빼고는 세속적인 것들을 다 없애 버렸어요. 그리고는 말씀 강론 위주로 해 나갔어요. 그러면서 교회 안에 회심자가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로이드 목사님의 사모님도 로이드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중에 진정한 회심을 경험하였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어요. 그렇게 성령의 역사로 교회에 변화가 나타나자, 점점 소문이 퍼지게 되고 결국 웨스트민스터 채플의 캠벨 몰간 목사님의 눈에 띄게 된 거죠. 캠벨 목사님은 그 당시에 강해설교의 황태자라고 불렸던 분이에요. 그런데 자신보다 한 2-30년 어린 젊은이의 설교 한 편을 듣고는 돌아가서 바로 편지를 보냈다고 해요. ’오라. 나랑 동사(同舍) 목사 하자.‘고요.

: 그래서 웨스트민스터 채플로 가셨군요?

서: 웨스트민스터 채플로 가셔서 8년 동안 동사 목회를 하셨어요. 캠맬 목사님과 오전, 오후 예배를 나눠서 설교하다가 캠벨 목사님이 소천하신 후부터 단독 목회를 시작했어요. 그때가 1943년인가 44년인데, 2차 대전이 거의 끝날 때 쯤이에요. 그런데 단독 목회를 시작하면서 교인들이 대환영할 줄로 알았는데, 오히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설교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아요. 이안 머레이 전기에 그런 내용이 나와요.

: 캠벨 목사님과 동사도 했고, 8년 정도 설교를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인가요?

서: 예. 캠벨 목사님의 설교는 훌륭한데, 매우 짧아요. 번역을 하면 30분이면 다 끝나요. 그리고 성경 중심으로 아주 요점적으로 하는데 반해 교리적이지는 않아요. 그분의 교리도 우리 개혁주의 교리와 조금 달라요. 그런데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칼빈주의적인 정통 교리를 가르치는 설교를 하면서 설교 시간도 50, 60분이나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회중 중에는 “저 설교를 언제 듣겠느냐.”, ”저 논리적인 설교를 언제 우리가 따라가겠느냐.”, “지루해서 못 듣겠다.“라고 하면서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집사회에서 이런 이유를 대면서 로이드 존스 목사님을 몰아내려고 그랬죠. 마침 어느 여군 장교의 용기 있는 발언이 계기가 되어서 분위기가 반전되었습니다만, 웨스트민스터 채플에서 단독 사역 초창기에는 상당히 큰 어려움이 있었어요. 일종의 영적 싸움같은 것이지요.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질라고 하는데 그걸 무너뜨리려는 세력이 묘하게 역사하죠.

: 아, 그렇군요. 로이드 존스 목사님에 대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네요. 그런데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스스로를 가리켜 ‘나는 개혁주의자다, 혹은 칼빈주의자다’라고 언급한 적이 없다고 하던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서: 맞아요. 로이드 존스 목사님 책 어디에도 “나는 개혁주의자요. 나는 철저한 칼빈주의자요.“ 이런 말 한 적이 거의 없어요. 하지만 이 분은 우리가 신대원에서 배운 신학을 혼자서 다 배웠던 거예요. 오랜 동안 성경과 함께 독서와 묵상과 기도를 통해서 배웠기 때문에 그것이 영혼 속에 살아 있는 거죠. 목회라는게 그저 사람의 종교성이나 터치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이상한 신비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 아니거든요. 사도 바울과 진정한 개혁주의자들의 목회를 보면 성도들로 하여금 예수그리스도를 바르게 믿고, 그 안에서 믿음의 길을 견실하게 가도록 안내하는 것인데, 그런 의미에에서 물론 목회자가 먼저 은혜를 받아 누려야 하겠지요. 그런 점에서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개혁주의 목회자의 좋은 모델이에요. 개혁주의라는 것이 사실은 성경이 말하는 대로 믿고 따르는 것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종으로, 바르게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이 기뻐하는 대로 살아나가는 것이 우리가 날마다 표방하고 추구해야 될 일이지, 자신에게 자꾸만 라벨을 붙여서 ‘나는 개혁주의자다, 너는 개혁주의자가 아니다’라고 할 필요는 없거든요. 그러나 신학적인 노선 구분을 위해서는 개혁주의라는 단어가 필요하지요. 하지만 개혁주의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하는 것보다는 성도들에게 ”이것이 성경적이다.”라고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해요. 로이드 존스는 존 웨슬리에 대해서 찬동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지만, 여전히 그를 하나님이 사용하신 사람으로 존중해요. 때로 칼빈주의자와 알미니안주의자와의 구분을 얘기할 때는 ”나도 칼빈주의자이지만….” 이라고 말할 때도 있었지만, 일반 강론에서는 자기가 개혁주의라든지, 칼빈주의이기 때문에 이렇다는 이야기는 거의 안 했습니다. 누가 칼빈주의자이기 때문에 항상 옳다고 얘기 한 적도 없고, 언제나 성경에 비추어서 생각하려 했어요. 그게 개혁주의의 원론이잖아요.

: 참된 신앙이란 단순히 어떤 호칭이나 구호에 종속될 수 없다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서: 그렇죠. 그게 신앙인이라구요. 사실은 신앙을 위해서 신학이 있는 거지. 신학을 위해서 신앙이 있는 게 아니거든요. 신학은 바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르게 믿도록 하기 위해 신학적인 그런 지식이나 체계가 필요한 거지 신학자체만 머리 속에 담아 놓고 ‘난 이걸 알고 있으니까 내 영성은 이 정도 올라갔다.‘ 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요. 오히려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항상 하나님의 말씀이 제시한 표준에 이르도록 부단히 자신을 치는 노력이 있어야 해요.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날마다 죽는 그런 자세로 나가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개혁주의자라고 할 수 있어요. 개혁주의자는 상대방에게 거룩한 감화를 끼쳐야 하지, 무조건 반대를 하고 반감을 조성하는 것이 개혁주의는 아닌 것 같아요. 논쟁에서 이긴다고 개혁주의자는 아니라는 말이에요.

: 항간에 개혁주의에 대해서 편협한 시각을 갖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개혁주의를 지식이나 이념을 대하듯 하여 비판적 사고로서만 개혁주의를 드러내고자 하는 바람에 개혁주의가 말하려는 진정성이 왜곡되고, 자신의 부주의함으로 인해 개혁주의의 정신이 훼손되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불편한 현실에 대해 지적하신 것이라 사려됩니다.

서: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일부 청년들 가운데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나려고 할 때, 남의 연약한 허물을 드러내는 것보다 개혁주의자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더 철저한 사람이니까 그 사람을 더 이해하고 위로해 주어야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지 않고 너무 정죄하면 도리어 개혁주의에 반감을 갖게 된다고 말이지요. 저는 그런 모습을 로이드 존스 목사님한테서 배웁니다. 예를 들어서 알미니안에 속해 있기 때문에 무조건 무시하거나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거지요. 그들도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기준이 있으시니까요. 개혁주의는 하나님과 말씀을 표준으로 삼아서 평가를 해야지, 나와 다른 신앙노선이라고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에요. 로이드 존스는 존 웨슬리나 찰스 웨슬리와 같은 분들도 굉장히 귀하게 생각합니다. 알미니안적이다, 예지예정을 말한다고 해서 “그 사람들은 우리와 형제들이 아니다.“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구원은 지식이나 이해로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는 거니까요. 은사주의적인 색깔을 가진 사람도 그저 이단이다라고 하면 안 돼요.

: 공감합니다. 하지만 구원에 정죄는 할 수 없지만 분별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로이즈 존스 목사님도 신학에 있어서 어떤 단호함, 명료함을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까? 예를 들어, 로마 카톨릭 신학에 대해서 분명히 잘못을 지적하는가 하면, 존 스토트 목사님과 복음전도 견해에 대해서 이견을 나타내지 않았습니까?

서: 그렇죠. 존 스토트가 연약하지만 여전히 같은 형제로 취급했죠. 그러나 로마카톨릭에 대해서는…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5장에 언급된 것처럼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볼 정도로 신랄한 비판을 하지 않았나요?

서: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글에서 교황이 적그리스도다라는 이야기를 발견한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로마 카톨릭의 구원론이라든지, 성모 숭배라든지 이런 것에 대해서는 합당치 못하다, 그건 아예 구원을 말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하죠. 또 믿음 자체를 공로처럼 이해하는 알미니안 신학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합니다. 그러나 그 진영에 있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느냐, 아니냐 이런 문제로 갈 때는 그렇게까지 얘기하는 건 지나치다고 보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서, 전도 문제에 있어서 빌리 그래함 전도 대회가 영국에서 열릴 때, 그래함 목사측에서 “목사님. 강단에 의자 하나를 갖다 놓을테니까 연단에 앉기만 해 주십시오.”라고 했을 때, 안 갔어요. 왜냐하면 빌리 그래함 전도 방식은 비성경적이라고 보았기 때문이에요. 빌리 그래함 전도 대회에서는 빌리브이즘(Believeism)을 아주 강력하게 전개하였어요. 우리나라도 선교단체에서도 한 사람을 앉혀놓고 30분 내에 설득을 해 가지고 예수님을 고백하게, 논리적으로 설득을 해 가지고 고백을 하면 그 자리에서 “당신은 구원받았다.” 고 하는데, 이것이 빌리브이즘이라는 거죠. 그건 아니라는 거죠. 이렇게 성경적으로 잘못된 점에 대해서는 경계를 하면서, 분명하게 복음 진리를 위해서는 아주 맹렬하게 싸웁니다. 하지만 본질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찬동하면서도 인간의 연약함에 있어서 차이가 나는 점에 대해서는 우리편에서 포용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 오늘 목사님과의 인터뷰에서는 로이드 존스 목사님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요. 이왕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 가지만 더 여쭙지요. 로이드 존스 목사님에 대해서 지금까지 말씀하신 것처럼 긍정적인 측면이 많습니다만, 한편에서는 신학적인 입장에 있어서 약간의 논란의 여지가 있는 면들도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성령론에 관계된 것이라든가 교회정치와 관련해서 장로교에서 안수를 받았지만 회중교회를 지향하였다든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같은 장로교적 교리를 도드라지게 강조하지 않았다는 점들을 지적하는 분들도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서: 본질적 성령론에 대해서는 문제가 전혀 없다고 봐요. 우리가 아는 삼위일체적 믿음과 이해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성령세례라는 명칭을 사용함에 있어서 중생 이후에 회심을 거친 그리스도인이 성령세례를 받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에베소서 강해나 로마서8장 강해에서 보이는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조금 지나쳤다는 생각을 가집니다. 이안 머레이 목사님도 같은 견해고요.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배경이 무엇인가 하면, 이 분이 성령의 감동하심과 역사에 대한 굉장한 체험이 있으세요. 하지만 자신의 체험을 설교에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아요. 후에 이안 머레이가 후학을 위해서 전기를 쓴다 그러니까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쓰지 말라고 그랬는데, 후학을 위해 필요하다고 로이드 존스 목사님에게 가서 한참 설득하고 애원해서 전기를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처럼 자기 얘기를 잘 안 하시거든요. 하지만 무언가 굉장한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셨던 것이 분명하고, 교회사를 통해서도 하나님께 쓰임받은 수많은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도 자신과 같은 성령의 역사를 경험했다고 보았던 거죠. 그리고 성경에도 사도들에게 성령세례를 말씀하셨단 말이죠. 그런데 사도들이 신앙 고백을 할 때와 성령세례를 받을 때 사이에 간격의 차이가 있잖아요. 그 차이를 교의화시켜서 성도에게 적용하려 하다 보니까 거기서 조금 빗나간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그럼에도 저는 성령의 감동하심과 역사에 대한 강조와 부흥과 연결시켜서 말하는 것은 틀리지 않다고 봐요. 다만 개인적인 경험과 교회사적인 사례들이 많다 보니까, 이것을 교의화 하는 과정에서 연약함이 드러난 부분이라고 봐요. 누구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듣자 하니, 돌아가실 즈음에 ‘내가 성령세례는 너무 지나쳤다. 그러니까 이 책 내지 말아라.’고 그랬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저도 번역하면서 성령세례에 대한 부분에서는 다른 강론에 비해서 조금 보편성과 객관성을 상실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성령의 감동하심을 사모하던 탓이라고 할까요.

: 그렇죠. 누구든지 연약함으로 나타날 수 부분이 있다고 봐야 하겠죠. 그런 것을 후학들이 잘 극복하면 더욱 좋겠지요.

서: 그럼요. 칼빈 목사님이 쓴 기독교강요도 성경처럼 완전하다고는 말할 순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연약함이 있고, 역시 겸손해야 될 이유이지요. 한편으로는 우리의 기준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이시고요. 그 분을 기준으로 훌륭한 선진들의 연약함을 볼 때, 그들도 우리와 성정이 같지만 하나님께서 귀하게 사용하셨다고 생각하고 겸손히 받아들여야지, 약점이 있다고 그가 가진 모든 좋은 것을 버리면 안 되죠.

: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교회 정치 이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서: 교회의 정치에 대해서도 이분은 ‘어느 정치관이 완전한 정치관이다.‘ 그런 의식은 없었던 것 같아요. 각각의 정치 체제마다 나름대로 강점이 있다고 생각한 거지요. 그러나 우리 장로교회 입장에서는 장로교가 완벽한 정치는 아니지만, 그래도 최선이라고 생각하니까 긍지를 갖잖아요.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회중교회를 섬긴 것은 그의 관심이 복음전파와 영적 각성을 동반하는 부흥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특히 회심에 의해서 일어나는 영적 부흥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어요. 이 양반이 생각하는 부흥은 회심이 마치 소낙비처럼 짧은 기간에 집단 속에 물붓듯이 쏟아지는 일로 생각했어요. 그런 회심을 동반한 부흥이 교회사속에서 여러 차례 있었다는 거죠. 초대교회는 말할 것도 없고 종교개혁시대와 청교도시대, 그리고 영국이나 미국에서 있었던 대부흥 운동과 우리나라의 평양 대부흥에 대해서도 가끔 언급하였어요. 그리고 그런 부흥을 일으켰던 주역들에 대해 많이 연구를 했어요. 성령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 가에 대해 다른 분들보다 심취하시고 연구를 하다보니까 성령세례를 좀 지나치게 해석한 면이 있지 않았나 싶어요.

: 그런 점을 오순절주의자들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을 자기 편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도 되겠군요.

서: 맞아요. 로이드 존스에 대해서 크게 오해하는 거죠. 그들은 자신들만 위하는 사람들이에요. 오순절주의는 은사주의잖아요. 그건 아니죠.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말하는 성령세례는 오순절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그런 세컨 브레싱이 아니에요. 성화와 관련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복음의 영광과 능력의 사역과 관련해서 포커스를 맞추는 거지, 그런 어떤 은사체험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 그럼에도 역으로 생각한다면, 누가 무엇을 말한다고 해도 성경으로 검증하는 태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대로 개혁주의는 곧 성경에서 말하는 가장 적합한 신학이라는 관점에서도 더욱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서: 그렇죠. 성경이 무얼 말하는 가를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는데 그러한 가르침이 교회사속에서 체계화된 것이 개혁주의잖아요. 지금 이야기하는 조나단 에드워즈나 로이드 존스와 같은 선진들은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는 인도자이지요. 그러나 그들이 우리 믿음의 주가 아니잖아요. 우리가 청교도를 공부하는 것도 청교도들을 통하여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가를 알기 위한 연구이지, 그들이 무슨 책을 썼고, 그 내용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 자체가 곧 개혁주의는 아니란 말이죠. 이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어디 가서 존 오웬에 대해서 얘기해 달라고 하면, “존 오웬을 배우러 여기 온 게 아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믿고 우리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섬겨야 되는 지 성경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우리가 섬기고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여기에 모인 것이지, 존 오웬을 알기 위한 모임이 아니다. 정말 알고 싶으면 존 오웬 목사님한테 물어봐라. 존 오웬 목사님도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고 합니다. 그것을 모르면 존 오웬을 한참 배우고 나서 강단에 가서 존 오웬 이야기만 할 수 있어요. 그건 안 되는 거예요. 예수님을 얘기 해야지. 그건 하나의 과정 중에서 방편으로 생각해야죠.

: 맞습니다.(웃음) 어떤 면에서는 저희가 스승들이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 끝을 보고 좋아하는 수도 있지요.

서: 그래요. 우리의 태양이신 주님을 늘 바라봐야 해요. 특히 설교자는 강단에 설 때에 자신이 회중과 하등의 차이가 없고 어떤 때는 회중들보다 모자랄 때가 많다는 생각을 가져야 해요. 무슨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주님이 주신 소명 때문에 선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증거해야지 자신을 드러내려 해서는 안 됩니다.

: 설교에 대해서 말씀하시니까 한 가지 여쭙지요. 목사님의 학위 논문 제목을 보니 강해설교가 주제였더군요. 찾아보니까 ‘강해설교의 회중 반응과 그에 대한 목회적 대응‘이라는 제목이던데 맞습니까? 성경적 강해설교를 위해서 필요한 요건이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아울러 설교를 준비하시는 데 목사님만의 방법(노하우)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아마 이것을 듣고자 하는 분들이 꽤 많을 것 같습니다.(웃음)

서: (웃음)아고…. 무슨 노하우가 있겠어요. 저는 초창기부터 설교하는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무엇보다도 성경본문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잘 증거하는 것이 설교자의 임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성경본문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본문에 대한 바른 해석이 필요한데요, 이 일을 위해서 주석이나 책들을 참고합니다. 본문에 대한 이해가 그림으로 그릴 정도로 선명하게 나타나지 않으면, 회중들에게 전해도 뭐가 뭔지 몰라요. 교수가 지식을 가르칠 때도 명확한 개념 파악이 되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설교자도 그리해야 됩니다. 명교수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아요. 그래야 어떤 질문이든지 다 받아들일 수 있어요. 목사도 마찬가지예요. 명확한 이해가 없으니까 질문의 요지가 잘 이해 안 되고, 그러면 엉뚱한 답변을 하게 되는 거죠. 제가 설교에 대해서 다른 분들에게 가르칠 만한 입장에 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이 부분은 명확한 것 같아요. 설교자는 성경본문이 말하는 의도가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이해할 때까지 묵상해야 해요. 명확한 이해가 될 때까지는 설교준비가 아직 안 된 거예요. 이 부분만 되면 설교준비는 다 한 거죠. 어떻게 전개할까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가 되겠지만, 저는 그렇게 하려고 무척 노력을 많이 했어요. 지금도 설교가 주어지면 본문이 말하는 의도를 생각하고, 그 의도가 이해가 되면 성도들의 영적인 상황, 또 처해 있는 상황, 우리가 처해 있는 지상적인 조건, 이것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이걸 논쟁해 나가야 할까를 생각하게 되죠. 일종의 목회적 적용인데요. 로이드 존스 목사님도 그렇게 설교했어요.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설교를 할 때에, 우리가 지성적인 존재라는 점을 잘 인식할 필요가 있어요. 지성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교리적인 근거를 반듯하게 제시해 주어야 듣는 사람이 헤매지 않는단 말이에요.

: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서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서: 말씀드린 것 같이 강해 설교를 바로 전해야 성도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설교를 통해서 바르게 대처해 나갈 수 있어요. 제 자랑은 아니고요. 설교와 관련해서 한 가지 구체적인 경험을 이야기하면요. 이번에 어떤 권사님이 암에 걸려서 수술을 받으셨어요. 암이 사람에게 찾아오면 엄청난 타격이잖아요. 영적인 위기이기도 하고요. 참 힘든 일이지요. 병도 병이지만 인생에도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많이 생기잖아요. 그러한 상황을 지켜보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은혜를 주셨어요. 그 권사님이 믿음으로 교회를 섬기고 말씀 속에서 지금까지 자라왔는데 그 모든 상황을 은혜의 말씀을 통해서 접근해 가면서 극복해 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어요. 병원에서도 같은 환우들 가운데 그 권사님이 본보기가 되어서 다른 환자들에게 힘이 되었어요. 그러면서 자신도 병을 잘 이겨냈었어요. 주치의도 이 경우는 너무나 특이한 사례라고 하여 권사님에게 환자들을 위해 강의할 기회를 주셨다고 해요. 저는 그 과정을 여상하게 듣지 않았어요.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그 분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놀라운 말씀이 살아있었기 때문인 거죠. 예를 들면, 이 분이 납으로 밀납된 폐쇄된 공간에서 주로 검사를 받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잠시도 견디기 힘든 상황에서도 제가 번역하여 우리 교회에 소개한 토마스 보스턴의 ’고통속에 감추인 은혜의 경륜‘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거기서 고난주간의 의미를 되새기며 너무 유유자적하게 지낸 거예요. 그렇게 좋을 만한 상황은 아니었는데도 너무 좋았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은혜를 주신 거지요. 그런 은혜 때문에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잘 대처해 나갈 수 있었던 거예요. 저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인생의 순례길을 가잖아요. 그 과정에서 엄청난 위기, 절박한 위기를 만날 때가 많은데, 우리를 붙잡아 줄 게 뭐냔 말이죠.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예요. 그러한 것을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는 건 말씀밖에 없죠. 제가 강해설교를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 그런데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이 원론적으로는 말씀이 중요하고, 말씀목회를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현실에서는 말씀보다 다른 프로그램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목사님께서 보실 때, 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이 있음에도 말씀에 의한 참된 부흥을 경험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가 어디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서: 하나님의 방식을 믿고, 성경이 보여 주는 방식을 믿어야 되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참을성이 없어요. 우리 본성 속에 나오는 육신적인 방법을 취하고 싶은 유혹을 끊임없이 받잖아요. 우리 적은 멀리 있지 않아요. 우리 심령 속에 있어요. 모든 세대의 성도들이 겪는 어려움이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이겨낼 방법은 무엇인가? 성경에서 여전히 제시하고 있잖아요. 또 교회사 속에서 믿음의 선진들을 통해 제시하고 있잖아요.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는 예수님의 말씀이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이 주신 멍에가 아니라, 자신이 보기에 쉽고 편한 다른 멍에를 매려고 하는 것이 문제예요. 다른 멍에가 쉬워 보이지만 사실은 예수님의 멍에가 가장 쉬워요. 제 생각엔 강해설교가 가장 쉬운 설교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아는데 조금 시간이 걸리지만, 알게 되면 그게 가장 쉬우요. 다른 재료가 필요하겠어요? 아니면 설교 재료가 떨어질 이유가 있겠어요? 성경 속에 다 나와 있잖아요. 성경이 모든 것을 다 말하고 있잖아요. 저도 요즘 베드로후서를 강해중인데, 할 말은 많은데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요. 묵상하면 할수록 무진장 깊은 샘에서 생수를 끌어올리듯 말씀이 계속 나와요. 요리로 말하면 성경의 시장으로 가서 신선하고 풍성한 재료를 사 오면 되는데 요리하기 귀찮다고 아무데나 가서 몸에 안좋은 음식을 사 먹거나 대충 만들어진 음식을 가져다 먹으려고 해요. 저는 칼빈대학교 설교대학원에 가서 강의할 때, “그거 순대설교다.“ 그래요. 순대 껍데기는 돼지 창자지만 그 속에 들어있는 건 전혀 다른 거잖아요. 그런 설교를 하지 말고 성경 자체로 들어가라는 거예요. 저는 정말 시장에 가는 것을 좋아해요. 집사람이 가자고 하면 저는 기쁨으로 갑니다. 시장에는 널려 있는 게 다 먹을 거 아니에요? 한꺼번에 다 사올 수는 없죠.(웃음) 설교도 마찬가지에요. 성경으로 들어가면 되는데, 책상머리에서 인터넷만 뒤지고 있으면 제대로 먹을 수 있는 게 안 나와요. 설교 재료가 풍성한 성경으로 들어가야 해요. 그게 바로 강해설교죠. 그런데도 설교거리가 모자라겠어요?

: 시장 비유는 적절하신 비유인 것 같습니다.(웃음) 그건 안 잊어 먹겠는데요.

서: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설교자는 성경의 시장으로, 성경의 바다로 가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매날 자기 머릿속으로 생각하면 식상할 수밖에 없어요. 예화는 두 번만 해도 ‘목사님이 먼저 번에 하던 것을 또 써먹으시는구나.‘하고 하지만 요한복음 3장 16절은 천번을 인용해도 성도들이 “아고, 목사님 저것밖에 없는가.” 이런 소리를 안 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얼마나 깊은데요. 그래서 강해설교가 가장 쉬운 설교방식이라는 거예요. 물론 성경을 대중적으로 풀어내기는 쉽지 않죠. 논리가 있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강해설교에 맛을 아는 사람은 목사도, 성도도 그것을 찾게 되요. 그리고 한 가지 또 생각할 것은 교회 안에 여전히 연약한 분들이 많다는 사실이지요. 또 아직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들은 뭐가 뭔지 잘 몰라요. 도저히 감을 못 잡죠.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의 반응을 끌어내기 위해서 충격을 주고, 자극을 줘서 거듭나지 않은 상태에서 종교생활을 하게 하는 것은 기만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교회와 설교자들이 좀 더 각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 이제 교회 이야기를 좀 나누지요. 중심교회에서 사역하신지가 얼마나 되셨지요?

서: 1987년에 부임하였으니까 올해로 26년이 지났군요.

: 이전부터 교회가 있었단 말씀인데, 꽤 오래된 교회이군요.

서: 네. 어떤 분들은 “오래된 교회인데 왜 이리 교회가 크지 않느냐?”고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데 제가 이 교회에 오기 전, 교회 설립때부터 상당히 내홍이 있었어요. 1976년에 설립되었는데 제가 올 때까지 목회자가 여섯 명이나 바뀌었어요. 제가 일곱번째 목회자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틀이 안 잡혀 있어서 한 10년동안 틀을 잡느라고 무척 힘들었어요. 여기를 도망가려고 무진 애를 썼어요.

: 그러셨어요? 힘든 일이 많으셨나 봅니다.

서: 예. 너무 힘들어서. 어떤 때는 하나님의 교회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그래서 ‘하나님. 왜 이렇게 저는 이런 교회를 섬겨야 합니까? 저도 번듯한 교회에 가고 싶고 몇 천명 있는 자리에서 설교하고 싶어요.(웃음)’라며 불평하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한 10년 쯤 되었을 때, ‘이제 그만 다른 교회로 좀 갔으면 좋겠습니다.‘라고 기도를 드렸어요.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님 앞에 합당치 못한 기도였어요. 그런데 그때 어떤 깨달음을 주셨는고 하니, 우리 교회가 작지 않다는 마음의 깨달음을 주시더라구요. “왜 작지 않습니까?“ 하니까 ”네 교회가 네 교회냐? 내 교회지.“ 주님께서 네 교회가 네 교회가 아니라 주님의 교회다. 내 교회다. 크신 하나님의 교회다. 그런 깨달음을 주시더라구요. ”네 교회는 절대로 네 교회가 아니다. 내 교회는 큰 교회다. 그러지 말고 섬겨라.”라는 생각을 갖게 하시더라구요. 그후로 아주 자유함을 얻었어요. 그리고 성도들에게 ’우리는 교회는 작은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큰 교회다‘라고 전하면서 ’이제 성경이 말하는 대로만 합시다‘라고 했어요. 이후로 지금까지 말씀 중심으로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교회 홈페이지에 교회를 소개하는 코너에 보니까, ‘우리교회는 성경에 철저한 기반을 둔 역사적인 칼빈주의 또는 개혁주의 신조를 견지하기 위해 성결하고 평안하게 서 가고 있습니다.’ 라는 문구가 눈에 띄던데요. 방금 말씀하신 경험의 열매이고 고백같이 들립니다. 지금까지 한 26년 동안 소신을 갖고 교회를 섬기셨는데, 홈페이지에 써 있는 문구에 일치한 교회로서 만족하시나요?

서: 우리 입장에서 어떻게 보든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얼마나 연약하겠어요. 하지만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라는 말씀이 있잖아요. 연약은 우리의 질그릇 같은데서 나오는 것이지만, 보배는 여전히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니까 그런 점에서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많은 단점을 가졌지만, 여전히 보배를 가진 교회라는 자부심이 있어요. 하나님의 교회니까 그런 심정으로 성도들과 함께 다같이 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감사한 것은 제가 하는 일에 대해서 교회에서 딴지를 거는 사람이 없어요. 문서를 번역하고 공부하는 것이 다 강단에서 나타나니까 장로님들도 잘 이해해 주시고 한마음으로 섬기고 있어요. 다 하나님의 은혜죠.

: 중심교회가 개혁교회로서 나아가는데 있어서 특별히 신경을 쓰는 부분이 있습니까?

서: 우리 교회는 매해 표어를 만들어서 그것가지고 뭐 하고 그러진 않습니다. 그냥 성경이 말하는 목표를 두고 하나님의 목적을 향해 나아가자는 큰 타이틀만 걸고 나아가고 있어요. 그래서 늘 성경이 말하는 대로 하려고 노력해요. 우리 교회엔 특별한 케츠프레이즈가 없어요. 그런 것을 강조하다 보면, 잘못하면 공로주의에 빠질 수도 있고, 나름대로 성취감에 도취될 수도 있어요. 교회로서 진행해야 할 일, 즉 예배, 교육, 전도, 선교에 중점을 두면서 끊임없이 섬기고 있습니다.

: 개혁신앙으로 교회를 개척하려고 준비 중이거나 교회 개척을 한 지 얼마 안 되는 분들에게 하실 권면이 있으시다면요?

서: 처음 교회를 시작하면 두세사람부터 시작을 하잖아요. 그때부터 원칙적으로 해야 돼요. 개혁주의를 배운대로, 성경에서 말하는대로 해야 해요. 처음부터 배운대로, 확신을 갖고 하면 두세사람이 좋은 씨앗이 돼서 결국 자라나요. 그런데 그렇지 않고 사람이 많아지면 하자고 하면 그땐 이미 늦어요. 성도 수가 많아진 다음에 뭘 하려면, “어? 이제까지 했던 것과는 다르네요?”하고 반대를 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교회를 떠나기도 하고 분란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니 두세사람이 모일 때부터 제대로 해야 해요. 혹시 어느 분이 “목사님.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라고 하면 “안 되도 하는 게 개혁주의입니다.”라고 답해야 해요. 저는 후배 목회자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해요. “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안 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니까, 안 되게 하시면 안 되게 하시는대로 하나님의 역사만 기대하고 나가야 한다.”고요. 목사는 자신이 생각하는 교회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생각하는 교회상을 자신의 교회로 생각해야 해요. 그것이 주님의 교회지요. 처음부터 자신이 생각하는 교회에만 매달리면 숫자나 규모와 상관없이 내 교회가 되는 거예요. 그런 분은 은퇴를 해도 교회가 자신 것인줄 알고 영향력을 나타내려 하죠. 그럼 교회가 곤란해지죠.

: 사실 교회를 통해서 자신의 비전과 성공을 이루겠다는 것인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것인지 혼동하는 목회자가 많은 것 같아요. 유혹도 많이 받고요.

서: 저도 오는 과정에서 그런 유혹이 없었겠어요? 다들 똑같아요. 하지만 한 가지 감사한 건 하나님께서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셨다는 거예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소원하는 대로 안 이루어 주신 게 너무 감사해요. 저도 뭐 나름대로 생각이 없었겠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인도하셔서 이렇게 저렇게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만 가도록 붙잡아 주신 것이 너무 감사하죠. 지나온 길을 돌아 보니까, 그때 제가 원하는 대로 하나님이 이루셨으면 제가 이런 상태가 아닐 겁니다.(웃음).

: (웃음)안 이루어 주신 것이 감사의 이유이군요. 많은 위로와 도전이 되는 말씀입니다. 번역과 관련해서 미처 여쭙지 못한 내용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번역하신 책이 몇권이나 되는지 아세요?

서: 한 80여권 됩니다.

: 그러세요? 중심교회 홈페이지에는 63권이라 써있던데요?(웃음) 바꾸셔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번역이라고 하면 제2의 창작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만큼 굉장한 수고와 고뇌가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여러 가지 바쁜 사역 가운데 그렇게 많은 책을 번역하신다는게 저로서는 굉장히 놀랍습니다. 번역 서적을 고르시는 기준이나 번역에 있어서 특별한 방법이 있지 않을까 궁금해지네요.

서: 글쎄요. 저는 우리 한국교회가 궁핍해 할 때 부족한 종을 사용하신 것에 너무 감사하고요. 지금은 훌륭한 번역가들이 많이 있는 것 같아요. 암튼 76년부터 번역 사역을 시작했으니까 한 삼십 몇 년 되었죠? 그렇게 생각해 보면, 일년에 두권 내지 세권을 내었다는 계산이 나오는데요. 주로 제가 번역한 책들은 두꺼운 것이 많아요. 일년에 원고지로 7천매 정도는 했다고 생각합니다. 7천매면 주일을 빼고 일년을 삼백일로 계산해서 나누면 매일 한 이십매 정도 번역했다는 말인데요. 요즘은 좀 덜 한데, 제가 좀 더 힘이 있었을 때는 하루도 거른 날이 없을 정도였어요. 그런데 어떻게 그 일을 다하는가 하면, 저는 짜투리 시간을 많이 이용했어요. 예를 들어, 부목사때도 새벽기도를 다녀와서 하고, 심방을 가는 사이에 생기는 쪽시간도 활용했어요. 10분도 좋고, 심지어는 5분도 이용했어요. 좀 헐떡거리듯이 했죠. 그렇게 하다 보니, 제 일을 도와준 분들이 많아요. 대필해 주거나 정서(正書)해 준 분들이 있었어요. 그런 분들이 없었다면 제가 다 할 수 없었겠죠. 제 처남 중에 한사람은 한 삼십권 정도를 도와줬어요. 뒤늦게 목회를 해서 지금은 인천에 있는 제법 큰 교회의 목회자로 있는데, 그 이가 신학교 가기 전에 집사로 있을 때 저의 비서역활을 했죠.(웃음)

: 처남께서 목사님의 번역을 돕다가 신학에 맛 들이셨나 보네요.(웃음)

서: 예. 제가 번역한 책들에 영향을 받은 거겠지요. 책을 고르는 방법은 대부분 90%는 제가 출판사에다가 ‘이것을 출판하면 좋겠다’고 요청을 합니다. 지평서원에서 책을 내게 된 것도 그렇게 해서였죠. 처음에 그런 요구를 할 때는 좀 이해를 못하셨어요. 하지만 제가 낸 책들이 나름대로 읽혀지니까, 운영자이신 장로님도 눈을 뜨셔서 출판사가 잘 서게 된 것입니다. 책 선정은 로이드 존스 목사님 책에서 많이 소개받았어요. 그 분 책에 나오는 책들을 눈여겨 보았다가 번역하곤 하였어요. 아무튼 번역하면서 책을 고르는 눈도 생기게 되었어요. 번역하면서 나름대로 그런 눈을 주신 거죠. 처음에는 존 오웬도, 조나단 에드워즈도 몰랐었죠. 그러다가 그 분들을 알게 되면서 그분들 책을 내게 되었는데, 근래에 와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니까 너무 감사하죠. 말씀드린 것 같이 제가 외국가서 공부한 사람도 아니고요. 아마도 유학을 갔더라면 나름대로 학위를 받아야 하는 목적때문에 자유로운 공부가 안 되었을 거예요. 제가가 원하는대로 독서를 못 했을 거예요. 번역을 하면서 나름대로 공부를 한 셈이죠. 그러는 중에 책을 고르는 기준이 생기고, 그렇게 책을 내게 되었지요.

: 말씀대로 요즘은 과거에 비해서 번역 사업이 매우 활발한데요. 개혁주의 관련 서적도 많이 발행되고 있고요. 좋은 번역자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서: 영성이죠. 번역은 하나의 방편이지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자기 자신을 바르게 세우고 또 그 책의 저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증거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바르게 알아서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이므로 성도를 섬긴다는 자세를 가지고 번역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 그렇군요. 요즘 우리나라 번역 출판 시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서: 제가 번역을 막 시작할때는 정말 열악했어요. CLC(기독교문서선교회)에서 발행한 책이 다섯종인가 밖에 안되었으니까요. 생명의 말씀사는 앞선 주자니까 몇십 권 정도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지금은 CLC 하나만해도 천종이 넘었다고 해요. 그리고 유수한 출판사들이 많이 나왔어요. 그래서 언젠가 젊은이들한테 이런 말을 했어요. “유학가지 말아라. 괜히 유학 가서 알아듣지 못하는 말 때문에 애쓰거나 학위 받으려고 애쓰지 말고 읽어야 할 책 삼백권만 골라가지고 읽어라.“고요. 물론 교수가 되려면 전문지식이 필요하니까 유학을 해야 되겠지만 목회자라면 유학간 것과 같거나 더 나은 효과를 가질 수도 있어요. 제가 번역한 책들은 개혁주의 노선에서 중요한 맥락을 꿰뚫고 있는 책들이예요. 칼빈, 존오웬, 청교도들과 조나단 에더워즈, 휘필드, 스펄젼, 아더핑크, 그리고 로이드존스에 이르기까지 이분들 책들만 붙들고 있어도 개혁주의 노선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죠. 너무 감사하죠. 제가 이걸 정하려고 한 것도 아닌데, 한걸음씩 인도함을 받아서 여기까지 왔으니까요.

: 개인적인 신앙 여정이면서도 동시에 한국 교회를 위해 준비된 그런 길을 가신 것 같습니다.

서: 그럼요.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지요. 언뜻 개인적인 시각으로 보면 내 일이다, 우리 일이다라고 생각하지만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은 하나님의 일의 한 부분이지요. 이 부분들이 다 합쳐져서 하나님의 전체 의도를 이루는 것처럼 말입니다. 어떤 부분이 직접 나와 관련성이 없는 것처럼 보여지지만 결국에는 연관성을 가지는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이 역사하신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우리는 우리 시대속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 시대를 관통하여 성경의 인물들과 믿음의 선진들과 신앙적인 영향을 주고받게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 함께 섬기는 동역은 항상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일이죠.

: 앞으로의 출판 계획은요? 특별한 계획이 있으신가요?

서: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는 순간까지 힘을 주시는 한에 있어서 계속 섬기고 싶습니다. 지금처럼 교회를 섬기거나 은퇴를 한 다음에도 은혜를 주시는대로 아주 그치지 않고 계속 하려고 합니다. 훌륭한 기독교 고전 중에 아직도 소개되지 않은 분들 책들이 많아요. 이번에 발간한 ‘간절목회‘의 존 에인절 제임스 목사님도 대단한 저자입니다. 우리가 몰랐던 분이잖아요. 하지만 영국교회에서 은근히 큰 영향력을 나타낸 아주 영적인 거목이었습니다. 이처럼 아직도 한국 교회에 소개되지 아니한 그런 분들을 소개하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은혜주시길 바랍니다.

: 그렇게 되리라 생각되고요. 그렇게 하실 일에 대해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두 가지 질문만 더 드리겠습니다. 우리 시대의 목회자들과 성도들을 위해서 꼭 추천하고 싶은 저자와 책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서: 칼빈 목사님은 너무 유명하시니까 다 아실테고요. 제가 주목하고 싶은 세 분은 존 오웬, 조나단 에드워즈, 로이드 존스입니다. 이분들은 신학적, 목회적, 교리적으로 한 줄기로 연결되어 있어서 참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이분들 책을 읽으면 좋겠고요. 그리고 최근에 번역한 존 에인절 제임스 목사님의 ‘간절목회‘와 ’구원을 열망하는 자들을 위하여‘라는 책을 추천하고 싶어요. 이중에서 후자의 책은 한사람이 불신상태에 있다가 영적각성을 받고 그리스도 안에 안착하기까지의 과정을 상당히 섬세하게 다루고 있는데, 아주 중요한 가이드를 받게 될 것입니다. 꼭 읽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다음에 무슨 책을 읽어야 하는가 하면, 저는 제가 번역한 책 중에 안 읽어도 좋을 책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웃음)

: (웃음)예. 알았습니다. 중심교회 성도님들은 책을 많이 읽는 편인가요?

서: 처음에는 책을 번역하고도 얘길 안했어요. 성도님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 싫어서요. 그런데 요즘에는 번역한 책을 제일 먼저 우리 성도들에게 읽힙니다. 우리 교회를 생각하면서 읽고 또 강단에서 말씀드린 내용을 함께 나누니까 인제는 책이 나오면 기다렸다가 읽고들 합니다.

: 마지막 질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실 그때까지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으시다면요?

서: 미력하나마 제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은사를 따라서 어떻게 설교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젊은 목사님들에게 멘토역할을 해 드리고 싶습니다. 45세 이후에 있는 분들에게도 필요한 부분이지만, 40대 이전에 막 담임목회를 위해서 나가거나 또는 부교역자 단계에 있는 분들이 설교를 어떻게 해야 될까 하는 고민이 크잖아요. 그런 분들이 원한다면 기꺼이 헌신할 용의가 있습니다. 몇 사람이라도 강단에서 바르게 설교하고자 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분들에게 가이드 역할을 해 줄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고 있습니다.

: 꿈이 아니라 현실로 꼭 이루어지기를 원하며, 응원드리겠습니다. 긴 시간이었는데, 말씀을 듣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네요. 많은 생각이 있습니다만, 하나님께서 특별하신 방법으로 한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들을 이루어 가시는 섭리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서: 저도 정말 하나님의 은혜에 너무 감사하고요. 저같은 사람이 정말 이렇게 큰 하나님의 역사에 이렇게 동참해서 섬길 수 있는 은혜를 주셨다는 생각을 할 때 너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 강직하면서도 부드러운 목회를 통해서 많은 후배 목회자들에게 본이 되어 주신다는 생각이 들고요. 앞으로도 강건하게 하시는 사역들을 계속적으로 해주시길 바랍니다. 목사님의 신앙 정신을 따라서 저희들도 그리스도의 보편교회의 지평을 확장하는 일에 함께 더욱 힘을 내야 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서: 그렇죠.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리스도의 날에 완전하게 가시적으로 드러날 보편교회를 기대하며 교회의 본질에 충실하려고 노력해 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 교회의 가치를 함께 추구해 가야겠지요. 이런 귀한 인터뷰를 기회를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 아닙니다. 긴 시간 말씀 나눠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것으로 서문강 목사님과 함께 한 SDG 인터뷰 시간을 마치겠습니다.

2013.4.10. 중심교회 서문강 목사님 서재에서

※ 인터뷰 녹음 파일은 제공하지 않습니다.

※ 본 인터뷰의 권리는 SDG개혁신앙연구회에 있으며 무단 전재 및 복제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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