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찬 목사 인터뷰

 

ㅣ 주나그네 목사
송 ㅣ 송영찬 목사

: 예. 오늘 SDG 인터뷰 시간에 귀한 목사님 한 분을 모셨습니다. 오랫동안 기독교 언론 분야에 몸담고 계시면서 좋은 책과 글들을 통해서 이 땅에 개혁신앙을 꿈꾸는 여러 분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고 계신 송영찬 목사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송: 반갑습니다.

: 우선 저희 연구회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송: 고맙습니다.

: 목사님을 뵙고자 한 것은 무엇보다도 개혁신앙이라는 공통분모를 생각했기 때문인데요. 간단한 목사님의 성장 과정과 개혁신앙 형성 과정에 대해서 여쭙고 싶습니다. 아울러 신학공부를 하시게 된 구체적인 계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송: 우리 한국교회의 일반적인 병폐를 그대로 가지고 시작한 거거든요. 무슨 말인가 하면, 보통 교회에서는 목사후보생을 선발을 해서 당회의 지도아래서 교육을 하고, 성장을 시키고, 목사로 세워야 하는데, 우리 때(목사님의 어린 시절을 가리킴-편집자 주)만 하더라도 교회에 그런 개념 자체가 굉장히 빈약했었지요. 교회에서 그런 생각조차 못 하던 시대였어요. 그러다 보니 대부분 목사로 헌신한다는 것은 교회의 결정이 아니라 개인에 의해서 판가름이 났죠. 저 같은 경우도 고등부 학생회에서 굉장히 열심히 활동을 했었는데, 이후에 특별한 자각 없이 신학교를 가게 되었어요. 목사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죠.

: (약간 당황하며) 아… 그러세요?

송: 그렇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 때 같이 활동했던 친구들 중에 상당수가 목사가 되어 있더군요. 그 당시 같이 공부하고 놀았던 친구들 중에 대여섯 명이 교회에서 무지 열심히 활동했거든요. 학교만 끝나면 교회에서 살 정도로요. 그런 열심들이 나중에 자연스럽게 신학교를 가게 되는 결과가 되었던 것 같아요. 나중에 신학 공부를 한 뒤에 돌이켜 보니까 ‘참 무모한 짓을 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교회의 어떤 필요나 요구에 의해서 목사가 된 것이 아니라 순전히 자신의 열심과 취향 때문에 목사가 된 거죠. 그 자체가 정상적인 일이 아니에요. 목사가 되는 일을 자신이 선택했다는 것은 잘못된 경우인 겁니다. “누가 너를 목사 되게 했느냐?”라고 묻는다면 “교회가 나를 불렀습니다.”라고 고백을 해야 하는데, 우리들 같은 경우는 교회가 부른 게 아니고 자신이 좋아서 간 겁니다. 목사가 되어야 하는 교회적 동기나 이유가 없었다고 할 수 있어요.

: 그래도 신학교에 간다고 할 때는 뭔가 신학에 대한 관심이든 동경이 있지 않았을까요?

송: 그렇지 않아요. 좀 막연했어요. 그 당시만 하더라도 교회에서 신학교를 간다고 하면 선지동산에 가는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환영해 주는 분위였어요. 그러고 나서 교회가 관리해 주는 것은 하나도 없어요. 저는 시골에서 자라서 신학교가 있는 서울로 왔는데, 이후로는 교회나 당회가 나를 관리해 준 것도 아니고, 지도해 준 것도 없고, 내가 알아서 교회를 찾아 전도사 생활도 했고, 다 제가 혼자 감당해야 할 몫이었죠. 지금 생각해 보면 기형적인 형태로 목사가 된 것이죠. 그러니까 질문하신 내용은 아무것도 해당되는 게 없어요.

: 하지만 처음에는 잘 몰랐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목사에 대한 소명의식이 더 분명해지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요? 신학교를 들어가 비로소 신학을 공부하면 목사로서의 소명을 느끼시지 않으셨나요?

송: 그럴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신학을 공부하면서 도리어 교회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목사가 되겠다는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점에 대해서 늘 고민이 있었어요. 다른 친구들은 그 부분에 대해서 별로 고민 없이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고, 목회를 하고 있는데 나한테는 그게 늘 고민이었어요. ‘이건 아니다. 교회가 부르지 않았는데 어떻게 내가 목사가 되겠는가.’ 하는 고민이 지금까지도 해결이 안 된 것이죠.

: 그런 고민을 지속적으로 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 것 같은데, 혹시 개혁주의를 알고 나서부터였나요?

송: 대학을 졸업하고 신학원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그런 생각을 못했어요. 남들처럼 그냥 신학 공부하면 목사가 되는가 보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졸업하고 개혁주의에 대해서 공부하는 중에 ‘교회 직분은 교회가 세우는 것이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후로 그게 늘 고민이 되었던 거지요.

: 그렇군요. 결국 목사님 말씀은 개혁신학을 통해서 교회에 대해 보다 성경적인 이해를 갖게 되면서 목사로서의 소명에 대해서도 더 많은 고심을 하게 되셨다는 말씀인데요, 그래서인지 목사님이 알고 계신 개혁신학에 대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지네요. 우선 개혁신학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목사님에게 특별히 영향을 미친 어떤 사건이나 인물이나 책이 있었는지가 궁금합니다.

송: 있죠. 총신대학을 마치고 군복무를 했어요. 전역을 하고 돌아왔더니 학내 분규가 생겨서 학교가 엉망이 되었어요. 그래서 신학원 입학을 잠시 보류를 하고서 기독교문사라는 출판사에 취직을 했습니다. 거기서 기독교 대백과사전 편찬하는 일을 돕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신학적 자료들을 접하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느낀 게 뭐냐면 지금까지 총신대에서 배웠던 신학은 굉장히 적은 분량이라는 것이었어요. 그보다 훨씬 넓은 신학의 세계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되었죠. 그곳에서 3년간 계속 신학 자료를 접하다가 마침 합동신학교(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전신임)가 개교하면서 총신대학원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합신으로 갈 것인지를 고민하다가 합동신학교에 가기로 했어요. 구약 분야에 김성수 교수님과 신약 분야에 최낙재 목사님이 계셨거든요. 먼저 성경에 대해서 실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여전히 교회를 잘 몰랐어요. 합신을 졸업하고 강도사 고시를 치른 후에 전주서문교회로 가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 교회는 합신에 소속되어 있다가 갈라져 나왔는데, 그런 이유때문인지 합신에서 본 강도사고시를 인정 안 하겠다는 거에요. 어쩔 수 없이 전주서문교회를 나오면서 교회에 대해 다시 한번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 거죠. 그러면서 마침 김홍전 목사님을 만나게 된 거에요. 성약교회에 교인으로 있던 지인이 전주로 내려오게 되었는데, 그분과 아는 목사님, 저 이렇게 셋이서 김홍전 목사님 육성 테입을 듣고, 프린트를 읽고, 공부하면서 교회에 대해 새로운 개념을 갖기 시작한 거죠. 사실 김홍전 목사님도 완벽한 개혁주의를 얘기하진 않아요. 그러나 그분의 가르침 속에서 교회가 무엇인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상당히 많은 부분을 깨닫게 되었지요. 여태까지 알고 있던 일반적인 교회관이 아닌 상당히 성경적인 교회관에 대해서 김홍전 목사님을 통해 많이 배우게 된 거죠. 그러면서부터 그동안 목사가 되기 위해서 살아왔던 것이 참 부질없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 이 상황이 합신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이후의 일인가요?

송: 그렇죠.

: 목사 안수를 받은 이후에 김홍전 목사님의 테입과 글을 통해서 교회에 대해 새로운 각성을 하게 되신 거군요.

송: 그렇다고 할 수 있죠. 막상 목회를 한다는 것이 나로서는 굉장히 두려운 일이었어요. 교회가 부르지 않았고, 교회가 직분자로 세우지 않았는데 목사가 될 수 있느냐 하는 부분이 아주 심각한 고민으로 와 닿았죠. 다른 사람 문제가 아니고 내 문제였어요. 그렇게 7,8년간 계속 스터디를 하였죠. 그러는 도중에 마침 기독교개혁신보사에서 편집국장을 구한다고 하길래 이리로 오게 되었던 거죠.

: 그럼 그 과정에서 현장 목회는 안 하셨던 건가요?

송: 못 했던 거죠. 교회가 부르지 않은 목사에 대해 고민하면서 계속 공부만 했던 거죠.

: 이미 목사 안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요?

송: 목사 안수를 받은 것은 하나의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어요. 하지만 알다시피, 보통 노회에서 목사 안수 할 때에는 안수 받는 사람을 교회가 청빙을 하든지, 아니면 노회가 파송을 하든지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교회로부터 청빙을 받지 못한 상황이었어요. 목사로서 굉장히 큰 딜레마였죠. 그러던 중에 마침 신문사 편집장 자리가 난 덕분에 그나마 기관목사로서 이 일에 봉사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여기에 오게 된 거예요. 좀 특이한 케이스죠.(웃음)

: ‘특이하다’는 표현은 일반적인 목회자의 경우와 비교하면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송: 좀 더 부연한다면, 사실은 자신이 아무리 목사로서의 어떤 소명을 갖고 있고, 충분히 자질이 있다고 생각한다 할지라도 교회가 부르기 전까지는 목사가 아니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제가 목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던 때엔 이런 생각을 하지도 못했고, 말해 주는 사람도 없었어요.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총신대학에 들어가던 때가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의 일인데 아무도 이런 말을 해 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저 자신이 좋아서 하는 것이라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던 거죠. 이것부터 잘못 된 거죠. 첫 단추가 잘못 껴진 거예요.

: 목사로서의 소명에 관한한 교회적 부르심보다 개인의 의식이 우선된다는 것이 문제라는 말씀이군요.

송: 그렇죠. 자신의 주관적인 소명에만 관심을 둘 뿐, 외적 소명으로서의 교회의 부르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던 거죠.

: 그런 점에서 목사님이 목사라는 직함을 가지고 실제적으로 헌신하게 된 곳이 기독교개혁신보라고 말할 수 있겠군요.

송: 그렇습니다.

: 기독교개혁신보사에 재직하신 지 꽤 되셨잖아요? 몇 년 되셨죠?

송: 1995년부터니까 거의 18년 정도 되었네요.

: 그동안 줄곧 이 일만 하신 건가요?

송: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도중에 한 2년 정도 쉬었어요.

: 그렇다고 하더라도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기독교 언론분야에 몸담고 계신데요. 목사이면서 교회가 아닌 언론계에 줄곧 있다는 것은 조금 특별한 일 같이 생각됩니다만, 지금 하시는 일은 만족하세요?

송: 만일 개인 언론사 같았으면 목사가 있을 필요가 없는 거죠. 그러나 교단에서 직접 운영하는 언론사이기 때문에 교단의 신학과 관련된 부분에서 봉사하는 기관으로서 이 일은 목사가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어떤 교단 신문에서는 목사가 아닌 분이 편집국장을 하기도 하는데, 그건 교단이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봐요. 교단의 기관 목사는 말 그대로 교단의 신학을 대변할 뿐만 아니라 그걸 계속 확산시키고 전국 교회에 방향을 제시해 주는 점에 있어서 목사의 역할과 같은 것이죠. 일반적인 목회와 다를 바 없는 차원에서 이 일을 하고 있죠. 대단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 말씀하신 대로 기독교개혁신보가 합신의 교단지, 혹은 기관지 이렇게 표현해도 가능하죠?

송: 당연히 그래야죠.

: 그렇다고 한다면 합신에서 표명하고 있는 신학의 정신을 드러내고 그것을 많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전달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보통 합신을 말하자면 박윤선 목사님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지 않습니까? 합신이라고 하면 그분이 지향한 신학을 얼마나 충실하게 잘 반영하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는데, 목사님께서는 기독교개혁신보가 합신의 초석이 되는 박윤선 목사님의 신학과 정신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아니면 부족한 면이 있다고 한다면 어떤 면에서 그러한지 소감과 함께 말씀해 주세요.

송: 일단 박윤선 목사님이란 분의 역사적인 위치를 돌아봐야 되는데요. 박윤선 목사님은 고신에서 나오실 때에 그분 나름대로 고민하고 있었던 부분이 하나 있었어요. 그게 뭐냐면 박윤선 목사님은 고신에서 개혁파 교회(리폼드 처치)를 세우기 원하셨어요. 그런데 고신에서 박윤선 목사님의 개혁파 교회 신학을 이해하지 못 했던 것이죠.

: 말씀하신 개혁파 교회와 장로교회와 차이점이 있나요?

송: 예, 박윤선 목사님은 화란의 개혁주의를 가져 온 거에요. 예를 들면, 총회와 노회와 당회로 구분 될 때에 당회가 제1순위에요. 그런데 이전까지만 해도 이전까지 한국 장로교회에서는 일반적으로 당회보다는 노회가 더 크고, 노회보다는 총회가 더 크다고 생각해 왔어요. 그러다보니까 총회, 노회, 당회의 관계를 수직적인 구도속에 생각해 왔었어요. 하지만 박윤선 목사님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게 아니었어요. 당회가 최우선적이고, 그 다음에 그 당회의 연합체인 노회가 있고, 그 노회의 연합체가 총회라는 수평적 개념인 거죠. 그 다음에 박윤선 목사님 생각 중에 새로운 하나는 총회는 폐회가 아니라 파회의 개념이라는 것이죠. 그러므로 노회와 당회는 상설기구이지만 총회는 비상설기구인거죠. 그러나 대부분 한국 장로교회에서는 총회를 상설기구화 하면서 총회장이 가장 상위에 있는 것으로 생각해 왔던 거지요. 박윤선 목사님이 이러한 개념을 바꾸길 원했던 것이죠. 그런 면에서 그분은 훨씬 더 개혁파적인 개념을 갖고 계신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반면 한국 장로교회는 정치제체를 수직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고 적용하다 보니까 결국 교권주의로 나아가게 된 거예요. 그러나 박윤선 목사님은 교회의 최고 권위를 일단 당회에 두고서 그보다 조금 넓은 의미로서의 노회와 총회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죠. 그것을 고신에서도, 총신에서도 실현하지 못했어요. 왜냐하면 정치적인 문제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거죠. 그래서 총신에 계실 때에 가장 신경썼던 부분이 성경을 주석하는 일이었어요. 일단 목사들이 성경부터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제 생각에는 목사들이 성경을 더 많이 알면 교회정치 문제도 자연스럽게 수정되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셨던 것 같아요. 이러한 목사님의 정신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합신의 헌법이예요. 합신이 태동할 때, 박 목사님이 교단 헌법을 초안하였어요. 그리고 나중에 헌법 주석을 쓰셨어요. 이 헌법 주석을 보게 되면 박윤선 목사님이 어떤 교회의 정치관을 갖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 다 나옵니다. 그것이 우리가 이해해야 될 부분이고요. 당시 한국교회의 전반적인 신학적 수준이 이런 것을 논의하기에는 상당히 미흡한 상황에서 박 목사님은 합신을 통해서 구현해 보려고 애썼던 것이죠. 합신의 초창기 때부터 이러한 부분을 강조하셨는데, 안타깝게도 합신이 세워진 지 불과 8년 만에 돌아가셨어요. 완성을 못 보신 거죠. 합신이 박윤선 목사님의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박 목사님의 개혁정신이 초창기 합신 교단 헌법에 상당히 잘 담겨져 있었음에도 지난 30년 동안 하나씩 뜯어 고쳐서 현재 합신 헌법은 그 정신으로부터 상당히 후퇴되어 있어요. 한 가지 예를 들면 ‘총회가 파회다.’라는 것을 구태여 고쳐서 지금은 폐회라고 해요.

: 여타의 교단들과 차별이 없다는 말씀이군요.

송: 그냥 그렇죠. 왜 박윤선 목사님이 이걸 파회라고 했을까 하는 생각없이 파회라고 하니까 마치 총회가 없어지는 듯한 착각을 하는 거에요. 원래 총회가 파회가 되기 때문에 상비기구를 두어서 활동하게 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하면 총회장이나 임원은 사실상 별 존재 의미가 없어져요. 이것이 싫은 거에요. 교단장으로서 총회장이 늘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파회가 아니라 폐회라고 하고 싶은 거지요. 이것부터가 우리가 아직 박윤선 목사님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하는 점입니다. 박윤선 목사님을 찾으면서 헌법은 자기 마음대로, 자신들 편의에 따라 자꾸 바꾸는 거예요. 그래서 지난 30여 년 동안 계속적으로 뜯어 고쳤어요. 심지어 정치와 예배 부분에 있어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그런데 알다시피 웨스트민스터 정치모범과 예배 모범은 장로교에서 가장 선명하고 중요한 장로교 정신을 담고 있잖아요.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요. 이 두 가지는 굉장히 신사적이고 민주적으로 되어 있어요. 그러면서 상당히 양심의 자유를 허락하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 목사들에게 이것이 불편한 거예요. 목사들 생각에 헌법이라면 명백한 조항들이 있어서 ‘이렇게 하면 된다.’, 혹은 ‘이렇게 하면 안 된다.’라고까지 말해 주어야 마음이 편한 거예요. 그러다 보니 교단 헌법이나 예배 모범, 권징들을 보게 되면 상당히 사회법적인 제약을 많이 두게 되었어요. 말하자면 ‘이런 잘못을 하게 되면 면직이다. 이런 잘못을 하게 되면 몇 년 형이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말해 주어야 속이 편한 거예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언급된 내용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것을 근거로 어떻게 해결할까를 생각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그러면 머리가 복잡하고 힘들거든요. 때로는 내가 저 사람을 무너뜨리고 싶은데 이 조항 갖고는 안 되니까 부차적인 조항을 자꾸 집어넣어서 올무를 만들기도 해요. 암튼 말하자면 대한민국 헌법이 있으면, 그 아래에 민법, 상법 등의 형법이 있는데 우리는 이 형법 조항을 헌법에다 다 집어넣어 버린 거예요. 원래 헌법이란 전체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그 다음에 구체적인 것은 형법이나 민법에서 따지게 되는데, 교회에는 형법, 민법과 같은 법이 없으니까 헌법 안에다 이런 조항들까지 다 넣어 버린 것이죠. 대한민국 헌법이나 교회 헌법이나 계도적인 차원에서 유지되어야 하는데, 언제부터인가 교단 헌법이 형법이 되어버렸어요. 이런 부분이 어디에서 문제가 되는가 하면, 교회 질서의 제1원칙인 양심의 자유를 자꾸 어떠한 제도적인 틀 안에 집어 넣어버리는 꼴이 된거죠.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개혁신보는 가급적 박윤선 목사님이 합신을 통해서 구현하고자 했던 개혁주의 교회관을 끊임없이 제시하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 목사님 말씀에 따르면, 합신 교단조차도 박윤선 목사님이 가리키는 달을 보지 못하고 손가락 끝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갖게 됩니다. 박윤선 목사님이 제시한 개혁주의 정신의 기본선을 잘 지킨다고 하더라도 교회가 크게 변질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런 점에서 기독교개혁신보와 같은 기독 언론으로서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이렇게 교단적으로 많은 변화가 감지되는 상황에서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자 한다면, 상당한 고충과 갈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기는 것이 당연한데요. 어려움은 없으셨어요?

송: 끊임없는 도전과 응전의 연속이지요. 그것은 비껴갈 수 없는 숙명이라고 하는 것이 낫겠네요. 우리 한국교회는 초창기부터 어떤 개혁주의 정신에 입각해서 교회가 출발한 게 아니라 정치적인 필요에 의해서 시작이 된 거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김재준 목사 사건으로 인해서 교단이 갈라지고, 또 고려파 때문에 교단이 갈라지고, 또 WCC 때문에 교단이 갈라지게 되고, 그 다음에 79년, 80년대에 주류, 비주류로 합동측이 갈라지게 되고, 그런 와중에 우후죽순 여러 교단이 만들어 지게 되었어요. 이러한 역사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하면, 교회의 본질과 관련하여 교회가 무엇이며, 개혁교회가 무엇인가, 장로교회가 무엇인가를 연구하는 게 아니라 상당히 정치적인 입지들이 항상 배후에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죠. 이제는 우리 목사들뿐만 아니라 특히 신학교 교수들이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을 갖고서 교회의 원형을 선명하게 구현해 내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연구해야 하지 않겠나 생각됩니다. 기독교개혁신보도 이러한 점을 염두하면서 선두에 서서 가고 싶은 것이죠.

: 목사님께서는 한국 기독교 언론에 대해서 어떤 평가를 하고 계시는지요. 또 문제가 있다면 어떤 점이며, 시급하게 개선해야 할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말씀을 해 주십시오.

송: 일단 기독언론사와 기독방송사로 나눌 수 있습니다. 방송사는 CBS라든지 CTS가 있고요. 언론사 역시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집니다. 하나는 교단에서 직영하는 교단지가 있고, 그 다음은 개개인이 사주가 돼서 운영하는 교계지가 있어요. 후자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다보니까 늘 신학과 별개로 움직일 수밖에 없겠지요. 교단지의 경우에는 그 교단의 신학을 충분히 선전하고 옹호해야 될 그런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편집진들이 자기 교단 신학에 대해서 잘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아요. 자기 교단 신학에 대한 자존감이 약해 보여요. 그래서 어떤 신학적인 색깔을 나타내지 못하고 말 그대로 뉴스 전달 매체로 끝나고 말죠. 교단지라고 하면 교단의 성격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기사와 원고를 실어야 하는데, 자신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교계 행사 등을 대서특필하는데 힘을 허비하고 있어요. 또 하나의 문제가 있는데 광고주의 횡포에요. 광고주들이 돈줄을 쥐고 있다 보니까 교계지들은 광고주들에 의해서 좌지우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주로 교계에서 돈줄을 쥐고 있는 분들이 건전한 신학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이분들의 요구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어요. 영리를 추구하는 교계지에서는 아주 현실적인 문제가 되는 거죠. 신학적으로 따지지 않고 오로지 돈으로만 거래가 된다고 할 수 있어요. 심지어 교단지의 경우에도 그 교단에서 힘이 있는 사람이나 돈이 좀 있는 사람의 영향이 미치게 되면 이분들과 관계가 있는 이들의 글이 실릴 수밖에 없어요. 그러다 보니 영향력 있는 사람에 따라서 이쪽으로 쏠렸다가 다음에는 저쪽으로 쏠렸다가 하는 거예요. 방송사는 더 심하고요. 기독 언론이라고 하지만 방송사나 언론사나 편집하는 사람들이 신학에 대한 투철한 의식이 빈약할수록 권력과 시류에 따라서 늘 목소리가 바뀌게 되어 있어요. 이게 오늘날 한국 기독 언론의 가장 큰 문제가 아닌가 판단됩니다.

: 우리가 흔히 언론을 정론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정론을 펼치는 언론이 되기 위해서는 물질에 휘둘리지 말고 편집인이 소신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 기독교 언론 분야에서도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은가 봅니다.

송: 대부분 시류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더 안타깝죠. 예를 들어 어떤 편집인이 소신을 지키다가 굶어 죽었다, 혹은 순교했다고 하면 굉장히 의미있을텐데, 그런 경우가 극히 드물지요. 이것은 저하고 신학이 같지 않아도 상관이 없어요. 우리하고 다른 신학적 입장에서 신문을 만드는 사람이라도 끝까지 자신의 신학을 지키다가 쫓겨났거나 죽었다고 하면 그 사람은 굉장히 훌륭한 편집인이죠. 그런데 그런 경우는 거의 없어요. 왜냐하면 편집인들이 알아서 기기 때문이에요. 굉장히 불행한 현실이지만, 이것이 우리 한국 언론의 현재 모습 같아 보여요. 한국 언론의 역사가 한 6, 70년이 된 것 같은데 이 기간 동안 소신껏 편집하는 분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 목사님은 어떠세요? 목사님은 소신을 지키면서 가시는 데 어려움이 없으세요?

송: 당연히 있죠. 늘 그런 도전을 받고 있어요. 이렇게 말하면 굉장히 우스운 이야기같지만 순교자의 정신이 아니고서는 못 버틴다 생각하고 하는 거죠. 하지만 다행히 우리 교단은 아직 신사적이에요. 그러니깐 아직은 버틸만 하죠.(웃음)

: 그렇군요.(웃음)

좀 가벼운 질문 한 가지를 드리지요. 가끔 기독교개혁신보를 통해 목사님께서 직접 인터뷰를 진행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늘 대담을 진행하시는 입장에서 오늘은 말씀해 주시는 입장이 되셨는데요. 그동안 많은 분들을 만나셨을 것 같은데, 가장 인상에 남는 일과 또 가장 안타까웠던 일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송: 우리 신문사에서 진행하는 인터뷰는 일종의 의도적인 것이죠. 다시 말하면 어떤 사람을 선전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사람을 통해서 우리 교단을 알리는 것이 주목적입니다. 그것이 교단지 인터뷰의 특성입니다. 사실 좀 죄송한 얘기지만 제가 인터뷰 하는 대상은 소재일 뿐이고요. 저의 관심은 우리 교단의 신학과 정신을 어떤 분을 통해서 대신 드러내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상당히 많이 죄송스럽지만 별로 안타까운 것도 없고, 그렇다고 기념할만한 인터뷰도 없습니다.

: 이해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인터뷰라는 형식을 통해서 많은 분들을 만나보셨을텐데요, 언론인의 관점에서 여러 신학자와 목사를 만나실 때, 그 인터뷰를 통해서 한국 교회의 어떤 상태나 현실에 대해서 좀 객관적인 시각을 갖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어떠셨나요?

송: 그 부분은 별로 관심사가 아닙니다. 사실은 좀 심하게 말하자면, 제가 그분들을 활용하는 것이죠. 유명한 목사와 하나 시골 교회 목사와 인터뷰를 하나 결론은 항상 똑같아요. 왜냐하면 인터뷰하는 일이 개인에게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교단의 정신을 알리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죠.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목사님이 은퇴를 하실 때도 인터뷰를 했는데요. 저의 관심사는 그분의 목회를 칭송하거나 공로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교단이 추구해야 될 건전한 신학이 무엇인가에 항상 초점을 두어서 인터뷰를 진행하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습니다. 저의 목적을 충족시킬 분이 아니라면 굳이 인터뷰를 할 이유가 없죠.

: (웃음) 그럼 좀 더 구체적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관점에 따라서 다를 수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언론인이시니까 일반 목회자보다는 한국 교회의 실상에 대해서 좀 더 예민하게 보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목사님이 바라보시는 한국 교회의 현실은 어떠한 지,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한국 교회의 세속화와 타락의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송: 정말 하고 싶었던 얘기인데요. 지난 한국 기독교 130년을 시기별로 나눠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한국 교회는 초창기 외국 선교사들의 영향력이 강했을 때부터 교회라는 의식이 매우 부족하였습니다. 그냥 선교사들이 지도하는 대로 따라했던 것이죠. 그런 잔재가 지끔까지 남아 있어요. 예를 들면 총회 때에 선교사석은 따로 남겨두는 관행이 있습니다. 선교사들은 언제든지 총회에 참석만 하면 정회원으로서 발언권이 주어집니다. 선교사라고 하더라도 각 노회에 소속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도 말입니다. 전에는 선교사가 왕처럼 대우받던 때도 있었어요. 장로교 법대로 한다면, 총회 선교사로 나가더라도 노회의 회원이 되어야 하는데, 대개 총회 선교사라는 이름으로 아주 독자적인 활동을 합니다. 이것은 잘못된 전통입니다. 만약에 어떤 선교사가 총대로 총회에 참석해야 한다면 노회가 그분을 총대로 선출하여 파송해야 하는데, 여전히 그렇게 하지 않아요.
그 다음에 한국교회가 일곱 명의 목사를 안수해서 어느 정도 한국 교회 목회자들에게 점점 힘을 실려갈 때에 극단적인 문제 하나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것은 신사참배 수용 문제였어요. 당시 많은 선교사들이 반대하였지만 한국 교회 목사들에 의해서 신사참배가 가결되게 됩니다. 이건 굉장히 불행한 사건인데요. 그동안 선교사들의 지도를 잘 받던 한국 교회 목사들이 더 이상 그들의 조언을 듣지 않는 변화가 여기서부터 나오게 된다는 것은 굉장히 큰 불행입니다. 더이상 선교사들의 간섭을 받지 않겠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교회 목사들의 의식이 높아졌다는 것을 반영하는 일이기도 한데, 오히려 신사참배 가결이라는 수치스러운 결과를 내었다는 점에서 무척 안타까운 일이죠. 그러다 보니까 한국교회의 방향이 정상적인 교회상을 추구해 나가기보다는 늘 선교사와의 정치적인 관계에 더 많은 신경을 쓰게 되었던 것이죠. 그것이 폐쇄되었던 평양신학교가 해방이 된 후 복구되면서 또 다른 극단적인 한 가지 문제로 나타나는데, 서울에서 다시 평양신학교가 복구될 때에 선교사로부터 힘으로는 많이 독립을 했는데, 자율적으로 김재준 목사의 신학을 제어를 못하게 된 겁니다. 다시 말해 선교사로부터 힘의 독립은 했지만 신학적으로는 독립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김재준 목사가 조선신학교를 만들게 되었던 거죠. 그분의 신학이 명백하게 잘못된 것을 알았다면 마땅히 교회의 권징 절차를 밟았어야 했는데, 신학이 부재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권징이 제대로 시행될 수 없었어요. 선교사들로부터 힘의 독립을 하겠다고 무지 애를 쓴 목사들이 정작 교회의 신학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던 거예요. 언제나 정치적인 면에서만 교회를 바라보았다는 것이죠. 그것이 지난 130년간의 우리 장로교회가 처한 가장 뼈아픈 현실이었어요. 그 와중에서 그나마 교회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바른 신학을 교회에 가르쳐야 한다며 등장한 분이 박윤선 목사님이셨어요. 박 목사님이 귀하다는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지난 30년을 돌이켜 본다면, 여러 분들이 미국, 화란, 남아프리카, 독일 등지에 가서 공부를 하면서 신학에 대한 견문이 높아지게 되었고요. 참 다행스럽게도 우리 교회 안에 신학의 소양을 갖게 된 학자들이 배출되었어요. 하지만 여전히 한국 교회의 토양은 좋은 신학자를 키워낼 만큼 좋은 편이 아니지요. 그러다 보니 개인이 가서 신학을 공부하고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면 그분들이 한국에 돌아와서도 갈 곳이 많지 않은 거죠. 한국 교회가 이분들을 통해서 좋은 열매를 얻을 수 있도록 함께 품고 가야 하는데 아직 그럴 실력이 없는 거죠. 이런 문제는 교단 차원에서도 해결하기 쉽지 않아요. 이 문제에 있어서 시급한 건 목회자 개개인의 실력이 많이 향상되어서 교회의 본질과 직분과 표지와 예배와 관련하여 구체적인 사안들에 대해서 명확한 이해를 가져야 됩니다. 교회가 무엇인가, 교회 직분이 무엇인가, 교회 표지가 무엇인가, 교회 예배가 무엇인가, 이런 구체적인 사안들에 대한 명백한 이해가 앞서야 되는 거죠. 그래야 이 학자들도 와서 할 일이 생깁니다. 그런데 지금은 여러 면에서 총체적 난국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스타 목사들이 탄생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어요. 바르게 잘 가르치는 교수님들은 점점 더 설 자리를 잃어가고 대신에 스타 목사들이 생겨나게 된 거죠. 그들은 유명세를 타게 되고, 비싼 차를 타게 되고, 돈을 갖고 실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서게 되면서 한국교회의 가장 큰 병폐가 나타났다고 할 수 있어요. 저는 한국교회에서 더 이상 스타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봐요. 우리가 말하는 이모 목사, 홍모 목사, 박모 목사, 이런 스타 목사의 세대는 이제 끝나야 돼요. 물론 앞으로 교회 안에서 스타를 꿈꾸는 사람들이 계속 나오겠지만, 더 이상 어떤 스타 목사를 추종해서는 안 돼요. 대신에 목사 개개인이 신학과 고백에 있어서 기본기를 충실히 해서 목회 현장에서 잘 드러내고 교회 하나하나를 튼튼하게 키워가는 데서 진정한 교회 개혁이 시작된다고 봅니다.

: 목사님의 말씀을 정리하면, 한국 교회 병폐의 원인은 성경적 교회론의 부재와 좋은 신학의 실종이라고 요약하고 싶은데, 그렇게 볼 수 있을까요?

송: 그렇습니다. 우리 선배 목사들이 성경과 신학에 대한 연구는 등한시한 채, 선교사와의 힘의 갈등에 너무 예민했던 것이 사실이지요.

: 그럼 역으로 이런 가정도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국 장로교회적 관점에서 지난 교회 역사를 되돌아 볼 때, 선교 초창기부터 제대로 된 교회 정신과 신앙고백을 전수받지 못한 탓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장로교의 표준 문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현실이지 않았습니까? 그러다 보니까 한국 장로교회가 신학적 기반이 아주 약한 상황에서 몸만 비대하게 자라온 결과가 아닌가 싶은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송: 당연합니다. 아시다시피 한국 장로교는 선교 초기에 인도에서 만든 12신조를 가지고 있었어요. 한국 장로교회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교단의 공식 신앙고백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부끄러운 얘기지만 지금도 한국 장로교회에서는 이 고백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에요. 원래 장로교 목사라면 임직할 때, 서약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따를 것을 서약한다 말이에요. 이런 문제는 선교 초창기부터 시작되었어요. 한국에 장로교를 전파했던 선교사님들은 미국에서 수정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익숙했어요. 그나마 한국에서는 그것도 포기하고 당시 감리교라든지, 성결교라든지 다른 선교사들과 공조하기 위해서 12신조를 가져오게 됐지요. 그 중에서도 가장 불행한 일은 당시 함경도 지역에 선교를 도맡았던 캐나다 장로회 선교부는 자유주의 신학을 들여왔는데, 그 때문에 우리나라에 자생적 이단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어요. 특히나 함경도 지방에서 가장 많은 이단들이 등장하였지요. 왜 선교 초기부터 이런 문제가 발생하였는가 하면, 처음부터 성경적인 교회론과 개혁주의에 충실한 신앙고백의 정립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다 장로교 선교사들에 의해 교회 정치도 편법으로 제도화되었어요. 대표적인 것이 바로 영수 제도라는 것이죠. 영수제도라는 것은 어느 지역에 돈 많은 어떤 갑부를 영수로 임명을 해서 예배당을 제공하게 만들고, 그 영수가 실질적인 교회의 주인 노릇을 하게 만든 것이죠. 그러다 보니까 한국교회에서는 늘 연장자, 돈 많은 사람, 세력있는 사람, 하다 못해 목소리 큰 사람이 교회에서 주인 노릇을 하는 이상한 일이 생겨났어요. 오늘날 교회에서 장로나 집사와 같은 직분을 많이 남발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이제는 이런 부분들을 다 거둬내야 해요. 한 교회에 한 목사와 두 세 명의 장로와 집사만으로도 교회가 훌륭하게 설 수 있다는 모범을 가진 교회들이 많이 세워져야 해요. 또 한 가지 교회에서 설교와 성찬과 찬송과 기도가 거의 동일한 비중을 가져야 하는데, 설교만 잘하면 모든 것이 허용되는 그런 교회 분위기는 사라져야 해요.

: 좋은 지적이십니다. 전에 어느 화란 교수님으로부터 ‘신학은 결국 교회를 위해서 존재한다’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목사님께서 생각하시는 교회를 위한 신학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송: 교회를 위한 신학이라는 표현을 좀 구별해서 사용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신학은 교회 위에 있지 않아요. 그런데 지금까지 신학이 마치 교회를 이끌고 가는 현상이 계속 되어 왔던 거지요. 저는 그 이유를 신학교 문제라고 봅니다. 오랜 시간 동안 신학교 교수는 교회를 가르치는 말하자면, 목사를 가르치는 스승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남아 있어요. 그런게 갈수록 더 심화되면서 신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목사보다 높은 자리에 있다는 생각이 결국 신학이 교회 위에 항상 있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켰죠. 그런데 원래 신학교 교수는 누가 교수를 해야 되느냐. 교단에서 목회하고 있는 어떤 목사에게 “당신은 이번 학기에 이것을 강의해 주십시오.“라고 요청을 하면 그분이 신학교에 가서 그 학기를 봉사하고 돌아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신학교 교수 월급은 그가 회원으로 소속되어 있는 교회에서 주는 겁니다. 예를 들면 A라는 교회에 B라는 목사가 있는데 교단에서 우리 신학교의 어느 과목 강의는 B목사님이 맡았으면 좋겠다고 하면 교회는 그를 신학교에 파송해 주는 겁니다. 그러면 그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가르치면 됩니다. 그러다가 다시 교회로 돌아오면 졸업하는 학생과 이 목사는 같은 노회와 교단의 회원으로서 동등한 목회자로 존재하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신학이 교회 위에 서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체제처럼 한 교수가 신학교에서 30년을 교수하게 되면, 30년 동안 제자들은 그분 밑에 눌려 있게 됩니다. 그래서 신학이 늘 교회 위에 있는 것처럼 여기게 되고, 제자라는 분들은 무슨 문제가 있으면 교수에게 전화해서 ”교수님 이거 어떻게 해야 됩니까?”라고 묻게 됩니다. 사실 교회 안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면 같은 노회 회원들과 상의해서 해결을 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에요. 그런데 무슨 문제든지 스승에게 물어보고, 스승한테 해답을 구하니까 늘 신학이 교회 위에 있는 것처럼 생각되는 거죠. 사소한 신학적 문제까지도 항상 교수에게 물어보고 답을 구하려는 태도를 버려야 해요. 이러한 과정이 되풀이 되는 동안은 교회를 위한 신학이라는 말은 하나의 구호에 지나지 않습니다. 신학교 교수나 일반 목사나 다 같은 동료 의식이 있어야 해요. 그렇게 하게 되면 교회의 신학과 신학교의 신학은 늘 같이 가는 것이죠. 실제로 외국에서는 이렇게 하는 교단들이 있어요. 우리만 안 하고 있는 것이죠. 어떤 신학을 전공한 신학자라 할지라도 한 교회의 목사라 한다면 자신의 연구한 것을 노회와 총회에 의해서 같이 공유해야 해요. 모든 신학이 노회와 총회에서 같이 공유하게 되어야 교단의 신학이 되는 것이고, 거기서 동등하게 서로 의논을 해야 같은 동료가 되는 것이지요. 저는 그게 교회를 위한 신학이라고 봅니다. 이런 체제로 전환되지 않는 한 교회는 늘 신학교의 밑에 있는 부당한 현실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 동의합니다만 한국적 교회 현실에서 볼 때, 좀 이상적이지 않은가라는 지적이 있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우리 교단만 비추어보더라도 말씀대로 하자면, 일단 신학교가 교단에 속한 직영 신학교가 되어야 하고, 신학교수를 채용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새로운 변화가 있어야 하고, 노회역시도 이러한 사안들을 충분히 다룰 수 있는 역량이 있어야 할텐데 현실적으로 좀 거리가 있는 지적 아닌가요?

송: 어차피 개혁교회는 우리가 지금껏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일입니다. 그래서 해야 합니다. 해 보고서 그 다음에 어떤 문제에 대해서 대처를 해야지 해 보지도 않고서 뭔가 문제를 미리 염려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정말 안타까운 것은 우리 목사들에게 이런 인식이 없다는 거예요. 아예 생각을 못 하고 있어요. 목사들이 이런 의식을 해야 되죠. 이런 기회를 통해서 ‘장로교 원리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이야기가 자꾸 전달돼야 해요. 그래야 언젠가 이런 일이 가능해지지 않겠습니까? 만약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면 항상 지금처럼 있겠지요.

: 어떤 점에서 신학은 정보로서의 공유와 공여의 가치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요. 그렇다면 오늘날 목회자들의 무지는 근원적으로 신학교에서 바른 신학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탓도 있지 않은가 조심스럽게 진단해 봅니다. 목사님이 보시기에 오늘날 목회자들의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송: 무지무지 게으르다는 것입니다. 공부를 안 하는 것이죠. 예를 들면 어떤 노회에서 신학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노회에서 토의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그냥 총회에다 헌의안을 상정합니다. 그러면 총회에서 제대로 토의를 하느냐 하면 안 합니다. 총회에서는 신학연구위원회에다 넘겨 버립니다. 신학연구위원회는 교수들이 반절이상 포함되어 있잖아요? 결국은 이 문제는 교수들에게 묻는거나 똑같습니다. 헌의한 내용을 보면 충분히 노회에서 해결할 수 있는 정도의 신학적인 사안인데도 목사들이 토의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귀찮다는 것이지요.

: 노회의 기능과 직무에 관한 지적이신데요. 부족한 부분을 좀 더 말씀해 주시지요.

송: 장로교회에서 노회 회원이 된다는 것은 노회가 그 소속된 회원을 평생 책임지겠다는 뜻이거든요. 노회에서 목사에게 안수 주고, 강도사에게 인허하고, 목회자 후보생을 추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유럽 개혁파 교회에서의 경우는 좀 달라요. 지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하고 세웁니다. 그것은 그 목사에 대하여 교회가 책임지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장로교회에서는 노회가 그 책임을 맡고 있어요. 목사의 신분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삶까지도요. 그래서 노회의 중요한 기능 중에 하나가 시찰회 활동입니다. 해당 노회 지역에 있는 교회의 목사들의 생활을 살피는 것이 사찰회의 주된 기능이에요. 목사가 밥 먹고 사는지, 혹시 생활이 안 되어 택시 운전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 목사와 관련된 생활 자체를 돌아보아야 하는데, 요즘 노회들은 권위적인 일만 관심을 가질 뿐, 목사 한 사람 한 사람을 돌아보는 일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요. 이건 노회가 기본 소양이 안 돼 있는 것이죠. 그런 부분이 제대로 안 되어 있다 보니까 중요한 신학적인 문제를 그냥 지나쳐 버리는 거죠. 그렇다면 과연 노회가 존재할 이유가 있을까요? 결국 장로교라고 해도 장로교 정치도 없고, 장로교가 왜 소중한지에 대한 프라이드(자존감)도 없는 노회가 되고 말겠지요.

 : 지적하신 대로 장로교 신학 없이도 장로교회라 불리워지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신학과 고백이 같지 않아도 전혀 갈등하지 않는 교회들이 많아지는 것이 아닌가 싶어 씁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 바른 장로교회와 개혁교회가 더욱 요구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교회적 현실에서 성경적인 장로교회와 개혁교회를 세움에 있어서 가장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되는 내용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송: 직분에 대한 이해. 즉 목사, 장로, 집사가 교회 안에서 동등하다. 그리고 각각의 고유한 역할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됩니다. 예를 들어 목사는 교회 재정에 일체 관여하지 않아야 하고요. 장로는 설교를 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목사가 부재중 일때는 노회 안에 있는 이웃 교회 목사나 신학교 교수를 초빙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직분자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고유한 기능과 역할을 잘 수행하는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직분자로서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에 대해서 분별이 필요해요.
그 다음에 성찬식을 자꾸 시행을 해야 됩니다. 성찬을 하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주님께서 주시는 양식이 설교에만 있는 줄 알아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양식을 주실 때 눈에 보이지 않는 말씀의 양식도 주시고, 눈에 보이는 떡과 포도주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에서 축도에 대한 인식 부분입니다. 축도는 말 그대로 축도로 끝나야 되지 축복기도가 되어선 안 된다는 거죠. 축도를 ‘베네딕션(benediction)’이라고 할 때는 이것이 언약의 체결과 선포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목사들이 이것을 가지고 마치 자신이 복을 주는 자처럼 행동한다면 큰 잘못이겠지요. 축도할 때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만 걸어 놓고 목사가 거기다 복을 담아서 마음껏 빌어 주는 그런 일은 없어져야 합니다. 그냥 성경에 언급된 내용만 전하면 되지, 거기에 자꾸 살을 덧붙이지 않아야 합니다.
끝으로 두 가지만 더 덧붙인다면, 하나는 제발 성가대 좀 없앴으면 좋겠어요. 하나님께 예배할 때 온 교회가 다같이 예배하는 것이지 어떤 특별한 사람만 하나님께 예배하는 거 아니거든요. 그런데 찬양대를 만들어서 예배 시간에 별도로 찬양하게 하는 것은 이전에는 없던 전통입니다. 로마 교회가 화려해지면서 회중이 불러야 할 찬양을 빼앗은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많은 병폐가 생길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두 번째로 강대상에는 목사만 올라가야 합니다. 목사가 사회보고, 말씀 전하고, 축도하면 됩니다. 예배가 화려해지다 보니까 점차 강대상에도 여러 명의 사람이 올라가서 북적대는데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목사 안수나 임직식에도 노회장이 대표 안수 기도하고 회중에게 공포하면 그것으로 바로 정식 회원이 되는 겁니다. 이 사람 저람이 강대상으로 오르락내리락 할 필요가 없어요. 회원들 앞에서 목사 한 사람이 혼자하고 끝내도 돼요. 예배도 회의도 한 사람으로 충분합니다. 이런 것들이 개혁되어야 해요.

: 교회 개혁과 관련하여 아주 실제적인 교훈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기왕에 개혁신앙으로 바른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후배 목회자들이나 목회자 후보생들에게 당부의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송: 한 가지 있어요. 헌법이 허용하는 한도내에서 가급적이면 빨리 직분자를 세워야 합니다. 목사와 장로와 집사는 교회의 항존직인데 항존직 중에서 한 직분이라도 빠지면 교회로서 기형이 됩니다. 그래서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당회를 구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 당회가 없어서 성례를 집례하지 못하는 교회는 노회 안에 있는 이웃 교회에다 장로 파송을 요청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성례는 자주 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세례도 1년에 한 두 번만 하지 말고, 매달이라도 할 수 있으면 자주 해야 합니다. 안 하는 것은 목사가 귀찮아서이지 이웃 교회 장로님을 모셔다가 하면 됩니다.

: 그런데 이러한 경우가 가능하려면 노회 안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검증과 협력적 관계가 충분히 형성되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바른 말씀이지만 너무 교과서적인 말씀 같아서요.

송: 그 부분은 조금 논외로 하더라도 어쨌든 그게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장로가 없기 때문에 세례를 못 준다고 하면 안 되잖아요. 우리는 언약의 자손이기 때문에 이웃 교회 장로님(항상 두 분 이상)을 불러다가 문답도 하고, 세례도 베풀어야 합니다. 특히 유아의 경우 장로가 없다고 유아세례를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목사로서 큰 직무유기입니다. 이런 이유에서라도 교회는 가급적 빨리 당회를 구성해야 합니다.

: 교회법에 따라서 한도내에서 하라는 말씀이지요?

송: 그렇죠. 할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성찬식을 할 때도 주변 교회 장로님을 모시고 와야죠. 그런데 그분의 신앙이 우리와 맞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이지 어느 사람 개인에게 주신 직분이 아니지 않습니까? 사람으로서는 조금 모자를 수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으로서의 권위를 생각한다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목사나 장로나 개인의 실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란 말이죠. 암튼 지교회는 교회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빨리 직분자를 세우고 당회를 구성해야 합니다.

: 성경적 교회로 나가기 위해서는 내용뿐만 아니라 형태적으로나 실질적으로도 내용에 대한 실행과 성도들의 참여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으로 이해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조금 어려움도 있을 듯합니다. 노회에 대한 신뢰와 노회원간의 상호 이해와 협력이 기본이 되어야 할텐데, 현실적으로 그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송: 그렇더라도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모든 일의 여건이 갖추어지면 그때 가서 해야지 하는 것은 변명에 불과합니다.

: 교리적 차원에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송: 그 부분에 대해서 우리의 입장은 분명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있는대로 하면 되죠. 그게 전부이니까요. 이 신앙고백에 대해서는 더 이상 손댈 일이 없습니다. 예배 모범과 교회정치모범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이것들도 성도들이 마음 놓고 읽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이런 일들이 원만하게 잘 진행될 수 있어요.

: 이번에는 어느 분이 대신 여쭈어 달라는 내용이 있어서 질문 드립니다. 개혁신앙에 관심이 많은 성도가 있는데 자신이 처한 교회 현실은 개혁주의와 아주 상반된 상태일 때,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실제적인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아울러 덧붙여 문의 드리면, 성경적이지 않다고 판단되는 교회를 출석하는 경우가 과연 합당한 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서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송: 질문하는 본인에게는 참 안 되었지만 그곳을 떠날 여건이 안 된다면 자신에게 오는 결과는 감수해야 되는 거죠. 개혁교회로 옮기거나 다닐 형편이 안 되면 현장에서 살아남아야 하겠지요. 그냥 개혁된 성도로 존재하는 것이죠. 언젠가 하나님께서 그 개혁된 성도에게 은혜를 주셔서 개혁된 교회로 가게 하시든지 아니면 주변에 그런 친구들을 주시든지 해서 그것이 교회가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게 언제인가는 사실 모릅니다. 그럼에도 개혁된 성도로서 현실 자체를 부대끼면서 나가는 것이죠. 아니면 방법이 있죠. 멀리라도 개혁교회가 있다면 찾아가면 돼요. 그러기 위해서는 간혹 직업도 포기해야 되겠죠. 그런데 현실적으로 본인이 약하거나 실력이 없어서 포기를 못 한다면 그 자리에서 견디는 수밖에 없겠죠. 그렇게라도 견지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 때에 자연스럽게 교회가 형성될 수도 있는 것이고요.

: 교회를 옮기는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한 말씀 더 여쭙자면, 최근에 한국 교회 내에 개혁주의에 대한 관심이 나타나는 고무적인 현상을 보는 즐거움과 함께 교회를 찾는 이유와 태도에 있어서 여전히 비개혁주의적인 모습을 목도하게 되는데요. 개혁신앙을 말하는 이들도 유명한 교회, 안정된 교회, 큰 교회를 찾는 현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 어떻게 보십니까?

송: 그것은 개혁된 분이 아니니깐 그러겠죠. 말이 개혁신앙이지, 그냥 시류에 따라, 유행을 좇아 사는 사람들이니까 그건 우리가 논의할 대상이 아니겠죠. 개혁된 성도라면 어떤 외부적인 요소에 현혹되어선 안 되겠지요. 정말 개혁된 성도라면 이것이 문제될 것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직업까지도 포기할 수 있는데 그런 것을 쫓아갈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 명쾌하게 말씀해 주시는군요.(웃음) 화제를 좀 달리해서요. 근래 목사님도 SNS를 통해서 여러 사람과 활발한 교류를 나누고 계신 것으로 아는데요. SNS와 같은 인터넷 매체를 통한 사역의 장점과 한계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송: SNS는 말 그대로 허상입니다. 절대 실제가 아닙니다. SNS를 이용한다면 그냥 어떤 흐름을 감지하는 정도로 만족하게 되고요. 혹시 그런 가운데 실체를 발견하게 되면 적극적으로 오프라인에서 교제가 가능해야 되죠. 오프라인 교제가 불가능한 것은 그냥 허상일 뿐입니다.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것도 아니고, 거기에다 죽네 사네 힘을 쏟아 부을 것도 아니지요. 단지 흐름이 이런 정도라는 것을 아는 것으로 가볍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유익이 있다면 이미 오프라인으로 충분히 교류가 된 사람들끼리 조금 더 소통이 가능하고 공감대가 넓어질 수 있는 잇점이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의 교제가 없는 온라인의 교제는 여전히 허구입니다. 그건 그 이상의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집착할 것도 실망할 것도 없어요.

: 최근에 인터넷을 통해서 개혁신앙의 저변이 확대되는 점은 매우 고무적인 일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너무 인터넷에 익숙해진 나머지 교회를 중심으로 한 성도 간의 인격적 교제보다는 인터넷 환경 안에서 시간과 열정을 소비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개혁신앙을 말하면서 그러한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송: 맞습니다. 그것은 본인이 잘 조절을 해야 되겠죠. 저로서는 실체가 없는 허구에 그렇게 매달릴 일은 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SNS를 통해서 미처 보지 못하고 알지 못했던 어떤 내용을 알 수도 있습니다만, 그것은 늘 실체를 통해 확인이 되어야 합니다.

: 모임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목사님께서도 정례적인 모임을 갖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한 모임을 통한 목사님의 기대와 전망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송: 뭐 특별한 건 없고요.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정도의 마음으로 서로 위로하는 거죠. 이 길을 가는 데 많이 외로울 거고 힘들 수 있을 것 같아서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서로 격려하는 정도지 뭐 대단하고 심도 있는 것을 도모하는 모임은 아니에요. 서로의 형편을 돌아보면서 이왕 모였으니까 글이라도 하나 읽자고 해서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성과 관련된 글을 읽고 나누는 정도입니다. 모임에 대한 무슨 규약도, 이름도, 회원도, 실체도 없어요.(웃음)

: (웃음)그러세요?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참여하는 후배 목회자들 입장에서는 큰 위안이 되지 않겠는가 싶어서 여쭈어 보았습니다.

송: 의무가 없으니 서로에게 위안이 되는 거죠. 근데 의무감을 가지기 시작하면 위안이 안 돼요. 개혁신앙은 본인들이 하는 것이고요. 제가 말씀드린 대로 하다보면 스트레스까진 아니라도 외로움이나 어려움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걸 서로 대화하면서 마음 놓고 편하게 푸는 것이지요.

: 알겠습니다. 목사님, 편집국장으로 계시면서 그간 글도 많이 쓰셨고 책도 여러 권 발행하셨잖습니까? 책을 직접 제작하시는 일까지 하시는 것으로 아는데 어떤 마음가짐으로 출판 사역에 임하시는지요?

송: 개인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출판사라면 몰라도 기독교 계통에서 출판하는 사람은 우선 교회를 위해서 봉사하는 출판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싶어요. 그렇기 때문에 책을 낼 때는 교회에 조금이라도 누가 되거나 해를 끼치는 책을 내서는 안 되겠지요.
그런 다음으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책을 쓰기 위해서 일단 필자가 필요한데요. 필자는 상당히 그 준비가 잘 돼 있어야 하겠고 그에 못지않게 훈련도 필요합니다. 책 한권 내고 그만한 위치에 오르는 필자는 없어요. 그래서 한 필자가 열 권, 스무 권을 낼 수 있도록 토양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필자가 책을 거듭거듭 출판을 하면서 그 원고를 작성해 가는 과정에서 근력을 갖게 되는 거죠. 그렇게 해서 언젠가 교회를 위해 아주 좋은 책 한 권이 나오게 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어요. 저는 필자에게 그런 기회를 주고 싶은 것이지요. 그런 기회조차 주지 않으면 평생 그것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에 일단 어떤 필자를 발견하면 그로 하여금 책을 마음 놓고 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일에 힘씁니다. 그러다가 편집인으로서 글에 약간의 미흡함이 보이면 조금 손 봐 주는 것이지요. 바둑둘 때 최고의 고수끼리 두더라도 미처 그 고수가 보지 못하는 수를 옆에서 해설하는 사람이 보는 것처럼 말이죠. 교회와성경 출판사를 통해서 하고자 하는 일이 그런 것입니다. 신학적으로 대단한 책을 만들자는 것은 아니고요. 다만 교회에 해를 끼치지 않는 좋은 책을 만들어 보급하는 것이 우선적인 목적입니다. 대신에 외국책 번역은 지양하고요. 가급적이면 국내 저자들에게 그런 기회를 주고 싶은 겁니다. 외국 서적은 우리가 번역하지 않아도 다른 출판사들이 하면 되는 거고요. 우리 국내 저자중에서 여건이 허락되지 않는 분들에게 어떻게 해서든 토양을 마련해 줘서 하나씩 씨를 뿌리다보면 언젠가 그 씨가 자라서 30배, 60배 의 결실을 맺지 않겠습니까? 그걸 바라보고 하는 거죠.

: 좋은 생각이십니다. 제가 좀 관심 있게 살펴보았는데, 목사님께서 집필한 책들을 보니까 성경 뿐만 아니라 교회와 관련된 책들도 있더군요. 그간 몇 권이나 책을 내셨지요?

송: 한 열 두서너권 정도 됩니다.

: 그런데 목사님께서 내신 책에서 목사님에 대한 소개글을 보면, 총신대학교(B.A)와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M.Div)에서 신학공부를 하신 것으로 적고 있는데요. 외람된 말씀일 수 있지만 독자들 가운데 목사님의 학력을 보고서 언제 이렇게 많은 공부를 하셨는지 궁금해 할 분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목사님의 책을 찾는 독자 대부분은 상당한 도전과 신선함을 가질 수 있는 대목이라고 생각됩니다.

송: 목사는 누구나 신학자여야 합니다. 특별히 어떤 신학을 전공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전반적인 신학에 대한 상당한 식견을 갖추고 있어야 된다고 보는 거죠. 학위를 갖고 안 갖고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생각해요. 교회에서는 학위를 가졌다는 것이 별 의미가 없습니다. 만약 칼빈 선생님에게 당신 학위증이 어디 있냐고 묻는다면 실례이겠죠. 칼빈을 넘어서지 못한다 할지라도 목사라면 누구나 그의 밑바닥만큼은 올라가야 합니다. 그것이 일부 신학자들만의 몫이라고 생각하면 안돼요. 일반 목사의 경우, 최소한 일년이면 52편의 설교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한권의 책으로 묶어져야 합니다. 실력이 없어서 못한다고 할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해서라도 그걸 책으로 묶어 놔야 합니다. 출판을 안 해도 상관없어요. 그렇게 해서 한권 한권씩 나오면 횟수가 더할수록 많은 책들이 만들어지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다만 목사 개인의 생각이어서는 안 되고요. 교인들이 의도적으로 그런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설교를 잘 하는 가, 못하는 가를 떠나서 원고는 남아야 됩니다. 그래야 세월이 지나도 무슨 설교를 했는지, 어떤 관점에서 설교를 했는지 역사적 기록으로 남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무엇이 유익이 되냐면 목사가 무지무지하게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처음에 책 한권 낼 때는 기분이 좋지요. ‘나도 책을 하나 냈다.’라고요. 그런데 두 번째부터는 어깨가 많이 무거워 집니다. 세 번째 낼 때는 머리가 빠개집니다. 네 번째 낼 때는 정신이 혼미해집니다. 왜요? 그만큼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는 거지요. 그렇지 않으니까 목사들이 게을러지고 공부를 적당하게 하는 것이지요. 설교를 책으로 내는 것이야말로 바로 교회를 위해 신학하는 태도입니다.

: 매우 실제적인 유익이 되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목사가 자신의 설교를 기록으로 남기게 될 때, 목사의 사명과 책임은 한층 깊어질 것 같습니다. 저도 목사님 말씀대로 한번 시도해 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네요.

송: 우리나라도 원래부터 기록하는 나라이지요. 종묘사직의 사관이 있어서 왕의 일거수 일투족을 기록해 놓지 않았습니까? 목사의 설교는 곧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회가 보존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한 분들이 있겠지만 외국에서는 보통 다 그렇게 합니다. 그래서 외국 교회를 가면 옛날 목사님들의 설교나 개인 편지까지 기록으로 다 남겨 둔 교회가 얼마나 많습니까? 교회는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 그동안 오랜 세월 글쓰기를 통해서 축적된 방법(노하우)가 많으실 것 같은데요. 항상 글을 써야 하는 위치에 있는 목회자를 위해서 한 말씀 해 주시지요.

송: 특별한 방법(노하우)은 없고요. 중요한 것은 잘 쓰든 못 쓰든 일단 원고를 남겨놓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값비싼 다이아몬드도 볼품없는 원석에서 나오거든요. 그런 것처럼 글도 다듬으면 다듬을수록 이뻐집니다. 그런데 원본이 없으면 다듬을 수조차 없잖아요. 처음부터 글 잘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일단 써 놓는 겁니다. 글쓰기 싫은 사람은 녹음해서 녹취라도 해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편집 잘하는 사람의 도움을 좀 얻어서 다듬으면 좋은 글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만약 책을 낸다면 편집자의 손을 거쳐서 좋은 책으로 탄생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출판의 기술이죠.

: 아, 그렇군요.

송: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유명한 일기도 원래는 출판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 끄적여서 써 놓은 것이죠. 그것을 나중에 그분의 미망인이 정리해서 원고를 만들면 편집자가 잘 다듬어서 책을 낸 것이죠. 사람들은 브레이너드가 쓴 최초의 일기를 보고 감동받는 것이 아니라 출판된 책을 읽고 감동받는 거거든요. 이렇게 글을 잘 다듬고 가공하는 것이 출판의 기술이죠. 그것은 이쪽 분야 전문가들이 알아서 하는 일이고요. 일단 본인은 원고를 남겨야 합니다.

: 글을 쓰려거나 책을 만들고자 하는 분들에게 크게 용기가 되는 말씀 같습니다.(웃음)

SDG 인터뷰에서 인터뷰이에게 공통적으로 하는 질문이 있는데요. 추천도서와 추천 신학자를 좀 소개해 주시죠.

송: 훌륭한 분들의 작품이 많지만 아직까지는 칼빈주석이 가장 좋습니다. 칼빈주석을 다 읽기 힘들다면 기독교강요도 좋은데요. 이 책도 너무 두꺼워서 못 읽겠다 싶으면 제네바 요리문답을 보면 됩니다. 373문답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여럿이 읽어도 두 세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제네바 요리문답은 기독교 강요의 축소판이거든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도 거기(제네바 요리문답)에서 나오고요. 제네바 요리문답만 읽어도 신앙의 기본을 거의 90%는 적립이 된다고 봐요. 그것은 별도로 해석이 필요가 없습니다. 원래 캐티키즘(catechism)이란 것은 묻고 답하는 것이기 때문에 해석이 뭐가 필요합니까? 그냥 읽으면 돼요. 한 다섯 번만 읽으면 웬만한 신학자 수준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조금 여유 있다면 기독교강요를 읽으면 좋아요.

: 요즘 저희 교회에서 주일 예배 전에 제네바 요리문답을 읽는 시간을 갖고 있는데 말씀을 들어 보니 더 자극이 되는데요.(웃음)

송: 가능한 한 자리에서 한 번에 다 읽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교회에서 형편이 안 되면 집에서라도 읽으면 되죠. 제네바 요리문답 외에도 좋은 신앙고백서들이 많지 않습니까? 요즘은 인터넷을 뒤지면 번역된 것을 찾을 수 있어요. 기독교강요가 좀 부담된다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을 읽으면 되고, 또 시간이 나면 벨직 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도르트 신조 등도 읽어야 합니다. 좋은 해설집도 도움이 되지만 그런 것을 안 봐도 돼요. 원래 신앙고백서는 이보다 더 잘 만들 수도 없고 더 잘 해석할 수도 없는 거예요. 그냥 원문 자체를 읽는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것 같이 목사들은 꼭 칼빈주석을 병행해서 읽어야 합니다. 다른 주석들에 비해 칼빈 주석은 오류가 별로 없습니다. 아직 칼빈 주석에서는 오류를 발견하지 못했어요.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지요. 예레미야서에 살룸이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이 역대기에도 나와요. 대부분의 참고문은 이 사람이 여호와아스라고 말해 줍니다.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칼빈의 예레미야 주석을 보니깐 여고니야라고 칼빈은 말하더군요. 모든 주석이 다 여호와아스라고 하고, 심지어 김홍전 목사님도 살룸을 여호와아스라고 해서 여태까지 그렇게만 알고 있었단 말이죠. 그런데 칼빈만 여고니아라고 그래요. 그래서 어떻게 된 것인가를 따져 봤어요. 출생, 연대, 부모 등 다 따지고 보니까 여고니아가 맞는 거예요. 여고니아에 대한 예언이었던 거예요. 저에겐 놀라운 발견이었죠. 칼빈은 묘하게도 어떤 오류가 발생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말을 안 하고 지나가요. 그렇기 때문에 오류가 없는 것 같아요. 암튼 목사라면 칼빈주석을 꼭 참고하시란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 저도 칼빈은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적정과 절도의 원리를 가장 모범적으로 지킨 신학자라고 봅니다. 즉 말씀이 가르치는데까지 가며, 말씀이 말하지 않는 데서 침묵하는 정신이야말로 칼빈의 성경 해석 원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면 칼빈은 당연하겠고요. 그 외 추천하고 싶은 신학자가 있다면 누구입니까?

송: 사실 저는 어떤 신학자를 추천해 달라면 참 불편해요. 좀 교만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저는 신학자를 믿지 않아요. 칼빈주의 3대 신학자라고 하는 분들도 다들 훌륭하지만 저마다 약간의 오류를 다 가지고 있어요. 칼빈은 어떤 점에서는 우리가 주의해서 생각해야 할 부분도 있지만 성경 해석에서 오류가 눈에 띄게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좀 특별해요. 그래서 칼빈주석을 꼭 참조하라고 말씀드린 거고요. 하지만 저는 어느 신학자를 추종하는 사람을 보면 참 안타까워요. 어떤 신학자를 추종해 버리면 평생 그 사람 밑에 있게 돼요. 그럴바에는 바울을 배우라고 말하고 싶어요. 차라리 바울을 배우는 것이 신학을 더 바르고 넓고 깊게 공부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돼요. 어떤 신학자에 대해서 모든 관심을 다 쏟아버리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신학자의 오류에 빠질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존 스토트의 책은 참 좋아요. 그런데 이분이 영혼멸절설을 주장하거든요. 그런데 어느 신학자에 빠지면 그런 것을 전혀 못 보고 따라가게 되어 있어요.

: 무슨 말씀인지 충분히 알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를 접하게 될 개혁신앙을 추구하는 분들, 특히 SDG 개혁신앙연구회에 소속된 회원분들에게 한 말씀 전해 주시죠.

송: 아까도 개혁된 신자에 대해 잠깐 얘기했는데요. 우리는 어떤 상당히 파워를 가졌다든지, 어떤 형체를 갖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존재하고 있는 겁니다. 개혁주의라는 것이 지금까지는 상당히 추상적이고 이념적으로 받아들졌습니다. 그냥 막연한 것이죠. 지금도 개혁주의를 말하는 분들이 대부분 그런 면에서 열악합니다. 즉 아직 실체가 없다는 겁니다. 이제 실체로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잠깐 언급했지만 한국교회 130년 역사가 토양이 되었고 이제 우리가 개혁주의를 심기 시작한 거예요. 박윤선 목사님이 선구자 역할을 하셨지만 그분도 하나의 씨앗을 심고 끝나신 것이지 개혁교회를 완성하신 분은 아닙니다. 그리고 지금 개혁교회를 위해 애쓰는 분들로 인해 상당한 모양새를 갖춰가고 있지만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도 하나의 씨앗이 되어 개혁된 신자로서 존재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이 앞으로 이삼십년 흐르면 우리 후배들이 좀 더 다져진 상태에서 개혁교회를 세워나갈 것입니다. 그걸 바라보면서 지금 우리는 기꺼이 희생을 감수해야 합니다. 씨앗을 심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열매까지 따 먹겠다고 한다면 꿈을 너무 크게 꾸는 것이고요. 지금 우리가 개혁교회를 추구하는 한 사람으로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의가 있고, 기꺼이 희생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5년 내에, 10년 내에 내가 이것을 완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식의 급박한 생각을 하지 말고, 지금 각자가 처한 환경에서 최소한 자기 역할만이라도 해 준다면 좋겠다는 거지요. SDG도 SDG 나름대로, 또한 회원들도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 일을 충실히 감당하자는 것이지요. 아주 작은 일부터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무슨 무브먼트나 어떤 폭발력을 기대할 생각은 말고요. 그것은 신천지나 하는 짓입니다. 혹시 원자탄이 터져서 서울이 쑥대밭이 된다고 할지라도 500년 뒤 누군가가 우리를 기억할 때, ’이 시대에 이렇게 교회를 고민하는 사람들도 있었구나.‘라고 생각한다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주변에 많은 분들이 개혁교회를 얘기하고 개혁을 추구하고 또 여러 모임도 갖고 하는데 항상 문제는 뭔가 빨리 이루어야겠다는 조급증입니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되듯이 차근차근 나아가야 것이 진정한 개혁주의 아니겠어요? 혁명하듯이 깨 부시고 하면 안 됩니다. 유명한 스타 목사를 좇지 말고 우리 갈 길대로 나아가다 보면 우리가 목표하는 것을 우리 시대에 못 이룬다 할지라도 우리 자녀 세대에 아름다운 개혁교회가 세워지지 않겠습니까?

: 감동적인 결론으로 마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자연이 싱그럽고 아름답게 변화해 가는 걸 보면서 자연이 가장 아름다운 것은 자연스러울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성도의 모습도 이와 마찬가지같습니다.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성도다움의 모습을 유지하고 드러낼 때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신자가 아니겠는가 생각됩니다. 장시간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진심 어린 교훈을 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지도와 가르침 부탁드리겠습니다.

2013.5.21. 기독교개혁신보사 사무실에서

※ 인터뷰 녹음 파일은 제공하지 않습니다.

※ 본 인터뷰의 권리는 SDG개혁신앙연구회에 있으며 무단 전재 및 복제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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